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몇 년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줄기 세포 복제 스캔들이 터졌을 당시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물학 지식수준은 대단히 상승했다. 그 후 천안함 사건이 터지자 갑자기 조선공학과 어뢰에 관해 모두 전문가가 되어 자고 나면 새로운 이론과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흘러나왔다. 이제 원자핵공학과 지진연구 차례인 듯하다.

뉴스를 보고 있자면 한국이 아닌 일본에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일본 지진소식과 원자력발전소 안전문제를 집중 방송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이 보여주는 놀라울 정도로 성숙한 시민의식과 차분한 방송태도에 반해 격앙된 목소리와 자극적인 화면을 사용하는 우리의 모습은 사뭇 대조적이다.

일본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나라이면서도 자연재해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씁쓸하고 우리의 현재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140년 만에 최악이라는 이번 일본의 지진은 엄청난 경제적 후폭풍을 동반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몇 명이 사망하고 실종되었는지, 원전 안전성의 심각한 위협에 초점이 맞춰지겠지만 세계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실로 추정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속으로 세계경제가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에서 영향력이 큰 부국의 공급충격은 세계 각국으로 빠른 시간 안에 전파된다.

자연 재해는 해로운 공급충격의 대표적인 예이다. 해로운 공급충격이란 비용을 상승시키는 예측치 못한 요인이 발생하는 경우를 뜻하는데, 비용 상승은 곧 가격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해로운 공급충격이 있게 되면 증가한 가격으로 인해 경제가 위축되면서 다른 조건이 일정하다면 경기 후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게 된다. 과거 70년대에 두 차례에 걸쳐 세계 경제가 혹독하게 겪었던 오일쇼크로 인한 물가상승과 경제 불황이 그 예이다.

한국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수출에서 6%, 수입에서 15.1% 이지만 그 영향력은 수치로 표현되는 이상이다. 정밀공업분야에 독보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일본은 아시아 제조업 부품의 주된 공급기지이다.

일본 부품 업체의 생산 중단이나 물류마비로 인해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아시아경제 전체가 영향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에 허덕이던 일본경제가 거대한 재난에 과연 제대로 버텨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주가와 엔화가 급락하고 그 여파로 결국 베어링은행이 파산하면서 향후 3년 동안 아시아 경제를 송두리째 흔든 금융대란이 촉발되었던 것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고베 대지진 전 꾸준히 강세를 보이던 엔화로 거품을 만들었던 동남아 국가들은 엔케리 자금의 대이동으로 외환보유액이 급격하게 낮아지고 자산시장이 무너져 내리게 되었다. 그 영향권에 있던 우리경제도 결국 1997년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하게 되는 외환위기를 겪게 된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충격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세계경제가 또 다시 일본발 경제 쓰나미에 휩쓸릴 경우 그 충격은 매우 커서 당분간 세계적 경기침체를 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물가 상승이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쉽지 않다.

물가는 특성상 상승이 시차를 두고 서서히 나타난다고 할 때 올해 경기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 이미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3%를 넘어서 4%로 진입한 가운데 중동사태로 인한 국제유가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추세이고 곡물과 원자재 가격 등이 상승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어수선한 국제정세와 직접적인 공급충격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한층 자극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물가 상승요인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가상승은 실질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만 단기에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정부는 최근 직접적인 통제와 병행해서 금리를 인상하는 거시정책기조의 방향 전환을 꿰하고 있다.

만약 정부의 설명대로 물가상승이 공급 측 요인에 주로 기인한다면 수요억제 차원에서 금리인상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커지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와 기업의 부채가 증가하게 되면 경기 불황으로 빠져들 가능성도 우려된다. 묘안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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