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전단지 보고 전화했는데요.

 어눌한 말투였고 횡설수설했다.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알량한 사례금을 건 이후로 부쩍 늘어난 거짓제보였다. 전화를 끊고 돌아서면서 나는 환하게 웃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해요. 급한 전환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손님을 품에 안자 내 가슴 쪽에 맹렬하게 코를 들이댔다. 포스트잇에 써 붙인 예약내역을 눈으로 훑었다. 김미선씨, 11시, 쫑이, 푸들 암컷, 3세, 미용, 테디 베어컷. 클리퍼의 전원을 켜자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날이 돌아간다. 푸들의 귀가 쫑긋 섰다.

  애견 미용은 우선 발끝부터 꼬리를 거쳐 얼굴 순서대로 진행한다. 전체적으로 털을 짧게 클리핑한 후 보브 가위로 마무리하는 순서는 보통 미용실과 다를 게 없다. 위이잉. 힘을 주어 부드럽게 밀자 발등을 덮은 복슬복슬한 털이 투두둑 떨어졌다. 말끔해진 발등을 문질러주자 억지로 발을 뒤로 뺀다. 귀가 뒤로 젖혀진 것은 겁을 먹었다는 뜻이다. 외톨이가 쌓은 두꺼비집을 짓뭉개는 골목대장처럼 웃으며 개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기분 좋지?”

  개는 끙끙 앓으며 사지를 버르적거린다. 나는 입을 길게 벌려 웃었다. 푸들은 특히 작업하기 즐겁다. 털이 풍성해서 어떤 모양으로든 연출할 수 있다. 어릴 적 내가 그렇게 질색을 해도 끝내 양쪽 머리를 쫑쫑 땋아 도넛처럼 만들어주던 그 여자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손바닥 아래 개의 미약한 맥박이 그대로 잡힌다. 불안정하고 가쁜 박동은 따뜻하다. 클리퍼를 들지 않은 다른 한 손으로 분홍빛 속살 위로 돋아난 핏줄을 더듬어 찾는다. 동맥과 경맥. 이 가느다랗게 솟아오른 요철 안으로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사실은 언제나 새삼스럽다.

  개가 낌새를 읽었는지 금방 뻗대면서 주저앉았다.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커다란 눈 안에 비치는 나는 상냥하게 웃고 있지만 네발로 걷는 것들은 이다지도 기민하여 일을 배로 귀찮게 한다. 일으키려고 하자 바짝 힘을 주고 버틴다. 나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어어, 가만 있어! 그러자 저만치서 벽에 붙은 액자를 들여다보던 주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거들었다. 쫑이, 가만 안 있으면 이모한테 혼나요. 다치면 어떡할 거야. 개가 부들거리면서 네발로 버티고 섰다. 겁을 잔뜩 먹은 탓에 흰자위가 드러났다. 나는 요지경을 들여다보듯 그 눈을 바라보다가, 두 손으로 목덜미를 감싼다. 가늘게 잘린 털이 민들레 꽃씨처럼 포르르 피어올랐다.

  얼굴 부분의 클리핑은 특히 조심스럽고 신속하게 진행해야 한다. 머즐을 눌러 입을 꽉 다물게 하고, 나는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느긋하게 털을 깎는다. 일단 머리가 잡히면 무력해진다. 나는 그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눈 주위를 깎을 때 개의 커다란 눈은 부들부들 떨리며 클리퍼를 쫓는다. 얼굴 부분은 클리핑을 할 때나 가위질을 할 때나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애견미용을 하다보면 개나 미용사나 상처를 입는 일이 부지기수지만, 주인들에게는 미용사의 팔에 난 큼직한 이빨자국보다 개의 눈 밑에 난 손톱만한 상처가 더 큰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배와 허리께를 깎을 차례다. 소문처럼 온몸을 감싼 털 뭉치를 깎다보면 뼈를 덮은 아주 얇은 가죽으로 이루어진 개의 피부가 드러난다. 하얀 털과 연분홍빛 속살은 잘 어울린다. 매일 아침 머리를 묶어주던 그 여자도, 촘촘한 가르마 사이로 드러난 하얀 두피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까. 매일 아침 연약한 속살에는 꼬리빗의 뾰족한 끝이 사정없이 내리꽂혔고 나는 울상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푸들의 연분홍빛 속살은 살이 거의 없는 까닭에 문지르면 뼈에서 얇게 밀려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온다. 대부분의 애완견은 풍성한 털 안에 형편없이 마른 몸을 감추고 있다. 작은 쪽이 애완견으로서 사랑스럽겠지만 푸들, 말티즈, 요크셔테리어의 주인이 개의 몸무게에 느끼는 압박은 거의 신경증에 가깝다. 살 찐 푸들은 드물다. 아기돼지 같은 푸들을 데리고 자랑스럽게 털을 깎으러 오는 사람도 없다. 푸들을 키우는 주인들은 우스꽝스럽게 생긴 퍼그나 다리가 짧은 닥스훈트를 보고 때때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푸들을 키우는 사람은 다른 개의 주인보다 공주병일 확률이 높다. 심지어 남자일 지라도 말이다.

