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에 밀려 지역서점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펴낸 「2010 한국서점편람」에 따르면 2009년 말 국내 서점은 2천846곳으로, 2007년에 비해 401곳이 줄었다. 이 가운데 50평 미만의 소형 서점은 2007년보다 409곳 감소했다. 특히, 1970년대~80년대 전성기였던 인문·사회도서 전문서점은 1998년 IMF 외환위기~2000년대 중반까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하나둘 폐점했다.

현재 남아있는 곳은 관악구 대학동의‘그날이 오면’, 종로구 통인동의 ‘길담서원’, 종로구 교남동의‘레드북스’등 서울시내 약7곳에 불과하다.

기자는 1일(수)~2일(목) 본교에서 약15분 거리에 위치한 인문학도서 전문서점‘길담서원’과 사회과학도서 전문서점‘레드북스(Red Books)’를 찾았다.

△도서 판매에서 음악회까지… 복합 문화공간 길담서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에서 나지막한 건물들을 따라 5분정도 직진하다 보면 왼편에 고풍스런 글씨체로 쓰인 길담서원의 간판을 볼 수 있다. 간판을 따라 너비 약2m남짓 좁은 골목에 들어서면 통유리로 된 입구에 옹기종기 놓인 화분들이 행인의 발길을 붙잡는다.

서원 내부의 책장과 책상, 의자는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졌다. 앞면 디자인과 내부 인테리어는 영화‘비포선셋(Before Sunset)’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진 프랑스 파리의 유명서점‘셰익스피어&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를 모델로 했다. 길담서원 이재성 학예실장은“인간과 가장 친밀한 자연에서 온 재료를 사용했다”며“투박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데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21세기형 서원을 꿈꾸는 길담서원은 도서 판매에 그치지 않고 한 달에 3~4회 특강·음악회를 개최한다. 인문학·외국어·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공부모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현재 길담서원에서는 ▲영어원서를 읽는‘콩글리시’▲프랑스어문을 공부하는‘끄세쥬’▲청소년을 대상으로 한‘청소년인문학교실’▲철학을 공부하는‘철학공방’▲책읽기 모임‘책여세’등 약10개의 모임이 열리고 있다. 하나의 모임에 적게는 5명, 많게는 20명이 넘는 사람이 참여한다.

길담서원 공부모임의 특징은 자율성이다. 이 학예실장은“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사전에‘준비모임’을 갖고 시간, 진행 날짜, 공부 방향을 함께 의논해 결정한다”며“공부모임은 지식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에 도움이 되고 더 잘, 바르게 살기위한 공부를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서원 내부의 한 평 남짓한 공간을 갤러리로 꾸민‘한뼘미술관’역시 길담서원에서 빠질 수 없는 공간이다. 지금까지 기업형 슈퍼마켓(SSM)에 밀려 사라지는 중소형 마트를 재조명한‘동네슈퍼전’, 회원들이 직접 사라져 가는 골목들을 찾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전시한‘골목, 마음과 마음을 잇다 전’, 현대 국내작가 50여명의 작품을 소개한‘백인백색전’등이 한뼘미술관을 수놓았다. 이 학예실장은“시사적 이슈를 시의 적절하게 다루거나 대중들에게 국내 현대미술작가를 알릴 수 있는 것, 또는 길담을 찾는 사람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것을 전시 주제로 선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담서원을 한번 방문한 사람들은 쉽사리 발길을 끊지 못한다. 중학교에서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는 학교사회복지사 ㄱ씨는 2009년 겨울부터 길담서원을 방문해왔다. ㄱ씨는“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도록, 더 나은 사회가 되도록 지식을 공유한다는 내 가치관과 길담서원의 정신이 잘 맞는다”며“강연회, 공부모임에서 나눈 것을 토대로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계획과 지도에 참고한다”고 말했다.

자율성·자발성을 중시하는 길담서원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목표가 없는 것’이 길담서원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서점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이 돼 함께 만들어갈 길담서원의 내일이 기다려진다.

△‘빨간책’사회과학도서 전문서점 레드북스
이대후문 버스정류장에서 370번 버스를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 금화초등학교 정류장에서 내리면 맞은편에 마르크시스트로 잘 알려진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초상이 눈길을 끈다. 사회과학 서점 레드북스의 간판이다.

80년대, 마르크시즘을 상징하는 사회과학도서들은 불온서적, 소위 말해‘빨간책’으로 분류돼 판매는커녕 소지하는 것조차 불법이었다. 레드북스는 그 빨간책들을 출판사 별로 분류해 판매한다.

사회과학도서 뿐 아니라 국내외 소설, 어린이 도서도 책장 한편을 차지하고 있지만 잡지나 실용서는 없다. 레드북스 김현우 공동대표는“신문 독서섹션에 나온 서평과 줄거리를 본 뒤 사회운동, 생태주의 등과 관련된 책을 주로 들여 놓는다”며“내가 좋아하는 책은 레드북스를 찾는 손님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고른다”고 말했다.

김 공동대표는 민주노총,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약20곳의 사회단체들이 모인 이 동네에 사회과학 서점이 없다는 것이 마음 아파 진보신당 최백순 종로중구 당협위원장과 레드북스 개업을 계획하게 됐다.

김 공동대표는“몇 년 전 영국에 방문했을 때 런던에 위치한 영국노동조합회의(British Trades Union Congress, TUC)사무실 근처에 사회과학전문 서점이 있는 것이 인상 깊었다”며“수입은 거의 없지만 이런 전문 서점의 존재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드북스에는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편에는‘오늘의 책’, 왼편에는‘어제의 책’이 비치돼 있다. 오른편 오늘의 책 코너에는 신간도서가, 왼편 어제의 책 코너에는 기증받은 헌책 약800권이 놓여있다.

레드북스는 사회과학 도서, 소설부터 대학 전공서적, 성소수자를 위한‘커밍아웃가이드’와 같은 자료집까지 분야에 제한 없이 책을 기증받는다.

김 공동대표는“주변에 이사하거나 유학을 떠나는 사람, 레드북스를 후원하는 회원들에게 메일 등으로 책 기증을 권유한다”고 말했다.

헌 책은 1천원~1만2천원의 가격으로 팔리기도 하며 각종 자료집은 무료로 가져갈 수 있다.‘후기자본주의’와 같은 희소한 책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판매하지 않고 서가에 비치했다. 최백순 공동대표는“헌책의 가격은 원가도 고려하지만 희소성에 따라 주관적으로 책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10평 남짓한 공간이지만 1인석 4자리, 2~3인석 테이블 3개, 세미나용 8인석 테이블과 커피, 허브차 등 18가지 음료를 2천원~2천500원에 판매하는 작은 주방을 갖췄다. 김 공동대표는“이곳이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 문화공동체적 기능을 했으면 해 책과 음료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에 레드북스를 방문한 조성주(서울시 동대문구·34세)씨는“사무실과 가까워 거의 매일 온다”며“신간과 옛날 도서를 모두 구입할 수 있고 조용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음료도 마실 수 있기 때문에 즐겨 찾는다”고 말했다.

책, 음악 그리고 사람이 그립다면 대형서점에서 벗어나 동네서점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변주연 기자 yksbj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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