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낚싯대가 아니라 검정 낚싯대를 선택하면 이 우주가 운행을 멈추기라도 한단 말인가요?

‘동화 밖으로 나온 공주’의 주인공인 빅토리아 공주가, 남의 조언을 받느라 혼란스러워하며 결국은 고기를 낚지 못하고 살아가는 낚시꾼을 보고 한 말이다. 낚시꾼은 어떤 미끼가, 어떤 바늘이, 어떤 색의 낚싯대가 좋을지 고민하는 것으로 시간을 전부 보낸다. 이 상황은 그 자체로 보기에는 우습고 낯설지만, 그 비유를 받아들이면-오늘날 대학생들의 많은 문제는 이와 같은 근원에서 나오는 것 같다. 바로‘실패하기 두렵다’는 문장에서.

우리 중 몇 명은, 무엇을 공부해 무엇이 되고 싶다는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학교에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로, 이화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학생 대부분은 그저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므로 대학에 왔다. 그러나 대학에 오면 뭔가 내면이 변할 거라던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에 사람들에게 있어 변화한 것은 겉모습뿐이다. 길어진 머리칼, 교복이 아닌 옷차림, 직접 정하는 시간표-그러나 우리에겐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지 않았던가? 이 시간이 지나기 전에 결정하고, 경험하고, 보고 들어야 할 것이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 ‘꿈’의 이야기이다. 슬프게도 대학생들은, 특히 일류대의 학생들은 3~4학년 때 공무원 시험이나 대기업의 인턴십에 기계적으로 지원하는 비율이 요즈음 너무나 높다. 그뿐 아니라 취업을 하기 위해 고민하는 학생들도 결국 물어보는 질문은 비슷하다. 뭘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을까? 뭘 하면 멋질까? 그 중에 ‘나는 뭘 하고 싶을까?’는 없다. 이러한 사회 현상의 이유는 물론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이지만, 한 꺼풀 벗겨 보면 다른 말로는 ‘실패하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무엇이 실패인가. 시간을 낭비하다가 취업이 되지 않는 것이 실패이겠다. 보낸 이력서가 스무 통씩 감감무소식인 것이 실패이겠다. 연봉이 낮은 것이 실패이겠다. -대학생들이 두려워하며 피하려 애쓰는 실패가 이다지도 많다. 하지만 가장 큰 실패는, 바로 ‘인생을 불만족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던가? 먹고 사는 데에 꼭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는 궁극적 목적은, 바로 그 돈을 써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만족스러운 삶이 무엇인지 우리가 아직 알 도리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패배주의적으로 안정만을 노리는 삶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이 패배주의적이냐 하면, 자기가 원하는 일이 있는지-원하는 일을 하고 살아갈 방법은 정말로 없는 것인지 알아보고 노력하기 전에 미리 겁먹고 ‘원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는 거니까’에 더 익숙해지는 것이 패배주의적이다. 바람직한 것은커녕 영리한 일일 리도 없는 데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처음 찾는 것보다도 저 말에 먼저 익숙해지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에 나가 더는 봐주는 일이 없는 사회인이 되기 전에, 꿈을 찾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 혹여나 남들이 나를 실패자로 볼까 두려워서, 해고당하거나 회사가 망하면 낙오자가 될까 두려워서, 본질을 무시하고 미리부터 남의 조언만 듣고 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실패가 두려워 확실해 보이는 것만 하려고, 틀림없이 꿈을 찾기 위해 주어진 지금 이 시간의 다양한 기회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을 써볼 수도 있고,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고, 말을 타볼 수도 음악을 연주해볼 수도 연극을 해볼 수도 옷을 만들어볼 수도 있는 지금의 기회를?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게 물어보자. 낚시꾼의 목적은 고기를 낚는 것이고 사람의 1차적인 목표는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잘못된 낚싯대나 미끼를 던지는 일도 물론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걸 두려워한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실패를 하더라도, 혹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는 것 같아도 그것은 자기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이다. 내가 원하는 고기는 무엇인가? -낚아 보기 전에 알 수 있나? 이대로 있다가는 아무런 고기도 낚지 못하는 낚시꾼처럼 불만족스러운 사람들 중 하나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낚싯대를 던지자. 무엇이 걸리든, 꼭 자신에게 완벽하게 맞는 기업이나 직업이 처음에 낚이지 않더라도 무언가 알 수 있게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므로. 적어도 어느 미끼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고기만을 낚을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가장 맞는 고기를 갖게 되리라.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