  꼬리는 푸들 미용의 하이라이트다. 가위를 섬세하게 움직여 끝을 최대한 둥글게 만들어야 사랑스러운 느낌이 살아난다. 관절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꼬리를 만질 때면 생선뼈를 오독오독 씹는 것 같다. 가끔 가위의 날과 꼬리뼈 중 어느 것이 이길까 궁금해질 때가 있다. 와락 힘을 주면 그대로 으스러질 것이 분명한, 그러나 제 딴에는 있는 힘껏 단단한 개의 조그만 골격. 연약한 것과 단단한 것이 맞붙으면 결과는 뻔했다. 변수는 다만 언제나 망설임이었다. 단단하고 차가운 것은 살아있는 것 특유의 무른 질감 앞에서 맥을 추지 못한다. 유두가 꼿꼿하게 서고 체온이 올라간다. 엄지와 검지와 중지의 힘을 아슬아슬하게 조절하면서 나는 꼬리 부분 손질까지 끝냈다. 

  쫑이 미용 끝났어요, 손님. 일부러 목소리를 한 옥타브 높였다. 어머나, 예뻐라. 곰인형 사이에 섞어놔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한 개를 보고 주인은 거듭 감탄했다. 푸들은 털 손질이 영 까다로워서 큰일이에요, 그래도 은선 씨처럼 실력 있는 미용사 언니 만난 덕에 우리 쫑이는 호강하지. 몇 번을 와도 제 푸들보다 멍청한 것이 분명한 주인은 내 이름을 외우지 못한다. 쫑이를 호강시킨다는 은선은 지금 앞쪽의 가게에서 애견용품을 정리하는 중이다. 잘 가, 다음에 또 와. 눈높이를 맞춰 아직도 공포에 떠는 개에게 인사를 건넨 후에야 주인은 만족했는지 가게를 나선다.

  미용대까지 정리한 후 나는 오래오래 비누로 손을 씻으면서 세면대에 침을 뱉었다. 씨발, 개 냄새. 

 

  점심시간이 되면 근처 식당에서 밥을 시켜먹는다. 처음에는 개 냄새가 밴 가게에서 밥을 먹는 것이 힘들어서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문밖에 서서 먹었다. 이제는 밥을 먹다가 입 안에서 개털이 나와도 놀라지 않는다.

  “이거 쉰 것 같아, 해명 씨.”

  “네? 괜찮은 것 같은데요.”

  은선이 젓가락으로 집었던 감자 샐러드의 냄새를 맡더니 중얼거렸다. 순두부찌개와 뚝배기 불고기의 밑반찬으로 따라 나온 반찬들은 평소와 같았지만 은선은 고개를 저었다. 

  “먹지 마. 쉬었어. 나 이거 귀신이야.”

