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실업의 귀인(歸因), 누구의 문제인가?
청년실업의 귀인(歸因), 누구의 문제인가?
  • 강혜련 교수(경영학과)
  • 승인 2011.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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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칼럼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80%에 이르고 이처럼 높은 대학 진학률이 눈부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이들 자랑스러운 젊은이들이 졸업 후 갈 곳이 없다니 얼마나 절망스러운 일인가. 고시여풍(女風) 거세고 여성 취업자가 사상 처음 1000만명 돌파했다는 소식이 흥겹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 처지가 서글프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실업의 직접적 원인은 대학진학률은 높아진 반면 이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90년대 중반과 비교해불 때 대졸자는 23만명이나 늘어난데 비해 공공기관과 대기업 등 소위‘좋은 일자리’는 오히려 40만개나 줄어들었다. 태어나서 줄곧 학교만 다니다가 이제 대학졸업 후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시작도 못해보게 만드는‘공공의 적’은 도대체 누구이며 누가 책임질 일일까?

대학까지 졸업한 젊은이에게 일자리 하나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가 무능한 것인가? 중국 등 연간 경제성장률이 10%를 상회하는 일부 국가들을 제외하면,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 선진국가들(예; OECD 회원국)은 예전만큼 고용이 창출되지 않으므로 실업문제가 최대 현안이 될 수밖에 없다.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실업, 특히 청년실업의 문제를 쉽게 해결할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비싼 등록금에 제 밥벌이 할 능력도 못 키워준 대학이 무책임한 것인가? 대학의 교육내용과 산업현장이 서로 동떨어진 점이 있어 구직과 구인 간 미스매취(mismatch)를 취업난의 한 원인으로 볼 수도 있다. 대학의 존재 이유가 진리 탐구임을 새삼 일깨우지 않더라도 학생들의 취업 수월성을 높이기 위해 대학이 적극 나서야한다는 주장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대학교육에서 성장이 가장 빠른 부문이 기업대학(corporate college)이다. 세계 도처에 자체 캠퍼스를 세워 필요한 인력을 직접 양성하는 기업대학의 확산은 결국 대학의 실제교육과 산업현장의 요구 간에 생기는 간극을 메우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인다.

좀 더 솔직해진다면 사실은 취업걱정하지 않을 만큼 큰 재산을 갖지 못한 부모가 원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의 부모일수록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자식 교육에‘올인’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대졸학력 자식에게 주어진 임무라면 부모를 탓하는 것 또한 적절한 귀인은 아닐 듯싶다.

이 모든 원망들 속에 나 자신은 어떤 원인 제공을 하였을까? 글로벌 경제의 지식기반사회에서 대학진학을 통해 고등교육의 수혜자가 된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지금의 대학진학 선택에는 내 자신 이외의 많은 다른 요인이 작용했지만 대학졸업 후 어떤 인생경로를 여느냐의 문제는 결국 내 몫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취업에 성공한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그 비결을 물었더니‘면접에서 자신감있는 모습 어필’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다고 한다. 학점이나 영어점수, 수상실적 등  소위‘스팩’의 위력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렇다면 이러한‘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개인의 자심감은 내 안에서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내 신념과 상관없이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할 때 진정한 자신감은 내면화될 수 없다. 정서적 애착과 정서적 몰입을 주는‘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고, 그 일을 정말 갖게 될 때까지의 정신적, 물질적 고통은 온전히 내 몫임을 부정하지 말자.

다른 동물과 비교해 인간이 지니는‘고유한 가치’는 더 나아지기를 소망하거나 상상하는 능력에 있다고 한다. 즉, 본래의 모습보다 더 나아지기를 열망하는 동물은 인간 외에는 없다(원하는 체형을 만들기 위해 다이어트하는 동물을 본적이 있는가?). 인간만이 더 나아지려는 열망을 갖고 있다. 우리 모두는 더 나아질 수 있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