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2010년 달력의 마지막 장만 남았다. 이맘때만 되면 어떤 기억이 어김없이 필자의 머릿속을 파고든다.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잠 못 이루던 밤들이 있었다. 곧 입학하게 될 후배들도 필자처럼 가슴 설렐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 한 구석이 애틋하면서도 걱정이 앞선다.

필자의 지인 ㄱ씨는 작년 필자와 함께 본교에 입학했다. 우리는 입학식 전날 본교를 방문해 학교 건물 이름을 외워보기도 했다. 그러나 입학 후 ㄱ씨는‘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학부 단위로 입학한 ㄱ씨는 정해진 학과도 없던 터라 주위 학생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적다고 했다. ㄱ씨는 “한 학기동안 아무런 곳에 속하지 못하면서 소위 ‘이방인’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결국 ㄱ씨는 자신감을 상실하고 우울증까지 걸려 본교를 자퇴하고 타 학교로 옮겨 갔다.

ㄱ씨가 유달리 소심한 성격일까. 다음 사례를 살펴보자.

ㄴ(인문·10)씨는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늘 모든 것을 혼자 하고 있다. ㄴ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입학 전 새터(새내기 배움터의 줄임말)에 참여하지 못했다. 학교생활을 함께 할 친구를 사귈 수 없었고, 친구가 없으니 자신의 전공 결정과 미래에 대해 고민을 나눌 사람도 없었다. ㄴ씨는 도서관, 식당, 강의실 등에서 늘 혼자였다. ㄴ씨는 “처음에는 외로움을 느꼈지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 이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반면 현재 타 학교로 옮긴 ㄱ씨는 대학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있다. 다시 입학한 해당 학교도 학부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반제(주로 학부제인 대학의 비공식적 ‘반’ 체제. 멘토링제보다 넓은 범위의 강제성 적용)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ㄱ씨는 “친구와 선배도 쉽게 사귈 수 있어 학교에 적응을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성균관대·고려대·서울대·서강대 등 일부 대학의 몇몇 단과대에서는 반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성균관대 학부대학 행정실 황용근 직원은 신입생들이 학교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잘 적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직원은 “학부로 들어온 학생들이 입학 초기에 얼마나 당황스럽고 외롭겠느냐”며 “반제는 학생들에게 기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학교 적응을 도와주기 때문에 적극 운영 중”이라고 말했다. 

본교도 일부 학부에서 반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 운영 정도가 타대만큼 활발하지 않다. 물론 본교도 학생들의 학교 적응을 돕고자 1학년 세미나 과목을 필수 이수 학점으로 두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정작 세미나를 듣는 일부 신입생들은 “세미나가 수강과목으로 정해져 있다 보니, 강제성에 의해 교수님과 친구들 사이에 친밀감이 생기지 못 한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신입생들이 ‘외로움’을 견디고 ‘자립심’을 얻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립심은 로빈슨크루소처럼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다고 해서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과의 연대 속에서 키워지는 것이 자립심이다.

제일모직 황진선 상무는『나는 프로페셔널이다』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매우 자립심 강한 여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요아힘 바우어는『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에서 “외로움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 수치를 높이는 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 젊은 사람들에게도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외로움은 신입생들의 단순한 투정에 불과할까. 신입생들에게 초·중·고등학교처럼 강제적인 반제를 적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신입생들이 학교에 보다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적당한 풀(Pool)을 만들어주자는 것이다. 학우와 긴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할 때, 학교생활은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수없이 부유하는, 그래서 더욱 분명한 ㄱ씨, ㄴ씨, ㄷ씨(…)들은 오늘도 쓸쓸히 정문을 나선다. 이들이 외로울 때 우리는 무엇을 했나. 우리는 왜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잠 못 이루는 신입생들이 있다. 내년 3월 본교에 발을 내딛을 그들을 먼저 이끌어주자. ‘반제’의 시행은 그들을 이방인이 아닌 진정한 이화인으로 단단히 묶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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