  방금까지 숟가락으로 감자 샐러드를 푹푹 떠먹었던 나는 무르춤해진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약간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마요네즈가 들어가니까 이 정도는 보통 아닐까. 은선은 감자 샐러드 그릇을 옆으로 밀어놓고 식당에 전화를 걸었다. 가정식 백반을 배달하는 밥집에서 무슨 대단한 서비스 정신을 기대하는지 은선의 통화는 길어진다. 어쨌든 은선은 틀린 적이 없으니 탈이 날 지도 모른다. 입맛이 뚝 떨어져 식어버린 뚝배기 불고기를 뒤적였다. 말하지 않은 나의 생리 주기를 알고 있던 그녀였고 사장이 문턱을 넘는 순간 향수가 바뀌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동물 냄새와 각종 애견용품의 냄새가 어지럽게 섞여있는 곳에서 은선은 유능한 수색견처럼 이질적인 것을 예리하게 골라냈다. 커다란 눈이 찌그러져 어딘가 시츄를 닮은 얼굴 때문에 누구든지 그녀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긴장을 풀었지만, 나는 그 때문에 은선이 불편했다. 후각이 대단히 예민한 여자. 이게 무슨 냄새니. 너 오늘 뒷물했니? 금방이라도 은선이, 엄지와 검지로 코를 잡으며 그렇게 짜증을 낼 것만 같아 입 안이 바짝 말랐다.

  “그나저나 요즘 일이 줄어서 큰일이야.”

  “경기가 안 좋으니까요.”

  “그것도 그렇지만. 예전에는 이것보다 더 붐볐는데.”

  은선은 예전에는, 이라는 말을 하기 좋아했다. 은선은 사장과 함께 일한 지 벌써 십년 째였다. 그때는 옆 가게와 벽을 터서 동물병원과 애견용품샵, 애견미용실을 함께 운영했다고 한다. 은선의 말에 따르면 사장의 전남편은 수의사였고 중성화 수술에서 따라올 자가 없었기 때문에 봄이면 발정 나서 걷지도 못하는 고양이를 안은 주인들이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은선은 애견용품샵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땄고 그쯤부터 사장의 화장이 짙어졌다. 눈두덩에 보라색과 파란색 아이섀도를 덧바르는 일이 늘었고 더 이상 화장으로 멍 자국을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침내 이혼을 했는데, 매달린 쪽은 사장이었다. 내가 왔을 때는 이미 옆 가게는 네일아트샵으로 개조된 후였다. 애견용품을 팔고 미용만 하는 걸로는 아무래도 딸리지, 대체로 한 번 오면 예방접종도 시키고 건강검진도 받고 이런 식이거든. 투덜거리던 은선이 갑자기 말을 딱 끊더니 숟가락으로 남은 밥을 싹싹 긁었다. 어라, 하는데 유리문 너머로 걸어오는 사장이 보였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사장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자기들, 고생이 많아.”

  “어머, 안녕하세요.”

  문을 등지고 앉았던 은선이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돌아보았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은선은 입을 다무는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그녀가 감지한 것은 사장 특유의 하이힐 소리였을까, 아니면 주차장에 들어오는 타이어 미끄러지는 소리였을까. 은선은 후각뿐만 아니라 청각까지 비상한 것이 분명했다. 스무 살부터 개털을 마시면서 일했다는 그녀는 하루하루, 개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교배 예약 날짜가 잡혔어. 이번 주 화요일이야. 빠짐없이 준비해둬.”

  사장은 기분이 좋아보였다. 까탈스러운 주인들의 요구를 맞추느라 지난 몇 일간 정신없이 바빴지만 결국 성사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요즘에는 교배를 시키려는 주인이 거의 없다. 귀찮기도 하고 돈도 많이 들어서 대체로 중성화 수술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발정기가 온 애완견들이 인형이나 주인의 무릎에 올라타는 꼴에 기겁을 하는 주인들은 대개 무척 더러운 것이 묻었다는 투로 개를 데려온다. 무해한 데다 앙증맞기까지 한 그 허리놀림, 일 년에 몇 번 정도로 끝나는 일에 속절없이 당황하는 것이다. 중성화 수술을 병행하던 시절에 비해서 거의 반 토막이 난 수입 때문에 사장은 중개 수수료를 챙기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단골들이 상담을 하러 오면 사장은 참기름을 바른 듯한 화술로 교배를 권하며 주인들을 구워삶았다. 일은 잘 풀리지 않았다. 거의 다 넘어왔나 싶다가도 주인들은 붉게 부어오른 개의 생식기를 보면 창백해졌다. 통통한 엉덩이를 흔들며 분양을 기다리는 강아지를 보면 탄성부터 질러대던 주인들도, 아무래도 안되겠다며 일어나곤 했다.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언제나 부모 쪽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아이의 고집 때문에 개를 키웠다. 아이의 친구이자 보모여야 하는 개의 발정기는 여러 모로 곤란하고 끔찍한 사건일 것이다.

