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겨우’ 반이다


소설가 김훈이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을 쓰기 위해 며칠을 고심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버려진 섬마다 꽃‘이’피었다‘는 문장이 좋을지, 아니면 꽃‘은’ 피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를 두고 몇 번을 퇴고했다는 것이다.

한 음절에 불과한 조사일지언정 인상적인 첫 문장이 소설 전체에 미치는 파장의 위력을 알고 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처럼 어떠한 일에서든 시작이 중요함을 역설하는 예다.

2011년 1학기의 개강을 맞으며 모두가 또다시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섰다. 이번으로 여섯 번 째 개강을 맞는 고학번조차도 시간표를 짜면서 새삼스레 들뜨는 마음을 감출 수 없을진대, 신입생은 오죽할까 싶다. 수험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꽃다운 여대생이 된다고 하니 하고 싶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부끄러운 지난날을 회고하면 신입생 때 필자는 무리해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가 결석하는 것이 부지기수였고 실천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희망 목표 리스트’만들기에 열성을 쏟았다.

이러한 현상이 희귀하며 개인적이라고 한정지을 수만은 없다. 예술작품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책의 서문은 십중팔구가 구매욕이 동할 만큼 매력적이다. 대개의 영화 역시 시작한 지 5분에서 10분 동안 진행되는 오프닝시퀀스에서 만큼은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를 보여준다.

새 학기를 맞아 설레는 첫 수업에서는 화자와 청자 모두 열의와 포부가 대단하다. 이 강의를 경청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21세기의 지성(知性)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 화려한 시작에 비해 완벽한 마무리를 맺는 비율은 결코 많지 않다. 생각해보면 15주차동안 빠짐없이 알찬 수업만이 명 강의라는 칭송을 받고, 초반부의 주제의식을 힘차게 밀고 나간 작품만이 걸작이 된다. 이에 반해 적지 않은 숫자의 사람들은‘작심삼일’의 교훈을 몸소 터득하며 중도포기를 할 때도 있고 힘이 달려 간신히 끝맺음을 하기도 한다.

이전에 한 작가의‘시간의 질보다 양을 신뢰한다.’는 발언에 공감한 적이 있다. 짧은 순간의 강렬한 에너지 보다는 켜켜이 쌓인 시간이 만든 깊이를, 다시 말하자면 긴 시간동안의 책임감과 인내가 빚어낸 결과를 훨씬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었다. 물론 시작이 가지는 긍정의 힘을 모두 폄하하려함이 아니다.

출발이란 단어가 가진 원초적 힘은 우리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고 변화의 동력을 이끌어 내는데 이는 분명한 장점이 있으며 또한 중요하다. 하지만 긴 시간이 만들어내는 숱한 장애물들과 관성을 이겨내고 그 힘을 종반부까지 끌고 가는 일은 더욱더 어렵다.

여기 노벨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노먼의 흥미로운 이론이 있다.‘절정과 종결의 법칙’이라는 이론인데 인간의 뇌는 어떠한 일에 대한 만족도를 결정할 때 그것의 절정기와 종결기를 척도로 계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계산법에는 초반부의 인상이 포함되지 않는다.

즉 우리가 한 사건을 후에 아름답게 기억하기 위해서는, 첫인상을 가꾸는 것 못지않게 만족스러운 마무리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현대사회의 마케팅과 세일즈의 기본인 ‘3초 법칙’, 생각을 가장 효율적이며 명료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하는 영어식 두괄식 글쓰기, 그리고 취업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한 전략으로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추천하는‘첫인상 좋게 만드는 법’등은 오늘날 초두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와 비슷하게 이화의 학생들이라면 학기 초반, 맨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께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 유리한 시작점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의지가 종강까지 일관되게 이어지지 못했을 경우 초반의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곤 한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듯이, 이번 학기 또한 그렇게 가정해보자. 처음에 무리한 에너지를 쏟는 경우 결승선에 도착하기도 전에 힘을 모두 소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용두사미(龍頭蛇尾)를 경계하자는 말이다. 중간에 멈춰서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불필요한 과열은 내려놓고 긴 레이스를 위해 운동화 끈을 좀 더 조심히 매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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