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 시대의 불의를 보고 젊음을 내던진 제자들에게“늬들 마음을 우리가 안다”던 조지훈 선생의 뉘우침에는 훨씬 못 미쳐 인용하는 것조차 민망하지만, 너희의 선배이자 교수로서 나는 애잔한 마음 가득히 너희를 이해할 것 같다.

성적표에 좌절하고, 친구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어디서 나의 미래를 찾아야 할지 방황하고 있어도 모든 게 너희 자신의 책임인 양 무심했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분주하기만 하지 목표가 없다느니, 학습적 지식은 많지만 생각이 깊이가 낮다느니, 부모 의존도가 높다느니 하며 책망만 했었다. 종종 걸음에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는, 그래서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참된 나를 만들 기회도 갖지 못하는 너희들 처지를 모른 척 하였다.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하다. 대학이 너희를 대변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더 좋고 더 다양한 교육과정 개발에 소극적이어서 미안하다. 이제라도 가슴에 꼭 안고 용기를 넣어주며 격려해주고 싶다. 돈과 출세로 모든 것을 줄 세우고 평가하는 각박한 사회에서 나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너희에게 한 세대를 먼저 살아온 교수로서 몇 마디 적어보려 한다.

조언이나 충고라기보다는 교감하려는 작은 노력이라 봐주면 고맙겠다.

세상에 당당하자.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환경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좀처럼 좋아질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청년실업률 9.5%, 체감 실업률 30%, 2명 중 1명만 직장을 갖는 대졸 취업률이 이를 말해준다. 대학을 졸업해도 문 활짝 열어놓고 환영해주는 기업은 많지 않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선 반응이 없고, 오라는 곳에는 왠지 망설여진다. 취업률 통계로 대학을 서열화하고, 문·사·철의 존재를 취업과 연결시키며 그 가치를 폄하한다. 졸업을 유예하면서까지 치열한 취업전쟁에 내몰려 있다.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도 만만치 않다.

장학금도 부족하고 석·박사 학위 이후의 미래라고 보장된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엇으로 당당할 수 있겠냐고 반문할 것이다. 너희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대학의 책임도 크고 사회의 잘못은 더욱 크다. 학문탐구와 취업알선 사이에서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는 대학, 시대를 선도하지 못한 채 정부정책에 순응하려는 대학들이 너희를 불안하게 한다.

이제 대학은 너희와 함께 더 많은 대화를 하려한다. 창의성과 통섭의 사고능력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하고 글로벌 시민으로서 역량을 발휘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노력할 것이다. 더 잘 소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권위적인 교수가 아닌 커리어와 인생의 멘토가 되는 교수로서 연구실 문을 활짝 열고 너희들 곁에 다가갈 것이다. 그러니 당장의 미래가 불투명해 보인다 하더라도 위축되지 말고 당당히 맞서라. 나의 대학 시절보다 너희는 몇 배 더 똑똑하고 명민하다.

매일 아침 신문을 장식하는 여성리더들의 대부분은 너희와 비슷한 고민과 방황을 했던 선배들이다. 상투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젊은 시절의 아픔만큼 미래는 너희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며, 다양한 경험은 미래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세상과 공감하자. 공감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해한 내 마음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느끼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지혜를 갖는 것이다. 최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공감은 인간이기에 가져야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인지 모른다.

제러미 리프킨은「공감의 시대」에서 자신의 취약함과 고통을 인정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없다고 했다. 진정한 자신을 내보여야 세상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상 겸손하고 서로 나누며 남을 배려하고 솔선하는 사람이 돼야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 유대의식을 지닌 시민, 즉 호모 키비쿠스(Homo Civicus)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너희가 공감적 사고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공감의식을 갖고 공감적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다가갈 것이다. 너희도 정복하고, 살아남고, 투쟁하고, 쟁취해야한다는 위계적 사고에서 벗어나‘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존의 생태론적 사고를 이어가면 좋겠다. 

지루하고 길었던 겨울을 보냈기에 올해의 봄은 유난히 더 환하고 반갑지 않던가. 그렇다. 지금 너희의 고민과 방황이 미래를 위한 자양분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너희들 마음을 알았으니 이제 우리 함께 노력해보자. 김장훈의 노랫말처럼“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를 믿어야 한다. 누가 뭐래도 내일은 너희들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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