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랄랄라’, 1인 가구 식생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이다, 서울 도심 속 건물 옥상에서 상추, 방울토마토, 가지 등 재배


“삽질은 이 정도면 되나요? 이제 여기에 야콘(남아메리카가 원산지며 모양은 고구마와  비슷한 식물)을 심으면 되죠?”

4월2일 마포구 합정동 카페 4층의 20평 남짓한 옥상은 흙을 옮기고 씨앗을 심는 11명의 사람들로 분주했다. 바닥엔 사람들이 씨앗을 심기 위해 가져온 바퀴 달린 수납상자, 대형 종이원통, 아이스백(Ice Bag)이 널브러져있고 그 옆엔 약25개의 스티로폼 상자가 줄을 맞춰 서있다.

동덕여대 이리아(국문·07)씨는 스티로폼 상자에 흙을 채운 후 고추씨앗을 심었다. 이정인(경영·03년졸)씨는 나무 관 상자에 가지, 방울토마토, 잎채소 씨앗 등을 심고 정수기 물통에 물을 담아 흙에 뿌려준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플라스틱 요거트 숟가락에 각자의 이름을 적어 개인 화분에 붙였다.

이 작물들은 1년 내내 함께 땀 흘리며 텃밭을 가꾼 약20명의‘이웃랄랄라’회원과 이웃에게 돌아간다.

건강한 밥상을 만들기 위해 시작한 도심 농장
이웃랄랄라는 직접 농작물을 재배하는 등 1인 가구의 건강한 식생활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다. 이웃랄랄라는 3월22일 이정인씨의 개인프로젝트로 시작됐다.

이정인씨의 지인 중에는 영양가가 부족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거나 식사를 걸러 건강이 좋지 않은 자취생이 많았다. 1인 가구의 식생활 문제를 생각하던 그는 주말 농장에서 가족들이 같이 씨앗을 심고, 농작물을 재배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도심에 농장이 생긴다면 1인 가구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화예술기획단‘티팟(Tea Pot)’이 작년 3월 말 합정동에 위치한‘벼레별씨 골목 안 커피집’옥상을 이웃랄랄라에게 텃밭으로 내주면서 이정인씨의 꿈은 현실화됐다.

회원들은 대학생, 젬베연주가, 강사, 디자이너, 일반 회사원 등 평범한 20~30대 1인 가구로 이뤄졌다. 회원들은 대부분 합정동 주위에 살았기 때문에 이들은 사실 이웃 사촌이나 다름없었다.
이웃랄랄라 회원 정명주(서울시 마포구·28)씨는“모인 이유가 독특해서 만남이 신선했고 모임 첫 날부터 구성원들에게 애착이 갔다”고 말했다.

시행착오 끝에 거둔 값진 채소, 도심에서 얻은 뜻깊은 보람
이웃랄랄라는 작년 4월 씨앗을 심을 때부터 텃밭을 일굴 때까지 많은 일을 겪었다. 이정인씨는“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흙을 도심에 있는 까페 주위에서 한 줌도 찾아볼 수 없었다”며“회원들은 흙이 없어 가져온 씨앗을 바로 심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흙을 구하기 위해 곧바로 망원동에 있는 산으로 향했다. 성미산 위에서 흙을 비료 포대에 담고 산 아래에 주차한 승용차 트렁크로 나르는 일을 10번 이상 반복했다.

농사에 서툰 회원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텃밭을 가꾸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한동열(경기도 고양시·30) 는“일상에 바빠 농작물을 신경 쓰지 못했었다”며“작년 여름 태풍‘곤파스’로 인해 녹차와 파프리카가 다 뽑히고 병충해가 텃밭을 휩쓸고 가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정인씨는“잘 자랄 줄만 알고 심었던 수박이 영양가 없는 흙 때문에 크지 못해‘엎드린 개구리’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텃밭백과」,「도시농부 올빼미의 텃밭 가이드」같은 책을 옆에 두고 읽으며 작물을 경작해나갔다. 회원들은 농사 관련 정보가 담긴 인터넷 사이트를 참고하기도 하고 다양한 도시 텃밭 강좌도 들으며 농업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다.

작년 5월에는 잎채소들을 솎아주면서 나온 새싹들로 그 자리에서 회원들끼리 새싹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회원들은 6월이 되자 방울토마토, 고추, 완두콩, 고구마 모종을 심었고, 11월에는 막바지 수확물을 거둬들이면서 자신들이 손수 캔 고구마를 삶아 먹었다.

한씨는“내 손으로 키운 농작물이 커가는 모습을 보니 자식을 키우는 느낌이 들었다”며“도시 생활 30년 만에 이런 뿌듯함은 처음 느꼈다”고 말했다.

이웃랄라라는 작년의 경험을 밑거름 삼아 올해 농사 방법, 운영 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이리아씨는“자른 단면에 물기가 많은 감자를 그대로 심으면 쉽게 썩는다”며“이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올해는 숯가루를 묻혀 심었다”고 말했다.

채소와 함께 키워가는 이웃랄랄라의 새로운 꿈
여러 인터넷 까페에 커뮤니티 홍보를 활발히 해 회원수도 약10명 늘어났다. 이정인씨는“작년에는 혼자 모임을 이끌어 나가다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며“이번에는 팀을 구성해 여럿이 책임감을 갖고 커뮤니티 활동을 활성화 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웃랄랄라는 한 가지 걱정을 안고 있다. 텃밭이 있는 까페 옥상 계약이 6월 중순으로 끝나 텃밭을 만들 공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정인씨는“구성원들과 제가 노력한다면 공간 문제는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옥상 텃밭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주위 이웃들이 개인적으로 자신만의 텃밭을 경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며“그 분들과 이웃랄랄라의 경작물을 서로 공유하는 벼룩시장도 열면서 지역 네트워크를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웃’과 즐겁게‘랄랄라’하며 살아가자는 이웃랄랄라 이름의 의미처럼 즐거운 콧노래가 이웃랄랄라를 넘어 지역에도 흐르길 기대해본다.

이채린 기자 chearinle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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