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제1종합민원실에서 시민 업무 도와

1일(수) 정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 제1종합민원실에 마련된 시민자원봉사 구역에 한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제가 예전에 보증을 섰는데 집으로 이런 우체물이 왔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책상에 앉아있던 강선희(법학·61년졸)씨가 환한 미소로 그를 맞았다.

“지급명령이네요. 이의신청을 해야 합니다. 우선 이 서류의 피고란에 선생님 이름을 쓰시고…….”

돋보기를 쓴 강씨는 몇 장의 서류를 능숙한 솜씨로 작성해 나갔다. 강씨의 친절한 설명과 빠른 일처리에 얼어있던 중년 남자의 표정은 어느새 편안해졌다.

서울중앙지법 제1종합민원실의 터줏대감으로 일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11월 26일 2010년 ‘아름다운 이화인’에 선정된 강선희씨를 1일(수) 서울중앙지법에서 만났다.

강선희씨는 시민들이 민·형사, 각종 민원 신청 등 법률에 관한 업무를 처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오전 10시~오후 4시 책상에 앉아 하루 수십 장의 서류를 작성하는 강씨는 법원을 처음 방문한 사람에게 안내를 하기도 하고, 억울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기도 한다. 기자가 법원을 찾은 1일(수)도 정오~오후 12시 30분 30분간 약 15명의 시민이 그를 찾았다.

강씨는 종합민원실의 경력 11년차 무료법률도우미로, ‘법원 할머니’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작년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주최하는 인권봉사상을 수상했으며 ‘제1호 명예변호사’로도 위촉됐다.

“난 ‘법원 할머니’라는 별명이 마음에 쏙 들어요. 사람들은 내가 할머니라 좋대요. 할머니 앞에선 누구나 허물없이 속내를 털어 놓고 인생 상담을 받을 수 있잖아요.”

2000년 3월, 평범한 전업주부로 손자·손녀를 키우며 살고 있던 강선희씨는 62세의 나이로 법률도우미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은 본교·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6개 대학 법학대학(법대) 동문들을 대상으로 민원업무를 도와줄 도우미를 모집했다. 그는 선발된 53명 중 최고령자였다. 초기 멤버 중 지금까지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강씨는 법률 도우미 활동을 하며 늦깎이 학생이 됐다. 각종 법률 서류 작성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다양한 사연을 가진 민원인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서류를 작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60이 넘은 나이에 매일 새벽 1시까지 공부를 했죠. 젊었던 시절에 비해 기억력도 떨어지고, 돋보기 없인 책을 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법은 자꾸 바뀌고, 내가 모르면 다른 사람을 잘 도울 수 없으니 계속 공부를 해야 했죠.”

강씨의 도움을 거쳐간 수만 명의 사람들 중 일부는 그에게 직접 찾아와 인사를 건네거나 편지를 보내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들의 편지 속에서 강씨는 ‘법원 자원봉사계의 젊은 언니’이고 ‘대법원장님보다 더 존경스러운’ 사람이며 ‘망망대해 속의 반가운 등대’였다.

“이런 마음의 선물이 저를 더 행복하게 해요. 법원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이웃으로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데 오히려 감사하죠.”

강씨의 희망은 할 수 있는 한 계속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다. 로스쿨을 졸업해 정식 변호사로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은 꿈도 있다.

“법대 재학 시절에는 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뒤늦게 시작한 봉사활동이 그동안 잊었던 제 꿈을 되찾아주는 계기가 됐죠. 도움을 받고 기뻐하는 사람들을 볼 때 느끼는 보람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도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봉사하고 싶습니다.”              

글·사진: 한보민 기자 star_yuka@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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