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

새 학기 시작의 설렘 속에서 하루하루 보내고 나니 어느덧 3월의 끝이다.‘이것만은 꼭 지키리라’다짐하면서 펜 꾹꾹 눌러가며 짠 계획표에는 엑스표시(X)가 늘어만 가고 한숨은 절로 나온다.

 

늘 그렇듯 초심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의지가 충만했던 처음의 마음가짐은 밤하늘에 폭죽처럼 튀어 올랐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그라지고 이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는 패배감에 젖기 마련이다. 이처럼 목표한 바와 현실의 간극에서 오는 좌절감,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겪는 심정이리라. 3월을 시작하며 나 자신과 약속한 굳은 결심들, 잘 지켜나가고 있는지 자문하며 진선진미(盡善盡美)의 가치를 되새길 시점이다.

진선진미(盡善盡美)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록인《논어(論語)》에 등장한다. 진선(善 착할 선)진미(美 아름다울 미)는 일차적으로 착하면서 아름답기까지 한, 완벽한 상태를 일컫지만, 그 속에 목표의 올바름과 과정의 올바름을 함의한다. 목표가 바르지 않은데 그 과정이 바를 수 없고, 과정이 바르지 않은데 그 목표가 바를 수 없다. 따라서 공자가 전하고자 한 말은 목표와 과정의 동일함이다.

목표와 과정은 동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하나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러므로 목표에 미치지 못했다고 해서 거쳐온 과정을 부정하거나 혹은 목표를 이뤘다고 해서‘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듯’과정에 무심한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우리는 종종 결과에 집착하여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한다. 좋은 날이 있으면 반드시 조금 덜 좋은 날도 있고 좋지 않은 날도 있는 법인데 언제나‘오 해피데이’를 갈망한다. 그래서 목표한 바에 이르지 못했다거나 혹은‘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옛말처럼 일단 목표에 도달하기만 하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거친 과정은 깡그리 무시해 버린다.

내 경우엔 작년 3월, 새내기의 부푼 꿈을 안고 마주한 대학이 그러했다.‘아싸! 드디어 나도 대학생!’남들보다 1년 늦게 단 꼬리표인 만큼 더욱 설렜고 기대로 가득 찼다. 그러나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은 3월부터 산산조각 났다. 아름다운 꿈을 품은 지성인들이 모인다는 대학은 어디로 갔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열정을 키워나가야 할 파릇파릇한 새내기들의 관심은 온통 남자, 패션, 연예인, 취업을 위한 스펙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채워지지 않던 그 공허감과 좌절, 우리는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과 눈앞에 목표를 혼동한 것이 아닐까.

인생을 대장정에 비유한다면 지금 이 순간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대장정은 유의미하다. 흔히 생각하는‘끝’이 없는 대장정을 하고 있으면서 눈앞에 길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와 불안에 떨지 말자. 길을 걷는 과정에서 한층 더 성숙해진‘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층 더 나아진‘나’가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아닐까. 명문대 진학만을 꿈꿔오다가 이화에 발을 내딛는 순간,‘이제 다 끝났다’며 나태해지는 새내기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또한, 목표를 이루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쫓기면서 과정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신명, 유익함을 놓치는 어리석은 이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대장정 완주가 목표가 아닌 대장정 과정에서 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자.

그 어떤 계획도 다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시작의 거창함이 부끄러워지려는 찰나, 진선진미의 뜻을 되새겨 보자. 당장에 현실이야 어떻든 우리는 길고 긴 길 위를 걷고 있다. 눈앞에 작은 늪이 대장정을 가로막기에는 우리의 길이 너무나도 소중하지 않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알다시피 그처럼 무사안일하게 살아가기에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하지만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습은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난다. 그러니 독(毒)과 진선진미(盡善盡美) 중 하나를 고르라면 진선진미를 택하겠다. 나는 진선진미를 차고 선선히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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