  “슈나우저 두 마리, 맞죠?”

  어쩌다 성사되는 교배의 조건은 언제나 같은 종끼리였다. 정작 데려와서 보면 잡종인 경우가 많았는데도 주인들은 언제나 제 개가 순수혈통임을 강조했다. 은선은 신이 난 것 같았다. 밥을 먹자마자 창고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애견을 마친 개들이 주인을 기다리거나 여행을 간 동안 머무르는 동시에 교배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CCTV도 있었지만 대체로 꺼져 있었다. 유지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CCTV를 점검하는 것이 은선이었다. 교배 예약이 들어오면 은선은 가장 먼저 CCTV의 전원을 확인하고 테이프를 갈아 넣었다. 나는 이제 카드결제기를 다루는 법이나 까다로운 고객을 견디는 요령 등 은선이 가르쳐준 모든 일을 그녀의 도움 없이 할 수 있었지만, 교배만은 예외였다. 은선은 은근하고 집요하게 나를 거절했고 모든 일을 혼자 처리했다. 과민반응이었다. 나는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인간에게도 중성화 수술이 가능했다면 그 여자는 틀림없이 나와 함께 병원 문턱을 넘었을 것이다. 얼룩진 내 속옷을 보고 파랗게 질렸던 바로 그 순간에. 어쩌면 내가 먼저 졸랐을 지도 모른다. 그 무렵 나는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그 여자의 끈질긴 비명에 귀를 막느라 신경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었다. 벽을 넘어오던, 결마다 핏방울이 밴 울음소리. 나는 주인들이 멋대로 간택한 상대와 흘레를 붙는 어떤 개에게서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낡은 스프링 소리와 함께 밤의 공기를 흐트러뜨리며 천천히 찢어지던 그 목소리 때문에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눈을 감으면,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길이 환하게 떠오르곤 했다. 새빨간 변기물을 내릴 때면 그 질기고 기분 나쁜 예감은 질구에서 끈끈하게 늘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은선이 교배 장면이 녹화된 테이프를 집으로 몰래 가져간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아 존나, 지랄하지 마, 새끼야. 중고등학생들이 등굣길에 지껄여대는 욕설이 골목길을 울렸다. 나는 애써 이불 속에 머리를 집어넣었지만 이번에는 자동차 빵빵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월요일 아침은 언제나 혼곤하고 몽롱했다. 애견미용은 주말에 시간을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은선과 나는 월요일에 쉬었다. 무엇 하나 좋을 것 없는 휴일이었다. 눈을 뜨면 세상의 모든 질서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린 채로, 그러나 못 이긴척 숨가쁜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졸졸졸졸. 잘못 도착한 편지처럼 혼자서 정지한 채 이불 위에 놓여있다 보면 덜컥 겁이 났다. 쇼핑을 해볼까 해도 백화점은 휴일이었다. 그 안에서는 모두가 자신이 지불한 만큼 오만해질 수 있었고 내가 그것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살 수 있는 것이 스타킹이나 이월상품으로 나온 티셔츠 정도라고 해도. 

  그리고 또, 월요일이면. 나는 이불 위에 드러누운 채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쉰다. 공립도서관도 쉬고, 덕수궁이나 창경궁마저 쉰다. 어차피 내가 쉬는 날이 월요일이 아니었거나, 월요일이 아닌 날 휴관한다 하더라도 내가 그곳을 드나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월요일 오후가 되면 서울역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그 여자를 찾는 전단지를 돌렸다. 집에서 프린트로 직접 출력한,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글씨가 아주 촌스러운 종이였다. 100장은 언제나 금방 동이 났다. 힘들게 구한 그 여자의 얼굴 사진 위로 발자국이 찍히고 지저분해진 전단지가 부도수표처럼 나뒹굴었다. 사람들이 언제나 북적이고 들어섰다 떠나는 역과 터미널 근처에 앉아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월요일의 일몰은 뜨는 해만큼이나 휘청거렸고 창백했다.   

