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태권도 선수 양수쥔(楊淑君)이 17일(수) 광저우아시안게임 여자 태권도 -49㎏급 1회전에서 9대 0으로 앞서다 종료 12초 전 금지된 발뒤꿈치 센서 착용으로 베트남 선수 부티하우에게 실격패를 당했다.

22일(월) 일간스포츠에 따르면 대만의 일부 누리꾼들은 그 경기의 주심이 한국계 필리핀인이라는 것을 이유로 청와대 페이스북에 욕설을 남기고 청와대 홈페이지를 장시간 다운시켰다. 20일 (토) 스포츠조선은 대만 누리꾼들이 아시아태권도연맹 공식 홈페이지도 해킹했다고 보도했다. 19일(금) 세계일보에 따르면 일부 대만인들은 한국 라면과 김치를 던지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했고 태극기를 찢고 태우기도 했다.

아시안게임의 정신은 올림픽 정신과 맞닿아 있다. 1948년 8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14회 하계 올림픽 경기 중 인도의 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인 두트 손디가 아시아의 스포츠 선구자들에게 아시안 게임에 관한 논의를 하자고 제안한 것이 아시안게임의 시작이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은 올림픽이라는 스포츠 제전을 통해 세계평화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그 후 1894년 6월16∼23일까지 열린 국제스포츠회의에서 쿠베르탱의 올림픽 제의는 유럽 각국 대표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찬성을 얻었고, IOC가 조직됐다. 올림픽 정신은 인류의 화합을 상징한다.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올림픽의 전신인 올림피아제를 통해서 육체와 정신의 단련은 물론, 온 국민의 단합과 통일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 고대에는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에 선수와 참관인의 왕래를 돕기 위해 전쟁행위를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현대의 올림픽은 국가 간의 국력과시의 표상이 되었다. 올림픽 유치는 곧 세계 속의 자국의 높은 위상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올림픽을 유치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로 인해 국가 간 감정이 상하는 일도 발생한다. 화합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나라들이 화합의 수단인 스포츠로 도리어 싸우는 것이다. 2002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경기에서 미국인 안톤 오노의 금메달 판정 시비는 한국 내 반미 감정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 논란의 원인은 선수들 간의 개인적 자존심 문제라기보다는 각국을 대표하는‘국가대표’경기라는 데서 찾아 볼 수 있다.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는 국가와 국가가 대결하는 구도로 이뤄져 있다. 국가 간의 대결은 곧 순위로 이어진다. 여기에서는 개인의 순위뿐만 아니라 국가의 순위까지 매겨지기 때문에 사람들은‘관중’이 아닌‘국민’으로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에 주목하게 된다.

메이저리거 야구선수 추신수는 이번 아시안게임에 앞서 “국가를 대표한다는 건 어떤 가치보다 위에 있다”며 “나라가 불러주면 언제라도 다시 대표팀에 오겠다”고 말한 바 있다. 국가 간 벌어지는 스포츠 경기는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서 나아가서는 국가와 국가와의 경쟁과 대결을 상징한다. 경기장에 선 각국 국가대표 선수들은 스포츠 선수의 의미를 뛰어넘어 국가의 자존심까지도 대표하는 사명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선수의 몸은 곧 국가의 몸이 된다.

영국 문화이론가 패디 화넬(Paddy Whannel)에 의하면, 스포츠는 세상을 보는 방식을 제공한다. 스포츠는 자본주의를 지지하고,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이념 체계의 일부분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 조직의 특정 형태를 자연스럽고, 옳고, 불가피한 것으로 믿게 한다.

지난 2002년 6월 한국은 월드컵의 열기로 가득 찼다. 온 국민 모두가 다함께‘대한민국’을 외치며 대한민국의 우수함과 자부심을 말했다. 당시의 스포츠 민족주의는 국가(國歌), 국기(國旗)등의 국가적 상징물을 통해 국가 구성원들이 단 하나의 국가 공동체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27일(토) 광저우아시안게임이 폐막했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종합 2위의 성과를 거두며 대회를 마쳤다. 스포츠는 대학생은 물론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오락거리다. 하지만 스포츠를 즐기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동안에 자칫 이런 문화적·사회적 함의를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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