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창립 125주년 기념> 캠퍼스를 통해 본 이화의 역사
<이화 창립 125주년 기념> 캠퍼스를 통해 본 이화의 역사
  • 김지아 기자 임경민 기자
  • 승인 201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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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정동 이화학당부터 신촌 캠퍼스까지…캠퍼스 건물에 담긴 이화 125년을 살펴보다


<편집자주> 본교 창립 125주년을 맞아 이화의 역사를 되짚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화역사관은‘신촌캠퍼스, 가장 오래된 건물 이야기’를 역사관 전시실에서 5월16일(월)부터 개최하고 있다. 기숙사는‘사진으로 보는 이화기숙사 이야기, 이화 125년, 기숙사 125년’사진전을 ECC B3 조호윤에스터갤러리에서 5월31일(화)부터 개최할 예정이다. 본지는 이들 전시를 통해 191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는 본교 건물의 역사를 시대별로 살펴본다.

*참고문헌 : 「이화 110년사: 어제와 오늘」,「梨花의 뒤안길에서」,「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사 1923∼2007」,「이대학보 사진으로 보는 이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본교 캠퍼스의 역사는 이화학당 시절 정동부지에 위치했던 한옥교사로부터 시작됐다. 이후 한국전쟁, 신촌캠퍼스 부지 이전 등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세계 곳곳에서 모은 성금으로 캠퍼스 이전…1910∼1930년대
이화학당의 한옥교사는 1886년 11월 정동 부지에 완공됐다. 이후 이화학당의 학생 수가 증가하자 1897년 한옥교사를 헐고 1900년 그 자리에 메인홀을 지었다. 메인홀은 기숙사, 식당, 전기시설 등을 갖춘 최신식 건물이었다.

본교는 1910∼1930년대 캠퍼스 위치를 바꿨다. 1922년 이화학당의 제6대 당장으로 취임한 아펜젤러 당장이 독자적인 대학 캠퍼스를 구축하기 위해 계획한 것이었다.

이에 김활란 전 총장과 월터 선생이 1923년 미국에서 열린 세계여성해외선교부 간부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회의에 참석한 그레이 부인과 그의 가족은 세워질 대학 건물에 자신들의 이름을 붙이지 말 것을 요청하며 3만 달러를 기부했다.

아펜젤러 당장은 신교사 건축 모금 활동을 위해 세계 곳곳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당시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날마다 신교사 건축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신촌 캠퍼스는 1932년 땅을 고르는 정지작업을 시작하고 1935년 완공됐다. 본관, 음악관, 대강당(현 중강당), 체육관도 이때 지어졌다.

1935년 2월23일 <동아일보>는 사설에서“실로 우리 조선 교육계 전체의 경사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전쟁의 상처 담은 1950년대의 신촌 캠퍼스
한국전쟁 중 본교는 부산으로 피난해 임시 교사를 세웠다. 본교는 부산시 부민동과 근처의 부지를 임대해 텐트를 세우고 임시 교사를 만들었다. 1951년 12월8일에는 임시 교사 봉헌식을 진행했다.

당시 본교생들은 부산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본교는 판잣집 2채를 각각‘남해장’,‘은해장’이라고 이름 붙여 기숙사로 사용했다. 당시 이곳에서 생활한 사생은 48명이었다. 본교는 1951년 일간지 광고를 통해 본교가 부산으로 피난해 임시 교사를 열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1953년 본교에서는 100여 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본교는 1953년 부산 임시 교사에서 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신촌 캠퍼스로 돌아왔다. 한국전쟁 중 유엔(UN)군과 미군이 기지로 사용했던 신촌 캠퍼스 내 건물은 처참히 손상돼 있었다. 당시 본교 건설과장이었던 김경환 씨는「梨花의 뒤안길에서」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본관 건물은 옥상이 손실되고 4층의 석조부분이 달아나기도 했고 불에 그을려서 그 외모가 매우 흉했던 것이다. (중략) 본관은 폭격을 맞아 파괴되었고 다른 건물들은 괴뢰군이 쫓겨갈 때 고의적으로 그 내부시설을 부수어 버렸기 때문에 보수해야 할 건물이 상당히 많았다.

본교는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들을 수리했고 1953년 본관, 체육관, 기숙사 수리공사가 끝났다. 1954년부터는 기념행사 준비위원회가 조직돼 대강당 준공을 계획하기도 했다. 계획에 착공한 지 1년 만인 1956년 대강당이 완공됐다.

김 건설과장은「梨花의 뒤안길에서」에서“당시에는 건축 자재 및 시공에 필요한 중장비를 구하기 어려웠다”며“1950년대는 건축인으로서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건물을 복구한다는 보람을 갖고 일한 시기”라고 밝혔다.