  지난주에 프린터가 고장 났다. 뽑다만 전단지가 아직 걸린 채였다. 그 여자의 얼굴이 반토막이 난 채 프린트에 끼어 있었다. 오늘은, 전단지를 돌리지 않기로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갔던 것은 아니지만 꽤 오랜만의 휴식이었다. 이불 빨래를 할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밤이면 약해지는 수압을 견디며 꼬박꼬박 샤워를 했지만 매일 아침 이불 밑에는 개털이 수북했다. 이 길고 까만 털은 어제 염색했던 요크셔테리어, 짧은 갈색 털은 미용하는 내내 팔이 빠질 뻔했던 비글, 크림색 긴 털은 포메라이언, 곱슬곱슬하고 가장 긴 털이 내 머리칼이었다. 오랫동안 미용실에 가지 못해 파마가 다 풀린 머리칼이 힘없이 늘어졌다.  

  ―해명 씨, 오늘 쉬는 날이죠? 저녁에 뭐해요?

  핸드폰을 열어보니 문자 메시지가 들어와 있었다. 사장이 소개해준 남자였다. 사장은 중매 서는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개의 교배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오래 일한 은선은 사장이 알고 있는 모든 인맥을 거쳐 간 탓에 덜 시달린다고 했다. 내세울 만한 연애경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사장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올가미처럼 조여들어와 나를 소개팅 자리로 내몰았다. 내 앞에 앉은 남자가 언젠가 은선과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애견미용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거라고 생각하면 불편한 속이 더 메스꺼워졌다. 개를 좋아하시나봐요, 라고 건네는 첫인사도 붕어빵 틀에 찍어낸 것처럼 똑같았다. 애견미용사라는 말은 금방 그들의 인식 범위 내에서 동물을 사랑하고 인내심이 질기며 어느 정도 감각도 있지만 경제적으로 아주 유능하지는 못하고 가방끈이 짧은 여자, 로 변환되어 나를 입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편견이었다. 나는 번번이 나를 지칭하는 말과 나를 이루는 구성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나는 개를 싫어했다. 애견미용학원에 3주쯤 다녔을 때가 되어서야 깨달은 사실이다. 개에 대한 호불호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미처 몰랐을 뿐이다.

  애견미용학원에 등록한 것은 어디까지나 사고였다. 나는 전문대학을 졸업한 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미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밤새 <가위손>을 돌려본 다음날이었다. 센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나였지만 어떻게 보면 필연이었다. 그 여자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가위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처음 내 손에 들어온 은빛 가위의 견고한 감각을 기억한다. 날끼리 차칵, 하고 부딪히는 소리는 투명하고 예리했다. 무엇이든 자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는 무엇도 자르지 못했다. 다정한 손가락질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공기 가운데 푸아, 푸아하는 숨소리만 요란했다. 나는 팔다리를 뻗으며 으아아아 울음을 터뜨렸고 바닥에 가위가 내리꽂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수강비가 가장 저렴한 미용학원을 찾았다. 학원은 5층 건물 꼭대기 층에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 타려는 순간 누군가 버튼을 누르더니 한 무리의 미용학원 수강생들이 우르르 들어섰다. 현란한 머리 모양에 저마다 허리에 두른 가죽벨트에 가위를 조랑조랑 매달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왁자하게 웃던 애들은 어느 순간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엘리베이터 불빛 아래서 나는 십오 년 전의 그날처럼 손을 덜덜 떨다가 3층을 눌렀다. 그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3층은 애견미용학원이었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카드를 긁어 6개월 코스를 등록하는 데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소개팅을 했던 남자의 번호를 삭제했다. 꾸물꾸물한 월요일이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이불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 수런거렸다. 창자가 긁히는 것처럼 배가 고팠지만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몸을 둥글게 말자 두근두근하는 심장박동이 무릎에 닿았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바퀴벌레가 바각바각 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월요일 오후 깨어날 시기를 놓친 번데기처럼 누우면 이제껏 존재하지 않던 소리와 냄새가 밀려들었다. 그것은 나날이 다양하고 섬세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점점, 나도 개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지금 잠이 들면 분명히 가위에 눌린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천천히 잠 속으로 떨어지는 정신을 가눌 길이 없었다.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취직을 한 이후에는 조금 뜸해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꿈을 꾸었다. 그때 다른 학원의 수강료가 더 쌌더라면, 내가 혼자 엘리베이터를 탔더라면, 3층이 당구장이나 PC방이어서 다시 돌아 나올 수 있었더라면, 직원이 내놓은 카탈로그를 펼치는 대신 돌아서서 나왔더라면. 매일매일, 부질없는 가정이 계절을 맞은 꽃처럼 만발했다.

