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시각장애여성 바리스타로 고용해 경제적 자립 돕는‘카페 그래서’와‘카페모아’를 찾다

취업취약계층으로 분류되는 이주여성·장애여성을 바리스타로 고용해 이들의 자립을 돕는 카페가 있다. 서울시 영등포구 ‘카페 그래서’에서는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이민 온 이주여성 1명이 일하고 있으며, 봉천역 인근에 위치한‘카페모아’에서는 시각장애 1급을 판정받은 5명의 여성이 일하고 있다. 10일(목) 여성들이 바리스타로 활동하고 있는 카페를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국적인 디저트와 빵으로 한국 손님들의 시선 끄는 ‘카페 그래서’

174cm의 키, 오똑한 코, 쌍꺼풀이 짙은 눈. 이국적인 외모의 알료나씨가 주방에서 밀가루 반죽을 빚고 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담스키에발츠키’쿠키가 만들어졌다.

“이 쿠키 맛닛어요. 한번 드서보세요.”

3월10일(목) 오후1시 이주여성 알료나씨와 그로부터 카페 일을 배우고 있는 권순현(서울시 서대문구·31세)씨, 구수현(서울시 관악구·20세)씨가 음료와 빵을 만들고 있었다.

‘카페 그래서’는 사회적기업‘오가니제이션 요리(오요리)’가 2007년 9월 청소년과 여성의 교육·성장·자립을 위해 만든 창업공간 중 하나로 커피와 수제 디저트를 판매하는 곳이다. 이곳은 청소년과 경력 단절 여성, 다문화 이주여성들을 대상으로 바리스타 트레이닝을 진행하는 교육 공간이기도 하다.

‘오요리’는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카페 일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주여성들을 교육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이주여성인 알료나씨와 찔레씨,‘오요리’에서 교육하는 청소년요리사 영셰프 1명, 바리스타가 되고 싶은 지체장애인 1명이 직접 만든 빵과 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카페 그래서’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그래서’라는 말을 덧붙이며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는 것에 착안해 지어진 이름이다. 카페가 단순히 식음료만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청소년, 이주여성 등 하자센터 안에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 소통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고자 하는 바람을 담았다.

매일 오후3~4시‘카페 그래서’에는 러시아빵을 굽는 향이 퍼진다. 러시아 말로 여인의 손가락이라는 의미가 담긴‘담스키에발츠키’, 소시지빵과 닮은‘쏘시스까’, 새둥지를 닮은‘그니즈도’등 빵 종류가 다양하다. 빵들이 나오는 시간이 가까워지면 빵을 예약하려는 사람들로‘카페 그래서’는 북적거린다.‘카페 그래서’의 다양한 메뉴를 맛보기 위해 하루에 평균 약50~60명이 찾아온다.

알료나씨는 2009년부터 6개월간 바리스타·서비스 교육을 받았다. 그는“처음 카페에 근무할 때 메뉴 이름을 외우고 계산 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의미가 헷갈리는 단어가 있어 주문을 받을 때 서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국말이 서툴렀던 그는 일을 하면서 꾸준히 한국어 실력을 늘렸다. 그는 손님이 주문을 하는 도중 모르는 단어를 듣게 되면 즉시 카페팀장들을 찾아가, 단어의 의미를 풀어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카페 그래서’가 제공하는 한국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부하기도 했다.

이제 그는 러시아빵을 한국 사람들에게 소개해줄 수 있어 하루하루가 뿌듯하다고 말한다. 알료냐씨는 어렸을 적부터 러시아에서 어머니에게 배운 제빵기술을 발휘해 다양한 빵과 디저트를 만들며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그는“카페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문득 러시아에서 먹어봤던 빵을 만들고 싶었다”며“처음에 빵을 만들었을 때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반응이 좋아 기쁘다”고 말했다.

‘오요리’이연미 기획팀장은“알료냐씨는 여전히 제 별명인‘로시’를‘러시’와 헷갈리기도 하지만 손님에게 농담을 던질 정도로 한국말에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알료나씨에게 바리스타·제빵 교육을 받고 있는 20살 상근씨는“외국인이 나보다 말을 잘하고 능숙하게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보면 멋있다”며“함께 일한지 한 달 밖에 안 됐지만 친화력이 좋은 알료나가 말을 잘 걸어줘 쉽게 친해졌다”고 말했다.

이씨는“알료나는 직접 만든 러시아식 케이크로 하자센터 모든 직원의 생일을 축하해주기도 한다”며“속정이 깊은 알료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고 말했다. 

