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던 그날부터 오늘까지, 인생의 영원한 멘토 멘티…인연과 추억 가득한 네 사제의 특별한 이야기


<편집자주> 과거 사제지간으로 만나 현재 본교에서 함께 재직 중인 교수들이 있다. 양옥경 교수(사회복지전문대학원)와 조상미 교수(사회복지학전공), 김광옥 교수(식품공학과)와 이혜성 교수(식품공학과)다. 본지는 15일(일) 스승의 날을 맞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교 동문이자 스승과 제자이자 현재는 동료인 네 교수. 그들이 첫 만남의 추억부터 현재까지의 특별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서로를 존중하며 학문을 나누는 양옥경, 조상미 교수      
양옥경 교수가 본교에 처음 부임했을 당시 조상미 교수는 갓 입학한 학생이었다. 20년 전 사제관계였던 이들은 현재 한 학교에서 같은 학문을 연구하는 동료가 됐다. 스승의 날을 앞둔 12일(목) 학생문화관에서 이들을 만났다.

이들의 첫 만남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 교수는 당시 학생이었던 조 교수가 설날에 집으로 찾아와 세배했던 추억을 떠올렸다.“설날에 집으로 찾아와 무반주로 노래 부르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남편도 아직까지 조 교수를 씩씩한 여학생으로 기억하고 있죠”조 교수도“교수님이 집에 초대해주시고 학생들과 함께 노래방도 갔다”며“교수님이 김건모의‘핑계’를 부르신 것이 아직 기억에 선명하다”고 덧붙였다.

그는“교수님은 새로운 것들을 좋아하셨다”며“항상 비전을 제시해 주시고 당당한 여성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셔서 교수님이 롤모델이 되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학부생일 당시 사회복지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조 교수가 본인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줄 몰랐다. 조 교수는 2학년 때까지 사회복지학에 큰 흥미가 없었고 사회복지학이 본인의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양 교수의‘지역사회정신건강’강의가 당시 3학년이던 조 교수의 진로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 교수는“지역사회정신건강을 들으면서 사회복지학에 매료됐다”며“그때 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 후로도 양 교수는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조 교수를 직접 찾아가 격려해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유학을 마친 조 교수는 2007년 본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에 부임했다. 양 교수는 교내에서 조 교수에게 더 이상 스승이 아닌 동료로서 존댓말을 쓰며 지내고 있다. 조 교수는“옛날처럼 친밀하게 지낼 수 없을 것 같아 서운한 적도 있었다”며“지금은 교수님과 공과 사를 구분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두 교수는 작년 3월부터 사회복지분야의 여성 지도자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양 교수는“조 교수는 나보다 더 좋은 스승과 학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앞으로도 교육과 연구에 전념해 학생들이 존경하는 스승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 교수를 옛날처럼 선생님으로 대하고 싶었다는 조 교수는“교수님을 보면 나 자신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교수로서 끊임없이 자기 개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며“앞으로도 교수님께서 롤모델로서 계속 자극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리사랑 실천 위해 노력하는  김광옥, 이혜성 교수  
김광옥 교수와 이혜성 교수는 19년 전 스승과 제자 사이로 처음 만났다. 1992년 식품영양학과 신입생이었던 이 교수는 김 교수가 가르치는‘식품학’강의를 들었다.

김 교수는 이 교수가 유난히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3학년 시절 지도교수이던 김 교수에게 진로에 대해 상담 받았고, 학부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김 교수 밑에서 공부하며 사제관계가 더 돈독해졌다.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게 된 것도, 식품공학과 교수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도 김 교수의 영향이 컸다.

“많은 사람들이 교수를 진로로 생각하며 박사과정에 진학하지만 저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할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차츰 김 교수님의‘이화여대 발전과 여성교육에 대한 소명의식’을 본받게 되었고 결국 저도 본교 교수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사제에서 동료로 발전한 김 교수와 이 교수는 19년 동안 한 번도 교류가 끊긴 적이 없었다.

이 교수가 8년 간 외국에서 생활할 때도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나갔다. 김 교수는“2002년 학회 때문에 미국을 갔을 때 이 교수 집에 방문했었다”며“이 교수 아파트에서 함께 깡충깡충 뛰며 즐겁게 월드컵을 봤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축구가 이렇게 재미있는지 몰랐어요’라고 말하던 이 교수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김 교수와 이 교수에게 사제관계에서 동료관계로의 전환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생과 제자관계에서 동료관계로 되며 역할에 따른 기대치가 달라져서 어려웠어요. 새로운 관계에 적응하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했어요.”

이 교수는“자식을 키워 봐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제자가 생기면서 그동안 몰랐던 김 교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이 교수에게 김 교수는 자신이 주었던 도움을 다른 제자들에게 갚으라고 했다. 제자가 스승에게 보답하려면 자신이 받은 도움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꺼이 다음 세대에 베풀려는“내리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두 교수는 이제는 동료로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고있기에 서로에게 의지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한다.
“가족들도 저희가 하는 일을 잘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가 걸어온 발자취를 속속들이 다 알아요. 함께 한 많은 시간들이 저희 관계를 굉장히 소중하게 해요.”

김지아 기자 zia@ewhain.net
황미리 기자 previously@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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