  

  “저, 실례합니다. 여기서 개, 털을 좀 깎을 수 있습니까?”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한 남자가 유리문 사이로 머리만 쑥 내밀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요, 하고 문을 당겨 열자 남자의 품에 안겨 있던 개가 고개를 팔딱 들었다. 잉글리시 코커 스파니엘이다. 한여름에 가을 양복을 입은 남자의 이마에 땀이 번질번질했다.

  “털 정리만 하실 건가요?”

  “예에, 저. 지금 할 수 있습니까?”

  시계를 보니 오후 예약까지 시간이 애매하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미용을 맡기로 했다. 애견 미용에 전혀 문외한으로 보이는 주인은 그저 털을 좀, 깎아주려고, 하는 말만 반복했다. 개의 몰골을 보니 그렇게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았다.

  “개 이름이 뭐죠?”

  개를 안으면서 물으니 주인이 허둥거린다. 나이가 많은 남자 손님은 대개 어린애들을 풍뎅이 떼처럼 몰고 오는데, 이렇게 혼자 오는 경우는 처음이다. 개는 척 봐도 열세 살은 되어 보인다. 남자처럼 늙은 데다 몰골이 초라했다. 브러싱을 하는데 아주 오랫동안 손질하지 않은 털이 뭉텅이로 빠졌다. 가뜩이나 털이 없던 차에 이러다 생닭 같은 꼴이 되겠다싶어 브러싱을 하던 손에서 힘을 뺐다. 개가 꼬리를 다리 사이로 말아넣고 발발 떨었다. 오기 직전에 목욕을 시켰는지 의외로 항문이나 눈밑이 깨끗하다. 몸 여기저기에 흉터가 된 상처들이 많았다. 개를, 학대할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나는 힐끔 주인을 훔쳐보았다. 주인은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쉰이 넘은 남자가 두 다리를 모으고 어깨를 움츠린 채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개를 기다리면서 마치 ‘기다려’를 하고 있는 개처럼 온순하고 우둔한 표정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꾸지람을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손을 무릎 사이에 밀어 넣었다. 그러니까 정말 개인 것처럼. 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털을 마저 깎는데, 개의 사타구니가 불룩하다. 슬쩍 건드리자 펄쩍 뛰었다. 애완견에게 흔히 있는 탈장이 맞다면 서혜부 탈장일 것이다. 이렇게 늙은 개에게 이 정도 탈장이라니. 수술을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남은 시간은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다.

  “미용은 처음인 것 같은데 아이가 아주 의젓하네요.”

  마무리 브러싱을 하면서 말을 붙이자 주인이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그 서슬에 개도 움찔거렸다

  “예에. 이런 호강은 처음일 테니까요.”

  “그래요? 코커 스파니엘은 털 관리가 힘들어서 자주 오는 견종인데.”

  평소 하던 것처럼 말을 받자 주인이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르면서 어쩔 줄을 모른다. 애견 미용이 처음이라면, 털이 풍성하던 시절의 이 개는 꽤나 괴로웠을 것이다. 애견미용을 사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적당한 시기에 털을 다듬어주지 않으면 이런 장모견은 여름에 피부병에 걸리거나 심한 냄새가 난다. 

  “사실, 얼마 전에 길에서 주운 녀석입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던데 무슨 고생을 그리 했는지. 같이 살게 된 기념으로 멀끔하게 새 단장 좀 시켜주려고 큰맘 먹었습니다. 이런 데가 처음이라서 영 쑥스럽네요.”

