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보다 주변을 사랑한 감독, 부지영을 만나다
중심보다 주변을 사랑한 감독, 부지영을 만나다
  • 박준하 기자
  • 승인 201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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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니마’등 여성의 상처와 치유 과정을 담아내


“잘 나가는 사람보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요. 제 영화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서 생기는 화학작용을 담고 있죠.”

지난달 열린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이어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가 6일(금) 막을 내렸다.
부지영(교육심리학·94년졸)씨는 두 영화제에 각각‘니마(Nima)’와‘애정만세’라는 작품으로 참여했다.
‘니마’는 국가인권위원회 2011년 프로젝트인 옴니버스 영화‘시선너머’의 다섯 가지 이야기 중 두 번째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선너머’관객과의 대화를 앞둔 그를 14일(토) 홍익대 앞 KT&G 상상마당 카페에서 만났다.
부씨가 영화를 시작한 것은 대학을 졸업한 뒤였다. 대학 시절에는 영화를 한 편밖에 보지 않았을 정도로 영화와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다.

그는 문화 활동이나 학과 공부보다는 과 학생회나 동아리 활동에 열중했다.
“80년대 영향을 받은 90학번이었던 전 학생운동을 했어요. 학점에 신경 쓰지 못했지만, 대외 활동을 한 경험이 꿈을 찾는 데 좋은 공부가 됐죠.”

학부를 졸업한 후 준비한 대학원 입학에 실패하자 부씨는 주변 선배들을 통해 일을 구했다.
그때 접하게 된 것이 부씨 인생의 첫 영화 일인 박철수 필름의 기획실 일이었다. 3년간 영화 홍보 마케팅 일을 하면서 그는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게 됐다.

“홍보 일은 창의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서 영화를 접하다 보니 영화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죠. 1997년에 첫 단편‘불똥’을 만들 때도 설렘보다는 오래전부터 하던 일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이후 부씨는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기로 하고 실행에 옮겼다. 먼저 그는‘한국영화아카데미’입학에 도전했다. 입학은 쉽지 않았다. 입학시험에 두 번 떨어진 부씨는 서른 살이 되던 해 아카데미에 입학해 영화를 배울 수 있었다.

아카데미를 졸업한 서른두 살에는 결혼해 연년생 아이 둘을 가졌다. 육아와 영화 일을 병행하는 것은 늘 어려웠다. 최근에도 개인 트위터에‘영화 만드는 주부, 그러나 영화 만드는 것도 잘 안 풀리고 살림도 못 하고, 애는 더 못 키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을 때 틈틈이 시나리오를 썼어요. 촬영이 있을 때는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부탁했죠.”

그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로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을 때를 영화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그는 장편‘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로 참여하게 됐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는 예전에 단편을 출품했다가 탈락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의미가 컸다. 바쁜 주부 생활 속에 써낸 그의 시나리오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영화가 끝난 후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할머니가 오셨는데 그분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10년째 오고 있다. 이런 좋은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신 게 생각나요.”

그는 올해에는 영화‘니마’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프로젝트‘시선너머’에 참여했다.‘니마’는 이주노동자 문제, 그중에서도 여성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다. 영화는 몽골에서 온 불법 여성 이주노동자 니마가 폭력 남편을 피해 도망 온 한국인 노동자 정은을 만나 동질감을 느끼고 이해하는 과정을 그렸다. 니마와 정은은 여성으로서, 아이의 어머니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소통한다. 인간의 당연한 권리가 보장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니마’는 차별적인 시각에 대한 상처, 동시에 치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변방 중의 변방 이야기에요. 이주노동자 이야기는 많지만, 여성 이주노동자 문제를 다룬 영화는 많지 않아요. 이주 노동자이자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소수자고, 더 큰 차별을 받을 수 있죠.”

부씨는‘니마’에서 인권 감수성을 기반으로 절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인권 감수성이란 인권 침해를 인식하고 문제의식을 느끼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편견은 사소한 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이뤄진다고 말했다. 오히려 일상 생활의 현장 속에서 나타나기 쉬운 게 차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촬영 현장에서 눈에 보이게 여성을 차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대부분 사회에서 그렇듯 주요 결정권이 남성에게 주어져요. 차별하는 사람도, 당하는 사람도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차별이 우리 주변에는 많아요.”

다음 달 9일에는 부씨와 양익준 감독이 공동 작업한 영화‘애정만세’가 개봉한다. 그 중 그의 작품인‘산정호수의 맛’은 낭만적 사랑을 하고 싶은 중년 여성‘순임’의 짝사랑을 다룬다.

“영화에서 여성 이야기를 많이 하는 건, 제가 여성을 잘 알기 때문이에요. 중년 여성의 사랑을 다룬 이유도 그게 일상이기 때문이죠. 상상력을 펼치고 관찰할 수 있잖아요.”

그의 영화에서는 특히 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지금, 이대로가 좋아요’에서는 바다가,‘니마’에서는 얼음이,‘산정호수의 맛’에는 잔잔한 호수가 배경이 되어 나온다.

“꼭 넣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넣은 것은 아니지만 물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을 넣게 돼요. 물은 포용과 치유력이 있어요. 2002년 단편‘눈물’에는 주인공 소녀가 자신이 흘린 눈물에 잠기는 장면도 나와요.”
아직도 그에게 영화는 어렵다. 부씨는 무엇보다 인지하지 못한 사소한 곳에서 벌어지는 상처에 대해 고민한다.

“영화를 보면 행복하고 동시에 괴로워요. 하지만 나를 표현하고, 욕망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죠. 영화는 인생의 과제이자 출구에요. 저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즐거움을 영화에서 얻어요.”

미래를 고민하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후배들에게 부씨는 꿈을 찾는데 자기 몸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론으로 공부해서는 이게 나와 맞는 일인지 알 수 없어요. 대학은 전공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에요. 인문, 철학적인 교양을 쌓고 관심 있는 일을 용기 있게 맞부딪치다 보면 자신의 꿈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박준하 기자 parkjunha@ewhain.net

사진: 배유수 기자 baeyoosu@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