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교수칼럼>
  • 김우창 석좌교수(이화학술원)
  • 승인 201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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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와 내 고집

오늘 아침 신문에는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에 대지진이 났다는 뉴스가 실렸다. 신문에는 무너진 건물들을 배경으로 불안한 모습으로 서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나왔다. 큰 재난이 닥치면 맨 먼저 걱정은 목숨을 보존하는 일이다. 신문에서도 사망자가 75명이라는 사실이 표제가 되어있다.

지금은 정보 폭발의 시대이다. 폭발하는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조금 이상한 비교지만, 대처방법은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의 경우에 비슷한 데가 있다. 그렇다는 것은 정보 처리의 기준점이 내가 된다는 뜻에서이다. 어떤 경우에나 정보는 나의 관심사에 관련되어 의미 있는 것이 된다. 기준이 반드시 개인의 좁은 이해관계라는 말은 아니다.

관심의 범위는 넓을 수도 있고 좁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보가 많아지면, 지진에서처럼, 초점은 나에게 모이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나는 일정한 상황에 전략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의 나다. 자기 관심의 의미를 반성적으로 돌아볼 틈이 없기 때문에. 생존의 이해를 가리는 마음이 그대로 세계를 보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정보는 지진과 같은 사실이 아니다. 정보는 사실을 여유 있게 대처할 전략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삶의 전략에 능수가 된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이 전략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다. 그리하여  세계는 옛날의 종횡가들의 눈에 그런 것처럼 환히 보이는 전략지도가 된다.

정보 가운데 가장 솔깃한 것은 우리 몸에 관한 정보일 것이다. 그것은 건강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몸을 치장하는 데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요즘 듣게 되는 건강 정보의 홍수에 접하면, 모든 일을 그만두고 건강관리사가 되는 것이 옳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병이라도 있다면, 그 정보들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그 처방이 전문적인 의학 지식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그것을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없다. 그람에도 이러한 진단이나 처방에 저항하는 마음이 사람에게 없는 것은 아니다.

신경과학 전문가 올리버 색스는 특이한 신경질환의 이야기들을 모아 여러 권의 책으로 내어 놓았다. 최근의 한 저서에서는 자기의 환자였던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악보를 읽지 못하게 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물에 대한 지각 능력을 잃어버리는 경과를 적은 것이 있다.

이 피아니스트는 일정한 단계를 지난 다음에는 의사를 보려하지 않았다. 사실 색스의 견해로는 그 병은 불치병이지만, 의사를 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진단과 처방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색스는  환자들의 인간적 심리를 섬세하게 고려하는 의료인이다. 그는 진단과 치료의 과정이 인간의 비인간적 객체화를 포함한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그는 그 병 이외의 일에서도 자기의 신상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남이 참견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관찰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어떤 경우에서도 확인된다. 주인공의 고모인 할머니는 병이 들어 집에서만 사는데, 찾아오는 사람 가운데, 이렇게 저렇게 몸을 관리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시 집에 발도 드려놓지 못하게 한다.

좋은 충고와 정보를 거부하는 것은 무지몽매한 태도이다. 그러나 사람에는 자기 존재의 독자성에 대한 강한 의식이 있다. 어떤 때는 그것이 지혜의 기본이 된다. 자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긍정하면서 주어진 운명에 대한 긍정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전략으로 조종될 수 있다면, 그러한 세상에 어떤 위엄이 있겠는가?

대학에 다니노라면 진로 걱정이 생기고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도 듣게 된다. 귀를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략으로만 인생을 유리하게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마음속에 사려 있는 고집이 자아의 진실에 근접해 있는 것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전략가로서의 자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김우창 석좌교수(이화학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