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위가 존재하지 않는 예술
순위가 존재하지 않는 예술
  • 정서은 기자
  • 승인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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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와 비주류로 나뉜 예술세계, 선 긋기에서 해방될 때 오롯이 예술 향유할 수 있어

유난히 습했던 여름이 끝나간다. 필자는 비 때문에 방학동안 주로 실내에서 즐길 수 있는 전시회, 음악회 등을 찾아 다녔다.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예술에 경계가 생기기 시작했다. 필자와 같이 예술 사이에도 벽이 생겼다는 것을 일찍이 인식한 이들이 모여 국내 최대 독립예술축제인 프린지 페스티벌을 만들었다.
8월27일(월) 국내 독립예술문화의 대표 축제인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 2011’이 끝났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1998년 ‘한국적 프린지의 실험과 모색’을 모토로, 예술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 것에 대한 반항에서 출발했다. 프린지 페스티벌 사무국은 “축제에 선보이는 예술이 모두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프린지 페스티벌은 탄생했다”고 말했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아티스트들은 보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그들만의 예술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그 모습을 담기 위해 8월23일~24일 양일간 돌아본 홍익대(홍대) 앞은 축제의 열기가 성큼 다가온 가을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홍대가 인디문화가 꽃피는 곳으로써 인식되고는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거리에서 물감을 뿌려대고, 북을 치고 노래를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티스트들은 그렇게 거리를 도화지 삼아, 간판을 조명 삼아 그들만의 예술혼을 뿜어냈다. 마치 그동안 비주류로 취급받았던 것에 대한 설움을 풀기라도 하듯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프린지 페스티벌에서는 심사를 거쳐 작품이 선정되지 않기 때문에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정형적이고 기획화된 주류예술 축제와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퍼포먼스 아티스트 ‘레이지핑크웨일(lazy pink whale)’은 작업의 시작을 알리는 분홍색 우의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그날의 관객과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으로 그림을 그린다. 어쿠스틱 밴드 ‘9호선 환승역’은 공연 중 관객들에게 받은 메시지로 고민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또 프린지 페스티벌을 통해 아티스트와 아티스트, 아티스트와 인디스트(자원활동가), 관객과 아티스트가 소통하며, 관객과 독립 예술 사이의 거리감이 좁혀지기도 한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이렇게 소소하지만 힘 있게 그들을 응원한다. 필자가 본 프린지 페스티벌은 아티스트들과 함께 외치고 있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만 예술인 것은 아니다! 30만원짜리 티켓을 사고 푹신한 등받이 의자에 앉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바흐의 협주곡을 듣는 것만이 예술 향유는 아니다! 너도 나도 누구나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에는 순위도 경계도 없다.


팀원들과 아티스트로 참가해 ‘We Can’이라는 작품을 선보인 권희윤(시디·08)씨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아티스트가 될 수 있고 그들의 파티에 한 발 담글 수 있다는 것이 멋져 보여 참여했다”고 말했다.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예술이 모나리자나 바흐의 협주곡보다 ‘수준 낮은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그 순간 그 공간에서 느낀 아티스트와 관객간의 공감이 더 많은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생각한다.
‘이원재의 예술, 대화’에서 이원재씨는 “많은 사람들은 독립예술, 독립영화, 인디뮤직을 ‘생각’할 뿐 자주 듣거나 보거나 즐기지 않는다”며 “오히려 우연히 독립예술의 실체와 마주치면 당황하거나 심지어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독립예술을 존중하면서도 범위에서 벗어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즐겨야할 대상에서 독립예술을 제외함으로써 우리의 예술적 상상력은 제한받을 것이다.
독립예술의 부흥을 위한 강요가 아니다. 다만 주류예술과 비주류예술로 취급하는 선 가르기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의 문화생활은 조금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더 이상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만 독립예술을 대하지 말자. 어쩌면 예술 앞에 ‘독립’과 ‘비주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부터가 예술에 선을 긋는 것일지도 모른다.


프린지 페스티벌이 예술의 일상으로의 확장을 응원하듯이 필자 역시 이러한 모습의 프린지 페스티벌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