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월 6일자『이대학보』에 학부 학생들을 중심 독자로 삼아 “자신을 바로보고 현실에 맞서라”라는 제목의 컬럼을 썼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무덤덤’했으며, 대부분 읽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대학원생들을 핵심 독자로 정했다. 나는 글의 효과가 상당히 묘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학생들은 처지에 따라 매우 다양한 이유로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을 학문에 뜻을 둔 초보 학자로 간주하고, 학부생들도 함께 읽기를 기대하며, 글을 쓴다.

 

대학원생은 껍질 속에 있더라도 안주하지 말고, 탈각과 비상을 위해 부단히 준비해야 한다. 배우는 처지에 있더라도 비굴해서는 안 된다. 가르치는 사람은 단지 먼저 배운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교수-학습 과정이 인간관계로 이루어진다고 학습과 사교를 혼동해서도 안 된다. 대학원 과정은 사교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교수들에게 아부함으로써 그리고 교우들과의 친밀함을 통해서 학업 부담을 줄이려고 애쓰지 마라. 학업은 피하는 방법으로는 그 부담이 절대로 덜어지지 않는다. 학업 부담을 덜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학업을 그만 두는 것이다. 부담이 느껴질수록 제 자리에 있음을 의미한다. 학업에 대한 부담이 없다면, 배움에 의미를 두지 않거나 배울 것이 없는 상태이므로 대학에 머물 이유가 없다. 학교는 지적 탐구에 도움을 주는 기관이며 지식과 기술을 나누어주는 보급소가 아니다.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가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시절과 중첩된다.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면, 노는 것을 포기하고 어려움을 선택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려고 든다면, 자신이 선택하고 체결한 계약을 스스로 위반하는 꼴이다. 그렇지만, 대학원 과정에서도 놀 수 있다. 혼신을 다해 공부한 다음에 고밀도로 놀면, 논 것 같은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놀 수 있을 때 촌음을 아껴 본격적으로 강도 높게 놀아야 한다. 놀지 않고 공부만 하면, 미칠 수도 있다. 불확실한 미래,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학습량, 교수의 변덕 등에 대처하기 위해 긴장을 늦추지 않다보면 미칠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러한 난관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는 처지이니, 미치기 전에 가끔 미친 듯이 놀아야 한다. 세월을 보낸다고 논문이 결실되지 않는다. 논문 작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완제본을 제출할 때까지 중단 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적당히 하다가 그만두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전의 작업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한다. 학위논문으로 학계를 놀라게 하려는 야망을 갖지 마라. 그런 주제가 있다면 지도교수가 먼저 시작했을 것이다. 학위논문은 체계적으로 완성한 습작으로도 충분하다. 야심작은 학위 취득 후에 시도하라. 오히려 학위를 취득한 후 빠른 시일 내에 다음 논문을 출간하는 데 힘쓰라.

학문 행위는 지극히 감성적이다. 책상에 앉게 하고 버티게 하는 에너지는 호기심, 열정, 집념에서뿐만 아니라 오기, 질투 등에서도 나온다. 후배가 학위를 취득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사례들을 목격하면, 책상에 앉아 버티게 되거나 책상을 버리게 된다. 학문의 탐구, 더 구체적으로 논문작성은 도사가 되기 위한 고고한 수련이 아니다. 일자리 시장의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전공을 선택하거나 변경하지 마라. 일자리 상황은 거미줄처럼 출발점과 도착점이 다르다. 대학원에 지망할 때의 밝은 전망이 졸업 때까지 계속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시세에 예민하지 말고 지적 호기심에 충실하라.

지적 단련과정이 엄격한 교수를 피하면서 학자가 되려고 기대하지 마라. 이상적 모형의  학자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찾고 일상적 모형은 관찰이 가능한 가까운 데서 구하라. 교수들의 속성에 따라서 연구, 수업, 품격, 지혜 등을 구분하여 배워라. 여러 가지 유형의 교수들이 있을 뿐,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교수는 없다. 존경을 예의나 에티켓과 혼돈하지 마라. 존경하지 않더라도 예의나 에티켓은 지켜야 한다. 대학사회에서 험담, 모함, 무례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부풀려져 돌아다닌다. 학생임을 직업으로 삼지 마라. 학생증은 면제나 유예의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교·직원증이 아니다. 학위를 제 때에 취득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게으름으로 귀착된다. 그냥 두어도 빠질 머리털을 쥐어뜯는 사태를 맞지 말고 끈기 있게 공부하고 논문을 작성하라. 높이 그리고 훨훨 날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면, 껍질 속에 있더라도 안주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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