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지 페스티벌 홍익대 앞에서 17일간 열려

“매일밤 둘이서 자전거 여행을 떠나요.”

홍대입구역 9번 출구를 나오니 시끌벅적한 거리의 소음 사이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소리가 이끄는 대로 길을 따라 걸으니 전시벽 앞에 다다랐다. 간이의자와 마이크만 놓인 전시벽 앞은 하나둘씩 발걸음을 멈춘 사람들에 의해 공연장으로 바뀌었다. 예술을 꿈꾸는 이들의 뒤켠엔 ‘프린지 페스티벌’이라는 글자가 빛나고 있었다.

8월11일~27일 홍익대 앞에서 독립예술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은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렸다. 주연배우를 맡은 예술가(아티스트), 자원활동가(인디스트), 관객이 함께 프린지 페스티벌의 무대를 꾸며나갔다.

‘프린지’는 ‘비주류’라는 뜻이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주류’로 취급되는 예술에서 벗어난 모든 예술을 응원하며 연극, 무용, 마임, 신체극, 거리 이동극 등 흔히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소개한다는 취지로 1998년에 시작됐다.

올해로 14회를 맞는 이번 축제에는 아티스트 228팀, 인디스트 196명, 스탭 30명이 참가했다.

 

 

△ 아티스트, 홍익대 앞 거리에서 예술로 실험하다

 

 

8월11일~27일 홍익대앞 거리 곳곳은 미술가에게 도화지였고, 음악가에겐 예술의 전당이었다. 아티스트들은 음악, 연극, 무용,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선보였다.

8월23일 오후6시30분. 홍익대 앞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중 하나인 365번가, 홍익로 3길 입구에서는 퍼포먼스 아티스트 레이지핑크웨일의 ‘우리 함께 그림을 보고 듣고 즐기자!!!’ 미술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아티스트가 준비한 펑크 음악이 깔리자 관객들은 숨죽인 채 그를 둘러싸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새하얀 전지가 먹과 노랑․빨강․파랑․금색 잉크로 채워져갔다. 작품 작업을 시작하며 선글라스, 우비를 착용한 레이지핑크웨일은 거친 선으로 기도하는 천사와 해, 달, 별을 그려냈다. 그는 작업 사이사이에 물통에 담갔던 붓을 캔버스에 털어내 물방울이 퍼진 듯한 무늬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마지막에 붓을 빤 물을 쏟아 붓는 것은 그림 속 등장인물, 공연자체, 관중들을 축복하는 행위다. 관객들은 연신 휴대폰,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약20분간 이어진 공연에 집중했다.

레이지핑크웨일씨는 “사랑과 평화로 가득찬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한 가치를 함께 이루어가자는 의미를 나타내고 싶었다”며 “현장에 오신 관객들, 그리고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으로 작품을 그리지만 장소가 협소해 점프와 같은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같은 날, 사위가 어둑어둑해진 8시 공연장 잔잔에서는 ‘띠,띠,띠-띵!’하는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9호선 환승역 라디오 쇼쇼쇼!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들뜬 목소리가 공연의 상쾌한 시작을 알렸다. 어쿠스틱 밴드 ‘9호선 환승역’은 프린지페스티벌을 위해 신청곡, 프로그램 로고송, 광고 CM송 모두 9호선환승역의 노래로만 구성된 라디오 쇼를 만들었다. 공연 중 진행된 고민 상담 코너에서는 실시간 문자와 트위터로 관객의 고민을 받아, 아티스트가 그 자리에서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했다. 관객들은 ‘오빠가 집에 잘 안들어와요’, ‘모태솔로인데 어떻게 하나요’ 등의 소소한 고민거리를 보내며 공연에 참여했다.

어쿠스틱밴드 ‘9호선 환승역’의 김은경(서울시 마포구·27)씨는 “열린 공간에서 진행되는 야외거리예술제에는 행인이 관객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있다”며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으므로 ‘모두의 축제’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연을 보낸 강해령(서울시 마포구·27)씨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라디오 형식의 공연이 재밌었다”며 “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공연이라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인디스트로 축제에 참가한 이화인들은 프린지 페스티벌이 독립예술문화만의 시·공간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야외거리예술팀 인디스트 허윤서(언홍영·11)씨는 아티스트에게 연락, 공연 홍보, 음향장비 셋팅하기 등의 일을 했다. 그는 “홍익대 앞이 문화의 거리로써 의미가 퇴색되고 있었는데 프린지페스티벌이 분위기를 다시 살리는 계기가 된 것 같다”며 “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서 색달랐다”고 말했다.

