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정성, 오색 빛깔 만두 속에 담기다
소박한 정성, 오색 빛깔 만두 속에 담기다
  • 최은진 기자
  • 승인 201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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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어머니 뒤 이어 서울식 손만두 잇고 있는 자하손만두 박혜경씨


해질녘이면 자줏빛 노을이 내려‘자하(紫霞)’라고 불리는 종로구 부암동에는 늘 손님으로 북적이는 만두가게가 있다. 인왕산 중턱에 위치한 외진 곳임에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만두를 먹기 위해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서울식 손만두의 전통을 잇고 있는‘자하손만두’주인 박혜경(교육학전공·77년졸)씨의 만두를 맛보기 위해서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그가 내놓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아삭한 숙주와 기름지지 않은 돼지고기, 부드러운 두부 등으로 꽉 채워진 만두는 처음에는 짭짤한 맛이 없어 맹맹하다고 생각되지만 씹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맛이 강한 인공조미료를 쓰지 않아 첫 입에 맛있다고 생각하긴 힘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좋은 재료와 정성으로 채워진 만두 맛에 빠진 손님은 두고두고 가게를 찾죠.”

그가 운영하는 자하손만두에서는 좋은 식자재를 구하기 위해 만두에 들어가는 갖가지 채소와 고기, 녹두 등을 일일이 살피며 직접 장을 본다. 주재료는 재배환경, 상품의 품질 등을 꼼꼼히 알아본 후 산지에서 각각 제철에 받아 장만한다. 좋은 음식에는 사람의 기운이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반죽을 빚을 때는 기계로 반죽을 만든 뒤 반드시 발로 반죽을 한 번 더 밟는다.

이렇게 박씨가 정성껏 빚어낸 만두 속에는 손님을 향한 마음만큼이나 애틋한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녹아있다.

“만두는 어렸을 적부터 가족끼리 해먹던 별식이었어요. 명절만 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두 동생과 다 같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었죠.”

부엌 아궁이에서 물이 끓는 동안 만두를 빚으면 완성되기가 무섭게 물속으로 들어갔다. 옆에서 일손을 돕는 척하던 동생들은 익힌 만두들을 몇 십 개씩 낼름 집어먹고는 배부르다며 낮잠을 청했다.

“제가 만두를 예쁘게 빚는다는 것은 집안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었어요. 어렸을 적부터 칭찬을 하도 많이 들어 만두 만드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죠.”

박씨가 가게를 내게 된 것은 1993년 봄이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인왕산을 개방하자 올케와 함께 소일거리로 만두집을 열기로 결심한 것이다. 

“원래 음식을 만들어서 남에게 대접하는 것을 좋아하던 차에, 집 앞을 왕래하는 등산객들에게 제가 자신 있는 음식을 대접하면 어떨까하는 생각해서 가게를 시작했죠.”

가게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집 앞마당에 파라솔 세 개, 의자 몇 개 놓인 조촐한 가게였다. 가게를 찾은 손님도 하루에 열 명 안팎이었다. 손님이 많지 않았지만 손님을 끌기 위한 홍보는 삼갔다.

“음식 맛은 음식을 먹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우리 집 음식이 맛있다’며 주변에 권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어요. 다만 음식이 입맛에 맞는 손님은 자연스레 다시 찾아줄 것이라고 믿었죠.”

그의 믿음은 차츰 실현되기 시작했다. 가게를 운영하는 햇수가 늘어가면서 손님들도 조금씩 늘어갔다. 가게를 시작한지 5년 뒤에는 손님이 꽤 많아져 할아버지 대부터 살아온 집을 식당으로 개조해야했다. 2005년에는 신세계 백화점에서 제안을 받아 가게를 입점했다. 

20년 가까이 운영해오다 보니 그의 만두집에는 몇 년씩 꾸준하게 가게 문턱을 밟는 단골손님들이 많아졌다. 그는 가게를 운영하면서 단골손님이 제안하는 것을 받아들여 메뉴로 개발하기도 했다.

“소(蔬)만두와 엄나무 손만두는 손님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에요. 소만두는 채식주의자인 손님들의 제안을 받아서 만들었고, 엄나무 손만두는 산림청에 계시는 분이 엄나무 순에 항암 성분이 있다고 권유해 만들어졌죠.”시험 삼아 만들었던 엄나무 손만두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준비했던 재료가 한 달 만에 동이 났다. 

정성이 가득 담긴 만두로 끌어들인 손님들은 가게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됐다. 덕분에 다른 외식 산업들이 휘청거리던 IMF 때도 그의 만두 가게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2004년 만두 파동 때조차도 그의 손님들은 줄어들지 않았다.

“만두 파동 때문에 착한 만두집에 애꿎게 해가 가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시며 가게를 찾는 분들이 많았어요. 한마디씩 건네며 격려해주시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요.”

예순을 목전에 둔 박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정성껏 만두를 대접하며 보내온 지난 20년을 후회없는 세월로 추억한다.“만두가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에겐 그것이 제 삶이 됐어요. 이 만두 가게에 제 열정을 다 쏟아 부은거죠.”

그는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만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다.

“음식에는 만든 사람의 마음이 반영돼요. 마음이 조금이라도 해이해지면 곧바로 음식 맛이 변하죠. 그래서 항상 만든 음식을 직접 먹으며 음식에 제 자신을 비춰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한결 같은 맛으로 손님들을 대접하고 싶거든요.”           

최은진 기자 perfecto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