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인 직업탐구생활> 큐레이터, 새로운 시각문화의 경험자
<이화인 직업탐구생활> 큐레이터, 새로운 시각문화의 경험자
  • 현시원 큐레이터
  • 승인 2011.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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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 출신의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올해 출간한 노란 색깔의 책 이름은 <Everything you always wanted to know about curating>, 번역하면 '당신이 큐레이팅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이다. 페이지 곳곳에는 쉽게 정리되지 않을 물음표와 대화가 가득하다. 미술 전시회라는 걸 어떻게 기억하고 모을 수 있을까? 작가 루이즈 브루주아와의 전시는 어떤 점에서 특별했고 건축가들과는 낯선 도시에서 어떻게 새로운 프로젝트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와 같은 '경험'으로밖에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들 말이다. 수많은 인물들과 인터뷰 시리즈를 진행하기로 잘 알려진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글을 통해 '큐레이터'가 아닌 '큐레이팅'이라는 행위에 대한 궁금증과 매력을 느끼게 한다. 누구나 큐레이터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보다 어떻게 '큐레이팅'을 해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 독자의 몫이다.

▶ 문학에 시가 있고 소설이 있고 태평성대에 부른 노래도 있듯이 큐레이터의 역할도 그렇다.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쓰고 미술에 관한 경험을 만드는 일을 하지만 큐레이터마다 방향성과 활동 방식은 다르다. 따라서 미술 또는 예술의 무엇이 궁금하고 동시대 어떤 작업에서 진심을 발견하는 지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부터가 큐레이팅의 시작이다. 작품은 이미 존재할지 모르지만 그것에 대한 대화와 반응을 펼쳐 보이는 일은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는 작가의 개인전이나 기획전은 물론, 워크숍이나 토론회를 꾸릴 수 있고 그림 그리는 작가들이 모처럼 쓴 글을 담은 잡지를 만들 수도 있다. 독립 큐레이로 활동하는 나는 최근에는 미술사학자 강태희 선생님과의 인터뷰 책자를 집필하고 있고,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작은 사물들에서 어떠한 힘을 발견할 수 있는지 다양한 작가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난 8월 19일에는 국립극단에서 퍼포먼스를 겸한 전시를 열기도 했다. 큐레이터들이 꼭 미술관, 교과서에 나올 만큼 잘 정리된 '현대미술'에 대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디자인, 건축, 생활 곳곳에 있는 시각문화와 자신의 관심사를 연결 짓고 작가들이 무엇 때문에 이러한 작업을 만드는지 동시대의 사회문제를 읽는다. 때로는 미술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일에도 쓸데없이 시간을 들여 탐구해보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 다양한 매체와 자기만의 서사를 갖고 끈질기게 작업해 나가는 무수히 많은 미술가들이 있는 것처럼 큐레이터로 존재하는 이들 또한 활동 방식과 태도가 다르다. 큐레이터는 어떤 경우 좁은 스튜디오에서 덜 완성된 미술 작업을 가장 처음 비밀스럽게 열어보는 사람이기도 하고 한편 불 꺼진 전시장에 남아 가장 마지막까지 작품을 보고 지키는 사람이기도 하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깃 세운 정장을 입고 미술품을 우아하게 소개한다고 생각하면 그것만큼 지루한 상상은 없다. 국공립미술관에서부터 갤러리, 대안공간(alternative space)과 미술 디자인 책자를 모은 작은 서점에 이르기까지 큐레이터들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은 무궁무진하다. 미술관의 꼴과 색이 변화하고 있는 요즘, 이미 많은 큐레이터들은 책자 만들기 작업, 퍼포먼스 기획, 워크숍, 교육 방법 등을 고민하며 기존 미술의 생산과 소비 방식을 문제 삼아 새로운 전시기획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작가, 비평가, 기획자, 관람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미술 작품을 연구하며 미술 현장과 미술사를 공부하는 일이 요구된다.

▶ 한계도 물론 많지만 큐레이터로 일하며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나 자신이 어떤 대상을 오랜 시간 공들여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대학보사 문화부 기자 시절 줄기차게 돌아다녔던 삼청동, 인사동 미술 전시장의 신선한 느낌을 가끔 잊지 않고 경험한다는 사실, 또 새롭게 만나는 작가들뿐 아니라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하며 만났던 조형예술과 전공 친구들과의 대화를 지금까지 계속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자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다. 보는 방식에 따라 세계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은 큐레이터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순간' 이기도 하다.

 

현시원/ 독립 큐레이터, '디자인 극과극'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