  말의 끝을 뭉개면서 주인이 희미하게 웃었다. 이렇게 유기견에게 끌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었다. 세상에는 인간이 키우는 개만큼이나 버려진 개가 많았다. 대체로 사고를 당해 몸 어딘가가 망가졌거나 살이 많이 쪘다는 이유였지만 질렸다거나 키울 형편이 안 된다는 핑계가 압도적이었다. 코커 프사니엘은 본래 새를 쫓도록 훈련된 개인지라 산만할 정도로 운동량이 풍부하고 털 관리까지 까다로워, 이 개를 사랑하는 데는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했다. 인형 같은 생김새와 활발한 움직임만 보고 개를 고른 주인들은 얼마 안가 진절머리를 냈다. 아마 이 코커 스파니엘에게 깃든 사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느 관계에서든 상성이 맞지 않는 조합은 양측 모두에게 비극이다. 애완견과 주인의 경우에는, 다른 관계와 달리 주인에게 파격적인 선택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뚝거리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주인들은 외롭다는 이유만으로 개를 고르고 마음 내키는 대로 그 관계를 깨뜨린다. 그들 대부분은 아직 누군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개가 아주 좋아하겠네요.”

  개를 넘겨주며 말하자 이 놈 밥값 아끼려면 담배라도 끊어야 될 것 같다고 말하면서 주인이 희미하게 웃었다. 품안으로 돌아간 개가 머리를 주인의 겨드랑이 사이로 파묻으면서 끄응끄응 소리를 냈다. 인간으로 치면 팔십이 넘은 개답지 않은 어리광이었다. 까만 양복에 하얀 털이 잔뜩 묻어나는 것도 아랑곳 않고 주인이 개를 꽉 끌어안았다. 

  미용비는 이만 오천 원이었다. 남자는 만 원짜리 한 장과 천 원짜리 열네 장, 오백원짜리 동전 한 개와 백 원짜리 동전 다섯 개로 간신히 계산을 마쳤다. 유리문을 벗어나자 남자가 개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개는 오른쪽 앞다리를 절었다. 털을 깎을 때 오른쪽 앞다리를 잡자 이빨을 드러냈다. 떠돌이 시기에 다쳤는지 치료시기를 놓쳐 뒤틀린 발끝이 달달 떨고 있었다. 주인의 하얗게 닳은 구두축과 오른쪽 앞다리가 박자를 맞추어 스텝을 밟듯 나란히 걸었다. 대낮이어서 온통 환했는데 그들이 멀어지고 멀어져 작고 검은 두 개의 점이 되는 광경만이 선명했다. 그대로 세상이 끝난다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속도였다.

  나는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그때 내가 내린 층이 5층이었다면, 오늘 같은 날이 내 인생에 끼어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 내가, 조금만 더. 나쁜 습관은 도무지 고쳐지질 않는다. 괜찮아.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는 가정을 끊고 나는 이를 악 물었다. 괜찮아.

  저 개는 사흘 안에 죽게 될 것이다. 할딱이는 숨과 두려움이 가득한 눈에서 감출 수 없는 죽음의 냄새가 났다. 차갑게 식은 손은 아무리 주물러도 따뜻해지지 않는다.


  가게를 정리하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대충 비누로 손을 씻고, 핸드폰을 최대한 얼굴에서 멀리 떨어뜨려 전화를 받았다. 아무리 조심해도 내 물건에는 언제든 개 냄새가 배고 만다. 송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해명 씨죠? 김형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안산쪽 보호소에서 비슷한 사람이 들어왔다고, 그쪽 사람이 전단지 보고 전화를 해왔어. 지금 메모할 수 있어요?

  안산의 보호소에 전화를 걸어 오늘 확인하러 가겠다고 한 후, 나는 쪽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코트를 챙겨 입었다. 남은 물품을 체크하던 은선이 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찾았대? 아뇨, 비슷한 사람이 있대서 확인하러 가려구요. 어머, 이번에는 꼭 찾았으면 좋겠다. 거의 십 년이네, 알아볼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겠어.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싸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팔뜨기 같은 게, 너나 잘해.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은선에게 술에 취해 그 여자가 집을 나간 날을 털어놓은 것을 후회한다.  

