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슈에서 김일성 북한 주석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고 난리가 났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북한이 우리나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난리가 났지?’

1994년 7월의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일기. 그 아이는 지금 대학교에서 북한학을 복수전공 하고 있다. 바로 필자다.

13 : 3780. 이 숫자는 게임의 스코어가 아니다. 몸소 경험한 남북 화합의 시간이다.

필자는 우리 학교 통일학 연구원에서 주최하는 제 3회 역사 · 통일 · 평화 토론대회에 참가 중이다. 예비 심사 때 자유 주제, 자유 형식으로 13분의 발표를 해야 했다.

우리 팀이 모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한 시간이 계산해 보니 바로 3780분 이었다.

13분을 위한 3780분의 만남. 탈북자 대학생 1명과 필자를 포함한 3명의 남한 학생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사람 통합’을 진정한 통일이라고 보고 논의를 진행했다.

감정적인 호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논거를 찾아보며 우리 스스로를 먼저 설득하고자 노력했다.

논의를 진행하다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돌아 제자리로 올 때면 통일이 참 멀게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기서 주저하지 않고 계속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나누었다. 그 고통의 시간을 함께 겪고 나니 우리 안의 작은 통일을 경험했다. 지금은 당당히 예선을 통과해 본선을 준비 중이다.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 브레인스토밍을 했을 터. 그 결과를 놓고 보니 필자를 포함한 남한의 대학생들은 경제와 안보 측면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었다. 통일 비용과 분단 비용 더 나아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등 말이다.

하지만 탈북자 동료는 통일의 문제가 내 가족, 내 친구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의 탈북자들의 말을 들어 보아도 내 북쪽 고향의 나무 밑 정자에서 쉬고 싶고, 내 친구의 얼굴을 보고 싶은 개인과 밀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논의를 거친 끝에 우리가 생각하는 통일된 한반도는 결국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사는 것 이라고 보게 되었다.

간간히 진행되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자유롭게 왕래하며 살 수 있는 것, 즉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조가 생각한 진정한 한반도의 통일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통일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의 문제를 생각할 때 경제적 손, 이득을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마주하며 보게 될 사람들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에서는 통일의 문제가 경제적 논리의 문제로 더 나아가, 정치적 논쟁거리로 부각될 때가 있다. 통일의 당사자인 남과 북의‘사람’들은 빠져 있는 느낌이 든다.

예비 심사 때 프리젠테이션 마지막에 날씨 예보 배경 음악을 깔고 한반도 지도를 띄웠다. 그리고 각자의 고향에서‘통일 와이파이’를 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줬다. 함경도, 제주도, 전라도, 경상도 그야 말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인 우리 조였다.

이처럼 통일의 와이파이가 전국 방방곡곡에 퍼진다면 통일 날씨는 맑을 것이라며 가운데에 해님을 크게 빛나게 하고 프리젠테이션을 마무리 했다.

처음에는 서먹했지만 지금은 서로의 연애사를 상담할 만큼 가까워진 우리.

남과 북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로 많은 시간 부대끼고 나니 통일은 그리 먼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안의 작은 통일을 먼저 경험했지만 이런 작은 시작이 결국 큰일을 이루게 되리라 본다. 
이 글을 읽게 되는 이화인들도 필자처럼 우연히 북한 그리고 통일을 접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우연’이 호기심으로 호기심이 관심과 애정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사람 통합’의 통일 와이파이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지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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