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호 발간기념> 이대학보를 통해 돌아본 이화의 57년 변화상
<1400호 발간기념> 이대학보를 통해 돌아본 이화의 57년 변화상
  • 문호은 기자
  • 승인 2011.05.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주>

본지는 1400호 발간을 기념해 그동안 발행된 이대학보를 100호 단위로 살펴본다. 2호(1954년 3월5일) 이후의 모든 이대학보는 홈페이지(inews.ewha.ac.kr)에서 다시 볼 수 있다.

  △1, 100, 200, 300, 400, 500호(1954년 2월12일~1973년 11월16일)

1954년 1호를 발행한 이대학보는 약20년 후인 1973년 500호를 발행했다. 당시 신문은 헌책방에서 찾아낸 옛 책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읽어 내려가는 세로쓰기 방식으로 쓰였다.

1961년 발행된 100호 1면에는 본교 설립 75주년 기념행사 관련 기사가 실렸다. 기념행사에서는 1977년을 끝으로 사라진 메이퀸 대관식이나 가장행렬 등의 행사가 진행됐다. 1967년 발행된 300호 7면에는 향후 이대학보의 국․한문 혼용 방향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실리기도 했다. 당시 ‘한글 전용 표기’와 ‘극히 적은 수의 한자로 국․한문 혼용’에 응답자의 71.9%가, ‘한자로 표기 가능한 것은 모두 한자로 표기’에 응답자의 20.2%가 찬성해 학보에 한글 사용 비율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학생이 더 많았다. 이후 이대학보에서 한자 표기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었다.

△600, 700호(1977년 10월21일, 1981년 10월26일)

502호(1974년 3월8일 발간)부터 기사를 표기하는 방식이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바뀜에 따라 600호는 기사가 가로로 쓰였다.

1면의 ‘600호 기념 현상문예작품 입선작 발표’ 기사에 따르면 현상고료가 20만원인 중편소설을 제외하면 단편소설, 시조, 시, 수필 등의 부문에 당선됐을 때 받을 수 있는 현상고료는 1~7만원이었다. 원고료를 통해 당시의 화폐가치를 짐작해볼 수 있다. ‘기린제 필두로 각 대학 축제 진행 중’ 기사에서는 각 단과대학 축제의 옛 이름이 등장한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린제(인문대학), 주홍제(약학대학), 담향제(간호대학) 이외에도 이제는 명칭이 사라진 건미제(체육대학), 향음제(음악대학), 항아축전(법정대학) 등의 명칭을 확인할 수 있다.

700호 1면의 ‘음악관 신축기념 국악제 개최’ 기사는 음악관 신축을 기념해 6일 동안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렸음을 알린다. 캠퍼스 남쪽에 터줏대감처럼 자리하고 있는, 올해로 완공된 지 30년을 맞이한 음악관이 700호 발행 당시인 1981년에는 캠퍼스에서 가장 신식 건물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면 르포기사 ‘문명차단지 벽지의 교육현황’에 실린, 손으로 그린 그래픽이 정겹다. 취재지였던 강원도 사곡리 사곡분교의 약도와 1~6학년 학생 수를 나타낸 표 등이 손그림과 손글씨로 지면에 올라 있다. 당시 컴퓨터를 이용한 그래픽․문서 작업이 상용화되지 않아서다.

△800, 900호(1985년 8월26일, 1989년 9월25일)

800호 이대학보는 대학생들의 학생운동 분위기로 온통 채워졌다. 2면의 사설과 3면의 ‘한마디’, 7면의 ‘학원문제 해결주체는 대학이어야’에 따르면 1985년 여름방학 당시 학생운동에 대한 일제 수사가 실시돼 많은 학생들이 구속․수배됐다. 본교의 경우 1985년 총학생회가 8월 교내캠프인 ‘해방제’를 추진하자 학생처가 4일간 교문을 폐쇄하고 학생 출입을 통제하는 사건이 있었다. ‘교내캠프는 학생에게 의식화 기회를 제공하므로 전면 불허한다’는 정부의 입장에 따른 결정이었다. 갑작스럽게 교문이 폐쇄되면서 많은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서성이거나 발걸음을 돌렸다.

900호에서는 그간 함께 사용됐던 ‘~읍니다/~습니다’ 중 ‘~읍니다’가 사라지고 ‘~습니다’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1988년 개정돼 1989년부터 시행된 국문법 개정안에 따른 변화다.

14면 ‘학술행사 강화하고 동아리특성 살려’ 기사에서는 1989년 제5회를 맞은 동아리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동아리 공연과 학술행사, 전시회 등이 3일간 진행됐다. 동아리제는 1985년 동아리연합회가 만들어지며 ‘써클제’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행된 후 현재까지 ‘동아리주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1000, 1100호(1993년 9월20일, 1997년 11월24일)

창간 후 39년 만에 제1000호 이대학보가 발행됐다. '지령 1천호 이대학보'는 24면이라는 사상 최다 매수 특집호로 구성됐다.

6면 왼쪽 구석에 조그맣게 실린 ‘새책알림터’ 코너에 눈이 간다. 노미화 작가의 「당신 참 재미있는 여자야!」라는 책이 소개돼 있다. 책 가격은 4천5백원으로, 요즘 책의 반값도 안 된다.

1100호 1면의 ‘24일부터 98학년도 입학원서 교부’ 기사에는 입학원서를 방문 혹은 우편 접수하던 시절의 추억이 녹아 있다. 특별전형, 특차모집, 정시모집 지원자는 각 접수기간에 맞춰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에 마련된 접수처에 원서를 직접 제출해야 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원서접수가 인터넷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이런 풍경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6면의 ‘이화게시판’에는 ‘축하’ 코너가 있었다. 과학교육과 학생들이 함께 쓴 ‘김주하양(과교․04)이 MBC 아나운서 모집시험에 최종합격 했습니다. 축하해 주세요.’라는 글이 보인다. 그때의 코너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최근에는 여론면의 ‘@ewhaweekly' 코너가 이화인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고 있다.

1200, 1300호(2002년 5월6일, 2006년 11월20일)

컬러 신문의 시대가 열렸다. 새천년 열풍으로 떠들썩했던 2000년의 첫 신문 1150호(2000년 2월12일 발간)부터 현재와 같은 컬러․흑백 혼합형 이대학보가 자리잡았다.

1200호 1면 ‘이화를 알리는 투어리더 모집’ 기사에 따르면 2002년에 제5기 ‘캠퍼스투어리더’를 모집했다. 당시 홈페이지에서 투어리더를 모집했다는 내용을 통해 1100호와 1200호의 발행시점 사이에 컴퓨터와 인터넷이 빠른 속도로 상용화됐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7면의 기고글 ‘생활관 404호, 스피커로 마을버스 방송 들려’에서는 생활관 특정 강의실 스피커에서 근처를 지나는 마을버스 기사들의 대화 내용이 흘러나오곤 했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접할 수 있다.

1300호는 발행된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이대학보다. 1면 디자인이나 편집, 글씨체 등 거의 모든 모습이 현재의 학보와 흡사하다. 총학생회 선거, 기말고사 시험시간표 안내, 멘토링 프로그램 등 낯설지 않은 주제의 기사들이 실려 있다.

2면의 ‘수강신청 중복 로그인 하지 마세요’ 기사를 통해 2006년 2학기까지는 수강신청 홈페이지에 중복 로그인이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나의 학번으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접속할 경우 마지막을 제외하고는 자동으로 접속이 취소되는 현재의 시스템은 2006년 겨울계절학기 수강신청부터 도입됐다.

문호은 기자 he@ewhai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