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7월 초순의 일이었다. 무더위에 스트레스를 받은 필자는 친구 한 명과 함께 고속터미널 쇼핑에 나섰다. 한참을 걷던 우리는 아주 마음에 드는 옷들을 발견했다. 그 옷들이 있었던 가게는 이대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옷걸이에 비슷한 옷을 빽빽하게 걸어 놓고 파는 곳이었다.

가격은 있었지만 우리는 그 옷들이 각각 무척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몸에 맞기만 하다면 살 생각이었다. 필자는 옷가게 주인에게 볼레로와 원피스의 가격과 크기를 물어봤고, 돌아온 대답은 각자의 가격과- ‘프리 사이즈예요’였다.

프리free 사이즈. 몸 크기와 상관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뜻이다. 물론 끈으로 조정하는 옷이거나 원래 헐렁하고 늘어나는 소재로 된 옷은 프리 사이즈가 있을 수 있다. 한 크기만 나와도 날씬한 사람이나 뚱뚱한 사람이나 조정해서 입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펠트’원피스와 ‘트위드’볼레로가 대체 어떻게, 무슨 수로 몸 크기와 상관없이 맞을 수 있단 말인가. 프리 사이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많은 가게가 그렇듯 그곳도 시착을 허용하지는 않았는데, 무조건 사고 보자고 하기에는 가격이 그리 낮지 않았다. 결국 필자와 친구는 그 가게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시사점이 많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를 차치하고, 여기에서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프리 사이즈’라는 단어의 자기중심적인 부분이다.

언급했듯이 위의 옷들은 도저히 프리하게 누구에게나 맞을 수 없음에도 그러한 이름을 달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문제가 생긴다. 프리 사이즈라는 단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지만 많은 수의 여성들은 자신의 몸이 그 옷에 맞지 않으면 자신이 뚱뚱한 것이라고 믿으며 몸을 옷에 맞추려고 든다. 그렇다는 것은 명실공히 프리 사이즈인 해당 의류에 들어가지 않는 몸을 가진 여성들은, 전부는 아니라도 적어도 그 중 상당수는,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 여성들 중에는 ‘프리 사이즈’가 맞는 몸을 가진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프리 사이즈라는 단어 자체에 문제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단순한 55 사이즈의 옷을 프리 사이즈라고 부르는 것은, 다시 말해 적어도 거의 모든 사람의 몸은 55인 것이 ‘당연’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옷에 대다수 여성의 몸이 맞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그 옷에 맞을 정도의 몸집을 가지는 것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정상적인 일이라는 담론을 형성한다. 논리적이지 않은 일이지만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이 조금만 발전하면 곧바로 ‘날씬하지 않은 것은 이유 막론하고 죄악’이라는 사회 분위기가 되는데, 이것이 과연 문제의식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도 되는 일인가.

프리 사이즈라는 단어 하나에서 너무 많은 것을 유추한다고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상과 담론의 껍데기를 조금만 벗겨 봐도 나온다.

-정리하자면, ‘프리 사이즈’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와 달리 문제는 ‘저쪽’에 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요즈음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 옷가게나 브랜드에서는 다양한 사이즈의 옷을 만들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에 점점 더 특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그냥 비슷하게 작은 옷을 잔뜩 만들어 놓고 손님에게는 맞지 않는다면 당신의 몸 크기가 주류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는 앞뒤가 어긋난 주장을 해 버리는 식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옷가게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자기 가게의 옷이 손님에게 맞지 않았을 때, ‘프리 사이즈인데’라는 문구 하에 손님에게 은근슬쩍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면 여기에서 옳은 것은 무엇인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기업의 첫째 우선순위이므로, 이익을 덜 보아 가면서 다양한 크기의 옷을 만들라는 이상적인 말은 아니다. 비용과 이익을 따져 보았을 때에 다양한 옷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이득이 된다면 그것은 시장 법칙 하에서 기업들이 자유로이 결정할 몫이다. 특히 박리다매의 철학을 가진 가게에서 작고 똑같은 옷만 찍어내는 것은 필요하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불만을 고객에게 떠넘기는 ‘프리 사이즈’라는 용어를 좀 더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로 고치자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용어는 그렇다면 무엇이 될까.

여성들에게 잘못된 신체 이미지를 심어 주는 용어인 ‘프리 사이즈’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그 대신, 사이즈 표기의 원래 목적을 살려 44나 55사이즈라고 표기하거나 내지는 가슴둘레와 허리둘레를 구체적으로 표기하는 것이 상호간에 합리적인 대안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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