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SUNDAY>, <아사히 신문>에「일본인에게 부치는 단가로 쓴 편지」실은 이승신씨

천년너머 선한 이웃이던 그대 / 내 고통까지 짊어진 그대를 / 깊이 위로하네
삶에 나라에 / 어찌 꽃피는 봄날만이 있으랴 / 그러나 봄이 없는 겨울은 없다
(「일본인에게 부치는 단가로 쓴 편지」중)

3월27일자 <중앙SUNDAY>에는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를 겪은 일본인을 위로하는 단가(短歌, 일본의 정형시로 5·7·5·7·7조에 31음절로 이뤄짐)가 실렸다. 같은 날 일본 <아사히신문>도 일본어로 번역된 같은 단가를 지면에 실었다. 이 단가를 지은 시인 이승신(영문·72년졸)씨를 3월31일 종로구 필운동에 위치한‘예술공간 더 소호’에서 만났다.

이승신 시인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고통받는 일본 국민을 위로하고자 120수의 한국어 단가를 썼다. 그는 2년 전부터 단시(短詩, 3~4줄 분량의 시)를 지어왔다.“단가는 일본의 대표적인 시이자 일본인들의 정신적인 지주에요. 많은 국민이 31음절인 한 줄의 단가를 짓기 때문에 단가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단가는 온 세계가 일본의 최고급 문화로 알고 있지만 본래 우리의 시문화다. 단가는 약1천400년 전 백제가 전쟁에 패해 전 국민이 일본으로 건너갔을 당시, 백제의 왕족과 귀족이 일본에 가르쳐준 시이기 때문이다. 

“금전으로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예와 품위를 갖추어 그들의 마음을 만져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시면서 일본의 고급문화로 알려진 단가를 양쪽 국민에게 전하면 우리의 위신과 격을 살리면서 일본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되겠다 싶었어요.”

120수의 한국어 단가는 이씨의 손에서 3일 만에 완성됐다. 마스부치 케이이치 한일문화교류연합회 회장이 한국어 단가를 일본어로 번역했다. 완성된 한국어·일본어 단가는 <중앙SUNDAY>, <아사히신문>에 보내져 각각의 신문에 21수, 5수가 실렸다.“일본어로 번역된 단가를 읽은 많은 독자들이 신문사에 연락해‘전문을 보고 싶다’는 요청을 했다는 얘기를 신문사로부터 전해들었어요.”

그의 어머니는 한국의 유일한 단가 시인인 손호연씨다. 손씨는 과거 일본 천왕과 황후가 자신들이 지은 단가를 낭송하는 신년행사인‘가회시(歌會始)의 의(儀)’에 단가 대가로 궁에 초청된 바 있다. 이번 일본 피해지역인 아오모리 현에는 손씨의 노래비도 세워져 있다.

“어머니는‘예술공간 더소호’가 세워지기 전 이 집터에서 평생 시를 쓰셨으나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대신 일본에서는 최고의 단가 시인으로 인정받으셨죠.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자신의 시심을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재난에 슬퍼하시면서 기가 막힌 단가로 일본 국민에게 위로를 전하셨을 거예요.”

그는 한국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어머니의 시심과 정신을 전하기 위해 단가 번역에 뛰어들기도 했다.“전 세계에 단가를 번역한 예가 없을 정도로, 단가의 운을 맞춰 번역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영문과를 다닐 때 영문학을 번역한 것이 도움이 됐죠.”

이씨는 일본어로 된 어머니의 단가집 3권을 한국어, 영어 등으로 번역·출판하는 과정을 통해 일본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

재난을 당한 일본에 대한 그의 진심어린 마음이 담겨서일까. 일본인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그의 소리가 120여수의 단가를 넘어 마치 귀에 들려오는 듯하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 속 깊은 / 연민의 마음을 전하고 싶네
나는 믿네 / 이 위기가 눈부신 비약이 되는 날 / 반드시 오리라고


                한주희 기자 hjh230@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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