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집중력은 오래 가지는 못하는 것이어서, 이제는 우리의 관심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있지만, 최근의 가장 큰 뉴스 그리고 사건은 일본 동북지방의 지진이었다. 또 지진에다가 그에 못지않게 무서운 쓰나미가 뒤따라 일어나고 한 번의 큰 재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원전 사고가 이어졌다.

일본에 일어난 이러한 재난과 관련하여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금과 지원 활동의 제공 등으로 보여준 동정심이었다. 세계의 여러 다른 나라 사람들도 원조를 하고 원조를 약속하였지만, 우리나라의 경우가 특이한 것은 아직도 과거사의 기억이 남아 있고 적지 않은 반일 감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표현된 동정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동정심이란 동정을 받는 쪽 보다는 그것을 표하는 쪽의 우위를 학인해주는 일이기 때문에 기분을 좋게 해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것은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다.

다른 해석으로는 이번의 동정심은 우리도 동정의 여유를 가질 만큼 자신이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것이 앞으로의 관계에서 유리한 포석이 되는 일이라는 것이다. 또는 한일 두 나라 사이는 일 년에 500만 명의 여행객이 오고 가는  관계가 되었으니 절로 인간적인 관심이 이는 관계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독일과 프랑스 또 EU 여러 나라의 관계에서 교통과 통신의 발달이 과거의 적대관계를 크게 완화한 사정에 비슷하다. 이런 해석들에 대하여, 과거의 잘못을 충분이 뉘우치고 있지 않는 것이 일본인데, 동정은 무슨 동정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복합적인 요인들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사람의 일인 만큼 이러한 관련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정심은 그러한 생각들이 일어나기 전 조금 더 직접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윤리가 밖으로부터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서 곧바로 나오는 것이라는 것이 맹자의 설명이다.

우물에 빠질 듯한 아이를 보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아이를 구하려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맹자의 관찰이다. 그런 경우에 아이를 구하려는 사람이,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가, 혹 나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의 아이인가, 또는 아이를 구한다면 어떤 보상을 받을 것인가를 짚어 보고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세계 지진의 90%가 일본에서 일어난다고 하고, 이번 지진은 1000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어쨌든 이번 지진은 참으로 위태로운 바탕 위에 부지되고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라는 느낌을 준다. 좁아진 세계에서 근접한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은 삶의 근원적인 불안감을 북돋는다.

희랍 비극의 감정적인 효과는“연민과 공포”라고 한다. 연민은 비극의 주인공이 당하는 참사에 대한 동정심이고 공포는 자신도 그러한 일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하여진다. 그러나 비극의 감정은 이러한 구체성을 떠나서 사람의 삶의 조건이 취약하기 짝이 없다는 일반적인 직감으로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비극의 지적인 의의는 이 깨달음에 있다.

이 깨달음은 단순히 나의 삶의 불안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삶 그 자체--모든 삶이 이 불안 위에 놓여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 보편적인 생명의 불안은 생명의 존귀함과 생명체의 유대감의 토대를 이룬다. 측은지심의 행동이 일어나는 것은 이러한 관련에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일본의 재난에 대한 우리의 동정이 반드시 이 모든 것을 뜻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느낌과 행동에는, 가벼운 것이든 무거운 것이든, 그 나름의 의의가 있다. 그것은 반드시 다른 것으로 치환(置換)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을 원한과 이익과 전략의 계산으로 옮겨 생각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풍조이다. 물론 세상이 그런 만큼, 불가피한 일이기는 하다. 특히 국가의 일에서 이러한 계산이 없을 수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계산으로 환원하는 삶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공허한 것일 수밖에 없다. A는 B로, 또 B는 C로 환산되는 것이 세상이지만, A가 A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삶의 무엇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고, 가치를 가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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