한수지(광홍·10)씨는 작년 동아리에서 촬영한 다큐가 계기가 돼 영상팀 인디스트로 참가하게 됐다. 한씨는 “다양한 독립예술을 한 공간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이하다고 생각한다”며 “프린지 페스티벌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묻혀져있던 사회 문제를 짚어주는 계기를 마련한 실내공연제

 

 

실내공연은 5천원~2만원의 입장료가 있음에도 공연장을 메운 관객들이 프린지페스티벌에 활기를 더했다. 실내공연예술제는 축제기간 동안 33개의 소극장과 라이브클럽 등에서 작품이 약200회 공연됐다.

“돼지고기를 안 먹어? 소고기만 맛있다? 못사는 나라에서 고기를 가려먹고 그래”

8월24일 오후5시 소극장 ‘예’에서는 올해 동아일보신춘문예당선작 연극 ‘목소리’가 상연됐다. 소극장을 가득 채운 약40명의 관객들은 배우 3인이 주고받는 대사 하나하나에 웃고 울며 집중했다. ‘목소리’는 불법체류 상태로 건설회사에서 일을 하다 손가락이 절단된 파키스탄인 ‘시논’, 건설회사 사장, 그리고 경리가 시논의 산업재해 신청 처리문제로 갈등을 빚는 과정을 표현한 상황극이다. 이들은 문화, 언어적 차이 때문에 갈등을 겪지만 점점 마음을 열고 갈등을 극복해나간다.

연극을 관람한 최하늘(서울 송파구․26)씨는 “연극이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의 다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며 “프린지페스티벌은 다양한 장르를 한 번에 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목소리’가 진행되던 시간, 포스트극장에서도 ‘벽’이라는 무용극이 진행됐다. 붉은색 벽돌로 둘러싸인 무대위를 4명의 무용가가 활보한다. 나폴나폴한 흰 옷을 입은 그들은 기타선율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고 바닥에 드러누워 굴러다니기도 했다. ‘벽’은 여자의 자궁벽과 벽 뒤로 숨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 무용극으로, 무책임한 행동과 낙태까지의 과정을 몸으로 표현했다.

 

 

△ 독립예술가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프린지 페스티벌

 

 

이번 행사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프린지 페스티벌을 통해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프린지 페스티벌은 심사와 평가가 없어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예술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전시벽에 ‘또 다른 은하계의 지구’라는 그림을 그린 권성옥(서울시 마포구)씨는 프린지 페스티벌에 처음 참가했다. 권씨는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서 영감과 에너지를 받았다. 그는 “개인적인 전시는 사람들과의 교류에 한계가 있지만 프린지페스티벌은 소통의 장을 열 수 있는 기반이 된다”며 “다양한 아티스트와 만날 수도 있고 장르 간, 아티스트와 관객 간의 경계가 없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티스트로 참가한 권희윤(시디·08)씨는 팀원들과 약200개의 버려진 캔을 모아 붙이고 핀으로 구멍을 뚫어 ‘We Can'이라는 글자를 만들었다. 캔 뒤에서 조명을 비추면 구멍 사이로 빛이 통과하면서 앞면에 ’We Can‘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버려진 캔이 모여서 작품이 되는 것처럼 우리 대학생들도 할 수 있다(we can)는 것을 의미한다. 권씨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아티스트가 될 수 있고 그들의 파티에 한 발 담글 수 있다는 것이 멋져보여 참여했다”고 말했다.

무용극 ‘벽’을 연출한 이서은(서울시 종로구·24)씨는 “하고자하는 사람들이 모여 작품을 펼치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프린지 페스티벌의 큰 장점이다”고 덧붙였다.

어쿠스틱밴드 ‘나겸과 두부’의 최나겸(서울시 마포구·31)씨는 “프린지 페스티벌은 심사와 평가를 받지 않는 축제라 자신을 온전히 보여줄 수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이런 독립예술 축제가 더욱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프린지 페스티벌 사무국은 “축제에 참여하는 작품이 주류와 비주류가 아닌 모두 의미 있고 예술적이라는 생각에서 프린지 페스티벌은 탄생했다”며 “앞으로도 새로운 문화예술로 활발히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