"따로 또 같이가 중요한 세상, 자신의 성취만큼 인간관계도 중요해"

이화는 아직도 낯설다. 이화여대가 내 근무지가 된 지 벌써 만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화의 문화는 내게 익숙하지 않다. 많은 것이 그렇다. 처음에는 더 그랬다. 특히 혼자 밥 먹는 학생들.

그것은 나에게는 대단한 놀라움이었다. 단지 혼자 밥 먹는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마치 한가로이 놀러온 여행객처럼, 혹은 성대한 파티에 초대되어 온 귀족처럼, 혼자서도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 놀라웠던 것이다. 게다가 어쩌다 한두 명이 아니라, 많은 수의 학생들이 그랬다.

책을 보면서 먹기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먹기도 했다. 곁을 스쳐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관찰하며 먹기도 했다. 아름뜰에서도 그랬고, 가정관 식당, 학교 앞 분식집에서도 그랬다. 저마다 다양한 모습이었지만, 한껏 여유를 부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럿이 수다 떨며 먹을 때만큼이나 오래도록, 천천히. 아주 천, , .

하긴 혼자 밥 먹는 것 자체야 뭐가 문제랴. 공부에 정신 없다보면 식사 시간을 놓치고, 덩달아 함께 먹을 친구도 놓칠 수 있을 것이다. 아점으로 먹어서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나 허기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듣고 싶은 강의를 신청하다보니 친한 친구들과 시간대를 맞추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저 혼자 먹고 싶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혼자 밥 먹을 수 있다. 당연하다. 다시 말하지만, 내게 낯설었던 것은 ‘혼자서도 여유롭게’ 먹는다는 것이었다. 대개 사회에서는 혼자 먹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혼자 먹게 될 경우가 있으면, 얼른 먹고 일어선다. 그런데 이화에서는 달랐던 것이다.

몰론 그것은 좋은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독립심이나 자신감의 발현일 수 있으므로. 여성이라고 쭈뼛대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당당함의 표출일 수도 있으므로.

어쩌면 이화 문화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여자가 무슨 공부냐”라던 19세기 말, 이화는 출발했다. 여성이라고 다를 것이 없고 달라서도 안 된다는 것이 당시 이화의 정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가르쳤고, 더 열심히 배웠을 것이다. 여성이라고 주눅 들지 않고, 연약한 듯 남성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서도 세상을 헤쳐 나가고 그 어떤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도록 이화는 학생들을 훈련시켰을 것이다.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지식인들이 거의 대부분 이화 출신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21세기 지금은 네트워크의 시대이고 정보화의 시대이다. 네트워크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이고, 가장 생생하고 정확한 정보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지금은 팀워크의 시대이기도 하다. 통섭이니 융합이니 협업이니 하는 단어는 벌써 오래 전 익숙해졌고, 학문에서도 학제간 연구가 유행한지 이미 오래다. 그런 세상이다. 내가 잘나는 것만큼이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화로 옮기기 전, 나는 홍릉의 연구기관에서 17년을 근무했다. 높은 보직도 맡았었다. 신규 연구원을 채용하는 책임을 담당한 적도 있다. 물론 이대 출신도 꽤 뽑았다. 서류 상으로는 최고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실망이었다. 혼자 놓고 보면 참 똑똑하고 개인적으로 주어진 일은 열심히 잘하는데, 여럿이 하는 공동연구에만 투입되면 기대에 못 미쳤다. 동료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화도 심심치 않게 벌였다. 그래서 팀을 바꿔 달라거나 아예 혼자 일하겠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왜 그럴까, 나는 늘 궁금했다. 어째서 혼자서는 뛰어난데, 제대로 섞이지를 못하고 섞이면 자신의 능력만큼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화로 옮긴 후 나는 그 답을 나름대로 찾았다. 비유이고 상징이겠지만, 혼자서도 즐기며 밥 먹어 버릇한 것이 그 이유의 하나가 아닐까. 혼자라는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편안함으로 느껴온 습관이 ‘함께‘ 라는 것을 힘들어 하게 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따로 또 같이‘가 중요한 세상에서 ’따로‘에만 너무 익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걱정을 혼자 밥 먹는 학생들을 보면서 하는 것이다.

조동호 교수 (북한학 협동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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