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서대문구의 밤, 그곳엔 언제나 그들이 있다
잠들지 않는 서대문구의 밤, 그곳엔 언제나 그들이 있다
  • 이채린 기자
  • 승인 2011.0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의 서대문 경찰서 형사 체험…성추행·절도 등 사건 일지

서대문경찰서 강력팀 내부 전경
서대문경찰서 강력4팀 김맹호 팀장은 4월12일부터 자신의 트위터(@rlaaodgh
2003)로 밤을 새며 경찰의 업무를 수행하는‘형사체험’을 할 사람을 모집했다.

경찰 입장에서 서대문구의 밤을 관찰하기 위해 기자가‘형사체험’에 지원했다. 기자는 14일(토) 오후7시~15일(일) 오전9시‘서울 서대문경찰서 강력4팀 소속 이채린 형사’라는 명찰을 달았다. 

# 14일(토) 오후7시38분~10시10분: 기자가 경찰서에 도착. 자전거 상습 절도범 입건
서대문역 8번 출구 옆, 서대문경찰서에 들어서자 토요일 당직을 맡은 형사1팀, 강력4팀 소속 형사 12명의 모습이 보였다. 중학교 1학년쯤 돼 보이는 학생과 그의 어머니가 형사1팀 책상에 앉아 있다.

학생은 자전거를 여러 대 훔친 현행범으로 경찰에 잡혀 들어 왔다. 학생의 어머니가 울먹이며 자식을 변호하는 사이 학생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서진희 형사는“피해자와 합의를 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학생이 소년원으로 넘겨질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 14일(토) 오후10시15분~11시50분: 이대·신촌 기차역 부근을 순찰
본격적으로 순찰이 시작됐다. 기자는 전우천, 김맹호 형사와 형사기동대 차량에 올랐다. 먼저 본교 앞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아 한적함이 느껴졌다. 김 형사는“이대 앞에서 가장 많이 일어나는 사건은 상점 안 도난사건”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신촌기차역을 따라 내려갔다. 모텔과 나이트클럽 간판이 불을 밝히고 있다. 번쩍이는 간판을 걸고 성업 중인 모텔 5~6곳이 눈에 띄었다. 자정이 다 돼가는 데도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언뜻 둘러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9~10팀 보였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대학생들도 있었다.“열어두데오. 열어두데오.”술에 취한 채로 택시를 잡다 손을 다친 한 대학생이 부정확한 발음으로 형사기동대 차량을 마구 두들기며 말했다. 전 형사는“신촌에는 대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술로 인한 폭행, 술 취한 사람들을 노리는 도난사건이 가장 많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 15일(일) 오전12시10분~오전1시: 이대역 부근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
연희동 순찰을 마치고 내려오던 도중,  무전기에서“칙칙”소리가 들렸다.
“강도사건 발생. 발생. 이대역 중앙 버스정류장. 6번 출구 쪽.”
“알았다!”

형사기동대차량은 시속 120KM의 속력으로 목적지를 향했다. 경찰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차 사이를 헤쳐 나갔다.

이번에도 성추행사건이다. 신촌에서 함께 술을 마시던 여성ㄱ씨와 남성ㄴ씨. ㄴ씨가 ㄱ씨에게 모텔로 가자고 요구하면서 거부하는 ㄱ씨를 폭행하고 가방을 빼앗았다. 손목, 무릎, 종아리 등에 멍이 든 ㄱ씨는 경찰서로 향하는 도중에도 계속 눈물을 훔치며 몸을 떨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억울해!”형사들은 소리치는 ㄴ씨를 대꾸하지 않고 철창에 가뒀다. 전우천 형사는“술에 취한 사람을 억지로 진술하게 해봤자 제대로 말도 못하고 이후 기억나지 않는다고 우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피의자가 술이 깰 때까지 기다린 후 진술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 15일(일) 오전3시~3시50분: 성산로 부근 화재 발생
순찰을 마친 경찰들은 의자에 앉아 잠을 청했다. 김 형사의 휴대폰 벨소리가 정적을 깬다.
“성산로 부근에서 화재가 일어났다”
“혹시 방화일지도 몰라. 서둘러.”

무전기를 잡고 뛰는 발걸음이 급박했다. 매캐한 연기가 가득했다.
먼저 도착한 소방관들과 과학수사대가 화재원인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단순한 화재사건일 수도 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방화범의 흔적을 찾기 위해 기자는 형사와 함께 빌라 주위를 샅샅이 살폈다.

# 15일(일) 오전3시56분~6시19분: 고물상 도둑을 검거
전 형사 빨리 와봐. 이 형사(기자)도 빨리 와.”
방화범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뒤쫓다가 김 형사가 50대 정도로 보이는 ㄷ씨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ㄷ씨는 리어카에 공공기물과 가정집에서 내놓은 고물인 에어컨, 냉장고 등을 훔쳐 담고 있었다. 그는 기자에게 부탁했다.

“저 많이 아파요. 수갑 차면 안돼요. 젊은 아가씨 저 좀 풀어줘요. 부탁할게요.”
가장인 ㄷ씨는 생계를 위해 고물을 훔치고 있었다. 김 형사는“훔친 물건이 값나가는 물건은 아니기 때문에 체포하지 않겠다”며“다음부터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달라”고 말했다.

형사들은 ㄷ씨의 신상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집까지 따라 갔다. 그 동안에도 그는 손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리어카를 절대 놓지 않은 채,“고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 15일(일) 오전8시: 형사 임무를 완료
날이 밝았다. 밤새 당직을 선 경찰들과 그 외 경찰들이 근무교대를 한 뒤 기자는 형사 2명과 분식점에 앉았다. 김운기 형사는 라면과 김밥을 8분 만에 해치웠다.“우리는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해. 사건이 터지면 곧바로 나가야하거든. 그래서 빨리 먹는 것이 습관이 됐어”김맹호 형사는 라면 냄비의 바닥을 박박 긁어 먹으며 말했다.

순찰 중 김맹호 형사의 설명을 듣고있는 본지 이채린 기자

“힘들긴 해도 범인이 잡혀 사람들이 고맙다고 말할 때, 내 덕에 구의 안전이 지켜지고 있는 것을 느낄 때 보람 있어. 이 점 때문에 내 일을 놓을 수 없지. 형사일이 내 천직이 아닌가 해”
서대문구에 어둠이 깔릴 무렵. 경찰서의 고단한 밤은 시작된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이채린 기자 chearin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