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현상모집 소설 부문은 응모작의 편수도 많았을뿐더러 문장력과 구성력, 그리고 상상력의 참신함에서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이 많았다. 심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소설은 쉽고 평이한 문장으로 쓰는 것이라는 원칙을 지키기가 학습 작가들에게는 의외로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작품 들이 묘사의 과잉, 감상의 과잉, 장식적인 문장의 남용으로 모처럼의 훌륭한 성취들을 망쳐놓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심사자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작품은 <퇴직> <보고 싶어요> <뱀파이어 헌터> <우주정거장에 착륙한 사나이> 4편이었다.

여자친구가 말없이 사라진 후 괴팍한 예술가 아버지의 고독을 이해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우주정거장에 착륙한 사나이>는 차분한 사건 전개와 문장력이 돋보였다. 진지한 주제의식이 돋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묘사가 너무 많고 난삽해지면서 화자와 등장인물 모두의 감정에 진정성을 잃어버렸다.
<뱀파이어 헌터>는 무수히 많은 뱀파이어 이야기에서 장르 소설의 컨벤션을 자기식의 독특한 재구성으로 그려낸 환타지소설이었다. 이야기 구사력과 박진감 있는 내면 묘사가 훌륭했지만 행동해야 할 인물에게 쓸데없는 사색을 안겨주는 우를 범했다. 주인공의 내면 풍경이 설득력을 잃으면서 독자가 사건에 몰입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지 못했다.

<보고 싶어요>는 가위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주인공이 가위를 쓰는 애견미용사가 되고 어릴 적 사라진 엄마의 행방을 찾는 이야기였다. 주인공이 가진 트라우마를 전반에 드러내지 않고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에피소드를 통해 자연스레 드러낸 것이 장점이었고 문체도 안정적이었다. 결말의 개연성이 살아날 수 있는 복선이 미약하고 주제의식을 뒷받침할 만한 소설적 이미지가 결여된 점이 아쉬웠다.

<퇴직>은 치매에 걸린 노모를 보살피기 위해 퇴직을 결심하는 가장의 이야기였다. 상대적으로 평범하고 세태소설의 한계에 떨어지기 쉬운 소재였는데 큰 딸의 관찰자 시점으로 가족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냉정하게 그려가면서 풍자와 반전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가장을 일방적으로 심약하다고 비판하는 가족들이 진정 심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임을 그려내는 풍자와 가장의 퇴직이 가족 구성원에서의 퇴직이었음을 보여주는 반전이 모범적인 플롯을 만들어내었다. 주제의식이 세태 비판 이상의 심화를 보여주지 못한 점은 치유하기 어려운 한계였다.

고심 끝에 참신함보다 묘사와 구성의 안정성을 높이 평가하여 <퇴직>을 당선작으로, 인물 형상화의 힘과 기교적인 원숙함을 평가하여 <보고 싶어요>를 가작으로 뽑았다. 다른 응모작과 입상작들의 차이가 극히 미미했음을 밝히면서 응모자 모두의 정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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