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 휴게실 개조해 현대적으로 꾸민‘실버 카페테리아’… 67세 감독이 영화 해설하는‘청춘극장’

 

1964년부터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국내 유일 단관 극장 '청춘극장'

재취업을 통해 두 번째 인생을 사는 노인들이 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서대문구는 최근 6년간 서울시와 ‘노인 일자리’사업을 벌여왔다. 2008년 4월 개점한 ‘실버 카페테리아’에서는 65세 이상 노인 7명이 일하고 있으며, 10월 화양극장을 리모델링해 개관한‘청춘극장’에서는 16명의 노인이 일하고 있다. 9일(화)~12일(금) 서대문구 노인들의 재취업 현장을 찾아 일하는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메리카노’부터‘카푸치노’까지…노인 바리스타들이 실력 발휘하는‘실버 카페테리아’

약5대 1의 경쟁률로 뽑힌 실버 카페테리아
바리스타 이매자(서대문구·68)씨

10일(수) 서대문구 남가좌동 서대문종합복지관 1층에서는 고소한‘고구마라떼’향이 퍼져 나왔다. 바로 노인 7명이 운영하는‘실버 카페테리아’였다. 복지관 휴게실을 개조해 벽지를 새로 바르고 샹들리에와 현대적 디자인의 테이블로 꾸민 실버 카페테리아에는 바이올린 협주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노인들이 운영하는 카페테리아지만 메뉴 구성은 다양했다. 커피 8종, 차 9종에 각종 스무디, 에이드, 생과일 음료부터 베이글, 샌드위치까지 메뉴는 여느 커피전문점 못지 않았다. 약5대 1의 경쟁률을 거쳐 노인 바리스타가 된 이매자(서울시 서대문구·68)씨는“다른 커피 음료도 인기가 많지만 추천 메뉴는 고구마라떼”라며“집에서 손자, 손녀들도 고구마라떼를 만들어달라고 조를 정도로 맛있다”고 말했다.

이 곳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들은 혹독한 교육과정을 거쳤다. 2년째 카페테리아를 운영해오고 있는 7인은 개점 전 3개월에 걸쳐 전문 바리스타에게 메뉴 교육과 매너 교육을 받았다. 이론 시험과 실습 시험으로 이뤄진 5번의 시험도 거쳤다. 이 씨는“교육을 받는 것은 즐거웠지만 시험 때마다 매번 떨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특히 카페모카를 만드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초코분말과 커피, 우유, 생크림을 넣고 만들어야 하는 카페모카에 깜박하고 커피를 넣지 않는 실수를 자주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손님들을 대하며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사람들 모두에게 친절하게 변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노인 상담 심리 치료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덧붙였다.

△노인들이 선사하는 특별한 추억‘청춘극장’
1964년 작‘석양의 무법자’, 1962년 작‘폭군 연산’등 추억의 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이 있다. 서대문구 미근동의‘청춘극장’이다. 10월2일 개관한 이곳에는 18명의 노인들이 도우미, 스낵 코너 운영자, 상영작 해설자로 근무하고 있다.

청춘카페 근무자 안난준(서대문구·77)씨

청춘극장 중앙에 자리 잡은 스낵 코너‘청춘 카페’에서는 2명의 노인이 오후1시30분을 기준으로 교대근무를하고 있다. 오후1시와 3시에 상영되는 영화가 끝날 때 가장 붐빈다는 스낵 코너에서는 팝콘과 음료를 제공하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 10년간 무료 급식 봉사를 해온 안난준(서울시 서대문구·77)씨는‘서울형 노인 일자리사업’을 통해 이곳에 취업하게 됐다. 안씨는 오전시간 스낵코너에서 팝콘을 튀기고 녹차, 커피를 끓이는 일을 한다. 안씨는“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곳이 있다는 점에 감사하다”며“일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옛 60년대 화양극장 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은 이곳에서 스낵코너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맡고 있다. 영화를 보러온 노인들은 스낵코너에 들려 근무자들과 영화에 대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주변 지리나 지역 맛집에 대해 묻기도 했다. 안씨는“스낵코너에서 노인들이 궁금해 할만한 점이나 불편 사항은 없는지 늘 살핀다”고 말했다. 

몸이 불편한 관객을 도우며 극장 관리에 힘쓰는 청춘극장 도우미 정봉환(서대문구·75)씨

정봉환(서울시 서대문구·75)씨는 청춘극장의 도우미다. 청춘극장처럼 좌석에 번호 표시등이 없는 옛 형식의 극장에는 정씨 같은 상영관 내 도우미가 필요하다. 정씨는 관객들이 어두운 상영관 내에서 좌석을 잘 찾을 수 있도록 손전등을 비춰 안내해주고 몸이 불편한 관객들이 극장을 찾았을 때는 안전하게 부축하는 일을 맡고 있다. 그는“옛 추억을 회상하러 멀리서 찾아오는 관객들을 반가운 미소로 맞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극장 관리에 발 벗고 나선다. 어느 날 출근길 그는 버스 손잡이 부분에 손때가 묻어 미끈거리는 것을 발견하고 그 길로 노인 근무자들에게 극장 내 손잡이 대청소를 제안했다. 그는“버스에 묻은 손때를 보고 우리 극장의 손잡이도 손때가 많이 묻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6명의 노인들과 600석을 6구역으로 나눠 좌석 손잡이 하나하나를 깨끗이 닦아냈다. 그는 상영작 선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는“외화보다 국산영화가 좋다는 관객들의 의견을 극장 측에 전달해 프로그램이 국산영화 위주로 구성되도록 했다”고 말했다.

청춘극장에는 타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상영작 해설자’가 있다. 영화배우 유인촌이 출연한 1979년 작‘정조’의 감독 정회철(서울시 은평구·67)씨는 일주일에 3번 청춘극장을 찾는다. 관객들의 깊이 있는 감상을 위해 영화상영 전 해설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그는“극장에서 상영되는 대부분의 영화는 많은 노인 관객이 이미 내용을 알고 있어 영화의 배경이나 의미를 상세히 짚어준다”고 말했다.

 극장의 총괄 관리를 맡고 있는 박연순 사회복지사는“우리 극장의 제1원칙은 바로 친절”이라며“노인 근무자 16명은 모일 때마다 머리를 맞대고 친절하게 관객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어렵게 마련된 일자리인 만큼 노인들은 감사한 마음으로 누구보다 열심”이라며“그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12일(금) 오전10시 청춘극장 스낵코너에서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지역 주민들

 

 

 

 

 

 

 

 

 

 

 

 

 

 

글·사진: 성진희 기자 tongil2580@ewhain.net
사진: 배유수 기자 baeyoosu@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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