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여성공동체가 거주 공간을 공유하는 생활 공동체에서 취미, 여가생활 및 관심사를 공유하는 놀이 공동체로 확대되고 있다.

비혼(非婚)이란 ‘혼인 상태가 아님’이라는 의미로 주로 여성학계에서 사용하고 있는 어휘다. 1998년 서울 여성의전화 싱글여성모임에서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처음 쓰였다. ‘미혼’이라는 어휘가 ‘혼인은 원래 해야 하는 것이나 아직 하지 않은 것’이라는 의미라면 ‘비혼’은 보다 주체적인 상태를 뜻한다.

일부 비혼 여성들은 생활공동체 ‘비비(비혼들의 비행)’, 스윙 댄스 동호회 ‘스윙 시스터즈’에서 의미 있는 인연을 7~8년째 이어가고 있다. 2012년에는 여성주의 의료제도와 낮은 의료비를 실현시키기 위한 조합 ‘여성주의 의료생협’또한 출범할 전망이다.

 

△1인가족 네트워크 지향하는 생활공동체 전주 ‘비비’

‘비비’는 비혼 여성들의 세미나 소모임으로 출발한 비혼여성공동체다. ‘비비’의 시작은 2003년 여성 단체 활동가·공무원·영어강사 등 7명의 비혼 여성들이 모여 만든 세미나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비’결성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당시 전주 ‘여성의 전화’에서 일하던 김란이(전주시 완산구·40)씨다. 김씨는 30대 또래 동료와 지인들을 모아 모임을 결성했다.

김씨는 “30대를 넘기고 나니 언제 결혼할거냐고 묻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져 부담스러웠다”며 “결혼을 안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재밌게 잘 놀고,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비혼자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여성학 관련 책을 읽고 공동체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비비’는 이윽고 스스로를 공동체로 부르기 시작하며 서로를 지지해주는 새로운 가족으로 탄생했다.

7명은 2005년부터 하나 둘 같은 아파트 단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간과 관계없이 집을 오가며 가족처럼 지낸 지 5년이다. 이런 구조를 이들은 ‘1인 가족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김씨는 “꼭 한 공간에 같이 거주해야만 공동체라고 부르는 것은 선입견”이라며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생활의 일부를 함께 나누며 생활하는 것 역시 공동체”라고 말했다.

6월에는 비혼·기혼에 관계없이 이용 가능한 여성생활문화공간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요가 강습, 소설 읽기 등이 진행된다. 10월31일에는 시 읽기 행사 ‘시시(詩示)로-시로 마음을 보여주다’를 열어 촛불 아래서 좋아하는 시를 나눠 읽으며 10월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김씨는 “삶의 재미와 의미는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비혼 여성을 위한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리드하는 스윙 댄스의 매력…놀이 공동체 ‘스윙 시스터즈’

마포구 서교동의 지하 연습실에서는 14일(일) 오후6시 ‘남녀커플’이 아닌 ‘여여커플’의 스윙 댄스가 펼쳐졌다. 비혼여성들이 다수 활동하고 있는 ‘스윙 시스터즈’는 지터벅, 린디합 등 스윙 댄스의 기본 스텝을 위주로 강습하는 놀이 공동체다. 10~60대 여성 약570명 이상이 이곳을 거쳐갔다. 지터벅 강습은 20기까지 진행됐다.

동호회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민문경(서울시 마포구·27)씨는 “스윙 시스터즈를 통해 스윙 댄스를 여성들의 놀이 문화로 정착시키겠다”고 말했다.

남성이 리딩(leading·춤을 출 때 동작을 이끌어가는 것)하고 여성이 팔로잉(following·신호에 따라 춤을 추는 것)하는 정형적인 구도를 갖는 대부분의 커플댄스 동호회와 달리 스윙 시스터즈는 자신이 원하는 포지션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

이 공간은 단순히 춤을 배우는 곳이 아닌 여성들의 커뮤니티 공간이다. 민씨는 “몸에 대한 스스로의 검열 없이 내 몸을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게 됐다”며 “여성들이 스윙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타인과 교류하는 기회를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혼 여성의 사회적 안전망 위해 여성주의 의료생협 준비 중

비혼 인구에 대한 제도적 보완 부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 지는 오래다. 여성운동 단체 ‘언니네트워크’는 ‘2007년 바뀌어야 할 열 가지 비혼 차별적 제도’를 선정했다. 여기에는 가족만 해당되는 세금 혜택, 소득 공제 및 비혼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전세금 대출 및 주택 청약 등이 속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혜영 가족정책센터장도 2006년「1인 가구의 비혼 사유와 가족의식」을 통해 1인 가족의 증가와 가족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책대안의 필요성을 밝힌 바 있다.

전국 대학의 의사 및 의대생들은 비혼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해 ‘여성주의 의료생협’건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여성주의 의료생협’이란 여성주의 의료제도와 낮은 의료비를 실현시켜 비혼 여성들의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조합이다. 현재 300명의 조합원과 3천만원의 출자금을 모은 후 2012년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여성주의 의료생협’의 운영위원 김연경(서울시 마포구·30)씨는 “비혼 여성들이 노후까지 건강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의료생협을 만들 계획”이라며 “올해는 여성 공동체에 대한 공부도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표정의 기자 pyo-justice@

사진제공: 스윙 시스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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