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에 문제가 있는거 같아요.”학생 한 명이 찾아와서는 불쑥 시험지를 들이민다. 학생은 수업시간에 교수가“잘했다”고 칭찬해줬던 똑같은 답변에 왜 TA인 내가 감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시험은  명예훼손에 관련된 문제였다. 미국에서는 보도내용이 사실인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생은 유명인의 사생활을 보도하는 특정인과 그 가족에게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으므로 언론사의 과실이 인정된다고 적었다. 논리적으로 정돈된 답안이었지만 틀린 결론이라 감점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학생도 수긍하고 돌아갔다. 이후 이런 일이 몇 차례 더 있었다.

하루는 교수를 찾아갔다. 학생들과 이런 마찰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더니, 교수는 수업시간에 이뤄지는 토론과제를 너무 꼼꼼하게 채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시험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가 판가름날 것이니 토론과제는 웬만하면 다 만점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후 교수 말대로 채점하자 학생들의 항의도 사라졌다. 하지만 학생들이 수업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언제나 찜찜하게 남는다. 학기를 마친 지금의 결론은, 결국 학생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이 무어라 말하든 교수들은 절대로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창의성은 사실 여기에서 비롯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도 모두들 괜찮다 재미있다고하기 때문에 시작도 전에 풀이 꺾이는 일은 없다. 하지만“좋다”는 한 마디는 가장 손쉬운 방관법이기도 하다. 학생들의 과제에 비판적인 코멘트를 다는 순간, 교수는 수많은 개인 면담을 가져야한다.

코멘트에 대해 어떻게 고치는게 좋겠느냐, 나의 의도는 이런 것이 었는데 아무래도 잘못 전달된 것 같다 등 학생들은 갖가지 이유로 교수를 찾아올 것이다. 반면, 잘했다 좋은 생각이다라고 하면, 학생들은 따로 교수를 찾지 않는다. 과제 채점을 손쉽게 하는 순간 학생들의 항의가 사라졌듯이 말이다.

 미국인 친구는 이에 대해“윈윈”이라고 말했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면담 시간을 할당할 필요가 없어서 좋고 학생들은 괜히 기분상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문제는 잘못된 자신감으로 가득찬 학생들이 미국대학 안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늘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기로 유명한 교수도“사실 많은 학생들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수의 천재를 키우는 미국교육, 그 뒤에는 또 다른 그늘이 있다.



한지영씨(일반대학원 언홍영 석사, 10년 졸)는 현재 미국 미네소타 대학(University of Minnesota)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School of Journalism and Mass Communication) 석사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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