△학관, 교육관, 종합과학관 등 건설, 신촌캠퍼스의 확장 이룬 1960∼1980년대
1960년대 초 본교 후문 일대는 논밭이었다. 서울시는 도시 계획을 세워 후문 일대의 개울을 복개하고 포장도로를 만들었다.

학생들 사이에‘이상이 설계했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구조가 복잡한 학관은 1~4차 공사를 거친 결과물이다. 학관은 1960년 1차 공사를 마쳤다. 1차 공사 당시 학관은 도로와 가깝게 일자형으로 지어졌다. 곧 교통 소음이 수업에 영향을 미쳤다. 도로와 학관 부지의 높이도 약12m 정도 차이가 있었다.

 2∼4차 공사에서는 이를 고려해 학관을 ㄱ자형으로 재설계했다. 학관이 지어진 당시에도 건물 구조가 익숙하지 않은 신입생들이 강의실을 찾지 못해 수업에 지각하는 경우도 많았다. 학관 1층 로비에 있던 우체국에서 학생들은 서신을 통해 부모님,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았다.

본교는 1967년 국내에서 최초로 방송 교육을 위한 시설을 마련했다. 1967년 완공된 교육관은 국내 최초로 시청각 시설을 완비한 대학 건물이었다. 교육관 내에는 학생들이 실습을 할 수 있는 방송 스튜디오와 사진 제작실, 시사실 등이 있었다. 학생들은 이를 이용해 시청각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교육관 건설까지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김 과장은「梨花의 뒤안길에서」에서 당시의 어려움을 밝힌다.

처음의 계획은 교육방송과 교내방송을 구상했었다. (중략) 여기에는 엄청난 시설과 운영비가 소요되므로 교육방송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단지 교내 라디오방송시스템만을 설치하기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지만 교육방송설치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언젠가는 실현되리라는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1968년 완공된 동창회기념관(현 생활관) 안에 수영장을 만들기도 했다. 동창회기념관 내 실내 수영장은 1978년 창립기념일에 완공됐다. 처음 실내 수영장 설치가 논의되던 때에는 실내 수영장 건설이 시기상조라는 반대 의견에 무산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체육대학 동창들의 열의와 도움으로 수영장을 건립할 수 있었다. 수영장 천장에는 스티로폼과 인조가죽을, 벽에는 세라믹 타일을 붙이는 등 당시로서 획기적인 건축 방법이 동원됐다.

1980년 정의숙 총장이 부임한 후 캠퍼스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두환 군부정권은 입학 정원보다 30% 많은 학생을 뽑은 뒤 4년간 학업 경쟁을 거치며 학생들을 중도 탈락시키는 졸업정원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본교에서도 입학 정원이 늘어나자 교내 공간부족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정 총장은 신촌캠퍼스에 대한 장기 계획을 세우고 재임 기간 동안 경영관, 법정대학관 등 8개 건물을 신축했다. 이 시기에 건립된 종합과학관(종과)은 95주년 창립기념일에 기공식을 진행했다. 종과에는 연구실, 표본실, 실험실 등이 마련돼 관련 학과의 공간 부족을 해소할 수 있었다.

100주년기념도서관과 이화100주년기념박물관(박물관)도 각각 1984년, 1989년에 개관했다. 100주년기념도서관은 창립 100주년을 2년 앞두고 당시 국내 최대 규모로 지어졌다. 100주년기념도서관은 국내 최초로 전관 개가식(도서관에서 열람자가 서가에서 직접 도서를 자유로이 선택해 열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당시 다른 대학 도서관에서는 폐가식(서가를 열람자에게 자유롭게 공개하지 않고 일정한 절차에 의해 도서를 열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현재 신촌캠퍼스의 모습을 완성한 1990년대
1990년대에도 공학관, 국제교육관 등이 새롭게 완공되는 등 캠퍼스 내 건물 공사가 이어졌다.

1996년에 세계 여자대학 최초로 본교에 공과대학이 설립돼 그해 7월 공학관이 신축됐다. 1998년에 세워진 국제교육관은 6개 언어 동시통역이 가능한 국제 회의장, 번역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시설을 갖췄다. 이화·한국통신교육관(현 이화·SK텔레콤관), 이화·삼성 교육 문화관, 한우리기숙사, 국제관 등도 이 시기에 지어졌다.

본교는 1910년부터 현재까지 약10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이화의 캠퍼스는 오랜 세월 동안 학생들과 함께해 왔다. 앞으로도 이화인들의 많은 이야기를 담을 신촌 캠퍼스를 기대해본다.

김지아 기자 zia@ewhain.net
임경민 기자 grey24@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