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인문학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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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한업 교수(불어불문학 전공)
  • 승인 201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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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프리 (esprit) :‘신의 입김’


많은 사람들이 esprit를‘에스쁘리’라고 표기하고 발음한다. 마치 그랑프리(grand prix)를‘그랑쁘리’로 표기하고 발음하듯이 말이다.

이것은 불어에서 철자 p는 [ㅃ]으로 발음한다는 사실을 모든 경우에 적용하는, 이런바 과잉일반화의 오류다. 불어에서 철자 p는 [ㅃ]으로 발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외적으로 철자 p 다음에 r가 오면 경음이 아니라 격음으로 발음해야 한다.

어원상으로는 에스프리(esprit * 당시 형태는 espirit였고, esprit로 쓰인 것은 14세기로 알려져 있음)는 12세기 초‘바람결·(신의)입김, 성령’이라는 뜻의 라틴어 스피리투스(spiritus)로부터 나왔다.

이것은 아마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일단 신의 입김, 즉 성령을 받으면 탁월한 재치와 재능을 가진 사람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신 내림’을 받는다고나 할까.

어쨌든 에스프리(esprit)는 육체에 대한 정신을 의미하며, 새로운 정신활동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프랑스 사람들은 세련되고 생기 있는 대화를 좋아하는데, 그들의 재치 있고 기발한 발상도 ‘에스프리’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의‘에스프리’는 영국 사람들의‘유머’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일반적으로 영국 사람들은 채플린(C. Chaplin) 같이 웃기는 사람을 좋아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재치 있는 말로 대화를 재미있게 이끌어 가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편, 에스프리(esprit) 다음에 누보(nouveau, 새로운)를 붙이면 글자 그대로 ‘새로운 정신’이라는 뜻으로, 이것은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Le Corbusier)와 오장팡(A. Ozenfant)이 1919년에 발간한 잡지의 이름이기도 하다. 르 꼬르뷔지에는 1925년 빠리 국제장식미술전의 전시관도 ‘Esprit nouveau’라고 명명하였다.

모르긴 몰라도 르 꼬르뷔지에는 에스프리를 매우 중시한 건축가였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