  시외 버스터미널로 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가방 안에 손을 넣어 가위가 든 가죽 케이스를 쓰다듬었다. 처음 애견미용을 시작했을 때부터 쓰던 것인데 처음에는 단단하던 모서리가 어느덧 반들반들해졌다. 핸드폰을 열자 또 은선 씨에게서 문자가 와 있다. 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내가 어떻게 그 여자를 잊을 수 있단 말인가. 빨리 해. 내 손에 가위를 쥐어주고, 아랫도리를 벌거벗은 채 쿨쿨 잠들어 있는 그 남자를 가리키던 그 여자. 그 집요하고도 간절한 눈빛은 화인처럼 내 몸과 기억 속에 새겨져 아무리 밥을 많이 먹고 부쩍부쩍 자라도 지워지지 않았다. 어서 해. 어서. 빨리. 나는 끝내 축 늘어진 그 남자의 아랫도리에 가위를 들이댈 수 없었다. 내가 터뜨린 울음소리에 그 남자가 깨어났고 가위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여자가 머리채를 잡혀 방안으로 끌려들어가면서 악을 질렀다.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야. 어린 나는 바닥에 박힌 가위 앞에서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나는 가죽 케이스를 열고 가위를 꺼낸다. 엄지와 검지에 가위를 걸고 차칵차칵, 소리를 내본다. 날이 늘씬한 가위는 어둑한 택시 안에서도 영롱하게 빛난다. 십 년의 세월이 그 여자의 눈 속에서 섬뜩한 광기와 생에 대한 집착을 쏙 빼어내고 남루함만을 벗은 옷처럼 남겨놓았다 해도, 나는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토록 재촉해도 얼어붙은 채 고개만 붕붕 젓던, 그래서 그 여자를 끝내 구원해주지 못했던 무력한 내가 능수능란하게 가위를 돌리며 등장한다면 그 여자는 아마 이 세상 누구와도 같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것이다.  처음 가위를 잡은 이후로 나는 두 개의 날을 목발 삼아 맹렬하게 과거로부터 달아났다.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차칵차칵, 하는 소리가 셔터 닫히는 소리처럼 울려퍼졌다. 이번에야말로, 그 여자였으면 한다. 혼자서 애견미용에 성공했던 날 나는 그 여자를 찾는 전단지를 만들어 경찰서에 갔다. 개가 미용대에서 뛰어내리고, 요구와 다른 털 모양 때문에 고객들이 내 명치를 떠밀어대던 무렵에는 아직 불안했지만, 이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가위는 날때부터 내 손가락의 일부였던 것처럼 날렵하고 자연스럽게 붙어 있다.

  아침마다 내 머리를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주면서, 쌕쌕 거친 숨을 내쉬던 그 여자. 도망가자고? 그럼 네가 돈 벌래? 질긴 것을 씹어먹듯 하던 목소리가 생생했고 그때마다 뺨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 여자를 다시 만나면,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게 그녀의 어깨에 수건을 둘러주고 오래 전부터 오직 그 순간만을 위해 준비했던 가위로 머리를 잘라주고 싶다. 쪼글쪼글해진 뒷목과 기름기가 다 빠져나간 작은 몸을 보면 개털을 깎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체온이 올라가고 소름이 쫙 돋을 것 같다. 리본 모양으로 모양을 내려고 하면 파랗게 질리겠지. 그 남자가 사고사를 당하자 어쩔 줄 몰라 달아나버린 그 여자에게, 머리 위의 커다란 리본은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정성껏 머리를 다듬어주면, 그 여자가 울먹이는 표정으로 등 뒤의 절대자를 돌아보았으면 좋겠다. 세상 누구보다 아름다웠던 그 여자, 내 온 존재를 바쳐 사랑했고 단 한 번이라도 나를 바라봐주길 바랐지만 끝내 발로 차도차도 따라오는 똥개처럼 아버지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던 여자. 무력한 존재 특유의 안쓰러운 표정을 보면 나 역시 옛날 옛적 그 여자가 그러했던 것처럼 진저리치며 웃을 수 있을까.

  보고 싶다, 그 여자.

  나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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