올해 4월부터, 알료나씨와 출산휴가로 잠시 쉬고 있는 미얀마 출신 찔레씨는 홍익대 인근‘카페 슬로비(천천히, 더 건강하고 나은 삶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로 출근한다.‘카페 슬로비’에서 이들은 전문적으로 카페 일을 배우고 외부환경에 적응하는 훈련을 한다. 알료나씨는“‘카페 슬로비’와‘카페 그래서’의 경험을 통해 훗날 나만의 카페를 창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알료냐씨는 “사람들과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인‘카페 그래서’에서 활동한 후에는 ‘카페 슬로비’를 통해 더욱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며 자신을 성장시켜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말했다.

△시각장애여성들이 바리스타 꿈을 키우는 공간,‘카페모아’

“어서오세요! 카페모아입니다. 주문하시겠어요?”

10일(목) 고객을 맞이하는 여성 종업원의 표정이 밝다.

“시럽 넣은 카푸치노 한 잔 주세요.”

종업원은 주문을 듣자마자 능숙하게 커피를 내린다. 그는 커피, 크림, 자바칩이 담긴 여러 병 앞에서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이내 시럽이 든 병을 골라내 카푸치노 안에 넣는다.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바리스타 이선주씨다.

‘카페모아’는 여성시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세계 최초의 가게다.  커피 맛과 종업원들의 매너는 일반 카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은 여성시각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고자 2009년 4월20일‘카페모아’를 창립했다.‘카페모아’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여성시각장애인이 바리스타 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다.
‘카페모아’에서는 월~토요일 오전8시부터 오후11시까지 5명의 시각장애인 바리스타와 3명의 비장애인인 매니저가 2교대로 근무한다. 주문과 계산, 테이블 정리 등은 매니저가 담당하고, 시각장애인 바리스타는 커피 제작과 품질 관리에 집중한다.

이선주씨와 배성희씨는 이곳에서 근무하기 전 실로암시각장애복지관이 2009년 여성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3주 간 진행한 바리스타 교육을 받았다. 교육을 수료한 뒤 배씨는 2009년 말부터, 이씨는 작년 초부터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바리스타로 처음 근무했던 초창기에는 실수도 많이 했다. 음료를 만들다가 뜨거운 물에 데거나 다른 사람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아 서로 부딪히기도 했다. 배성희씨는 “일을 시작한 후 2~3달은 고객을 대하는 일이 두려웠다”며“커피 재료가 잘 보이지 않아 맛없는 커피를 만들지 않을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1년 반 동안 꾸준한 노력과 연습을 하면서 근무 초창기에 겪었던 어려움을 이겨냈다. 이씨는“손에 쥔 잔에 전해지는 온도로 커피 양을 조절하고, 스팀 소리를 들으며 우유거품 양을 맞추는 등 꾸준히 연습해 두려움을 극복했다”고 밝혔다. 배씨는“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물의 양은 계량컵을 이용했다”며“카페 일에 쉽게 적응하기 위해 기계의 위치와 동선을 외웠다”고 말했다.

배씨와 이씨는 이제 다양한 메뉴를 자신있게 만들 수 있다. 믹서기 날에 벨 위험이 있는 프라푸치노와 스무디, 섬세함이 필요한 아포가토와 카라멜 마끼아또를 제조하는 것은 이들의 특기다. 이들은 베이글도 굽고 뜨거운 차도 척척 끓여낸다. 개업 초창기에는 기본적인 메뉴만 있었지만 이들의 실력이 향상되면서 와플, 블루베리 요거레또 같은 신메뉴도 개발했다.

배씨는“음료의 종류가 다양해서  만드는 동안 음료마다 색다른 재미를 느낀다”며“일이 지루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바리스타가 되기 전, 이들은 직업을 갖지 못했거나 속기사 등의 직업을 전전했다. 캐디와 제빵사가 직업이었던 배씨는 31살 때 시력을 갑자기 잃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됐다. 그는 속기사 직업훈련을 했었지만 훈련을 제공했던 회사가 갑작스럽게 프로그램을 없애면서 크게 좌절한 적도 있었다.

시각장애인들이 정상인보다 오타도 많이 내고 속도도 매우 느리기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이씨는“소설을 쓰는 것이 꿈이었지만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여건도 좋지 않아 쉽게 도전할 수 없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다 정착한‘카페모아’는 이들이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다. 배씨는“커피를 만드는 시간이 점점 단축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카페모아’에서 일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보람찬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카페모아’에서 일하기 전 시각장애 때문에 늘 누군가에게 보호 받는 느낌이 들었다”며“비장애인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먹으면 먹을수록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는 커피’라는 의미의‘카페모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해주고 싶은 배씨와 이씨는 이곳에서 카페 창업의 꿈을 키우고 있다. 바리스타 자격시험을 준비하면서 커피에 대한 이론을 공부하고 바리스타 대회도 준비할 예정이다. 배씨는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모두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이 넘치는 카페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카페를 통해 새로운 꿈을 꾸게 돼 하루하루가 즐겁다는 배성희씨, 이선주씨. 많은 사람들이 맛보게 될 이들이 만든 커피가 기대된다.


이채린 기자 chearinle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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