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문예 소설부문 당선작]퇴 직
[현상문예 소설부문 당선작]퇴 직
  • 굿윙
  • 승인 20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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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나들 다 온대?”

  조심성이라곤 없는 말투였다. 응, 끝나고 식사하기로 했어, 운전석의 부친이 말했다. 조수석을 일 자로 젖히고 누워 전면 유리창에 발을 뻗고 있던 모(母)가 홱 몸을 일으켰다.

  “또 당신이 산다고 했지?”

  백미러에 비친 부친은 눈썹을 있는 힘껏 치켜 올리며 눈만 꿈뻑꿈뻑했다. 시치미를 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게 과장되게 눈 근육을 움직이는 건 부친의 습관이었다. 주로 머쓱할 때였다.

  누나가 살 거야. 상계동 누나? 아니, 면목동 누나. 어이구, 웬일이래, 삼천포서 막내 누나 온다고 사나보지? 얼마나 대단한 걸 사주려고. 그 왜, 앞에 오리고기 집 있잖아. 흥, 오리는 무슨 오리. 기껏해야 백숙이나 사겠지.

  이후(梨后)는 백미러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부친은 다친 자존심 때문에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죄거나, 눈썹을 이마 중앙까지 치켜 올리며 더 빨리 눈을 꿈뻑대거나 할 것이다. 어느 쪽도 딸이 아버지한테서 보고 싶은 표정은 아니다.

  뒷자리는 여자 셋이 서로 팔이 엉키도록 앉았는데도 누구 하나 말없이 조용했다. 이후가 그랬고, 이란과 이령이 그랬다. 본래 새치름한 성격들인데다 자리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구십오 년 형 그랜저의 뒷좌석은 말만한 처녀 셋이 앉기엔 비좁았다. 그러나 침묵으로 푹 가라앉은 분위기는 좌석 말고 다른 탓도 있었다.

  삼 일 전, 부친의 퇴직 소식을 알려 온 건 둘째 이란이었다.

  “너네 들었어? 아빠 퇴직한대.”

  언니인 이후까지 싸잡아 ‘너네’를 하며 이란이 호들갑을 떨었다. 소심해서 작은 일로도 종종 호들갑을 떠는 그라, 이후는 부러 태평한 척 했다.

  “누가 그래?”

  “어제 엄마랑 얘기하는 거 들었어.”

  이란에 따르면 부친은 퇴직을 ‘확실히’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기를 ‘확실히’ 희망하노라고 모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부친의 퇴직 희망 소식이었다. 어차피 오 년 후면 정년퇴직할 거였다. 오 년 있다 하나 오 년 미리 하나 그것은 부친이 결정할 문제였으므로 이후에게는 조금도 충격이 아니었으나 이란은 그렇지 않았나보다.

  “넌 취직했다 이거냐? 난 아직 졸업도 안 했어. 1년이나 남았는데…….”

  자산이랄 것도 없이 집 한 채, 차 두 대가 전부인 집안 재무 사정을 뻔히 아는  이란이 말끝을 흐렸다. 이후는 그나마 집은 자산도 아니고 상환금만 징그럽게 남은 부채라는 걸 알려주려다 말았다. 그것은 동기간의 무책임을 넘어, 잔인하기까지 한 일이었다.         

  제일 겁먹은 건 막내 이령이었다. 이제 고등학생인 이령은 금전적인 문제는 걱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니, 가장의 퇴직이 한 가정에 금전적인 곤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계의 생리를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대신 그는 이제 부친이 실업자가 되는 거냐고, 이제 저는 실업자의 딸이 되는 거냐고 신경질적으로 따져 물었다.

  실업자가 아니라 퇴직자지. 이후는 사실상 그거나 그거나인 말을 점잖게 고쳐주었다. 하지만 부질없이 그런 것은 아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삼십년 간 가족을 위해 일한 부친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부친이 ‘가족을 위해’ 일했다는 것을 이후가 고마워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저, 아마도 하기 싫었을, 적어도 하는 내내 힘들었을 일을 그토록 오래 한 한 인간에 대해 딱한 마음을 의무처럼 가졌을 뿐이다.

  “퇴직만 해봐. 난 아빠 다신 안 볼 거야.” 

  이란은 대놓고 을렀다.

  “그건 아니지. 난 솔직히 아빠 자유라고 봐. 이제까지 힘들게 일 했으면 됐지 퇴직도 맘대로 못 하냐?”

  “그럼 내 등록금은 어떻게 할 건데? 결혼은? 너 결혼할 돈 모아놨어? 내가 알기론 우리 집에 결혼 자금 같은 거 없다던데, 다짜고짜 퇴직부터 하면 어쩌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이란이 그렇게 화내는 건 저 나름의 정당성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부친은 아직 자녀 부양의 의무가 있다는 건데 막내라면 몰라도 스물다섯이나 먹은 지는 저래선 안 된다고, 이후는 생각했다.

  하지만 가관은 역시 모의 푸념이었다. 그런 얘길 듣고도 가만히 있을 모가 아니었는데 과연 그 다음 날, 그러니까 낮에 이란이 공연히 심란을 떤 날 저녁, 모가 설(說)을 풀었다. 부친이 퇴근하기 전, 꼭 누구 보란 듯이 식탁에 앉아 폭폭 한숨을 쉬고 있는 모를 이란이 본 것이다.

  니 아빠가 그렇게에(모는 ‘그렇게’를 힘주어, 한숨 쉬듯 말하는 습관이 있다) 유약하단다 글쎄. 아니 엄마, 갑자기 웬 퇴직이래. 내 말이 그 말이야, 회사 일이 힘들다나 어쩌다나. 얼마 전에 승진도 했잖아? 그러게, 직급이 높아지니까 일이 더 고되다는 거야. 그럼 그 정도도 생각 못 했대? 내 말이 그 말이야, 원 남자가 무슨 야망이 있길 해, 승부욕이 있길 해. 그저 마음만 약해 빠져서, 난 괜히 니 할머니 땜에 그러는 거 아닌가 싶다. 아빠가 아직도 할머니 때문에 그래? 왜 너도 그때 봤지, 할머니 요양원 보낼 때 니 아빠 짐 싸주다 말고 운 거. 나는 그때 잠깐 그러겠지 했지, 니 아빠 맘 여린 건 원래 알았으니까. 근데 그것 때문에 그러는지 어쩌는지, 진짜 일 때문에 그러는지 허구한 날 힘들어 죽겠다고 낑낑대는 걸 어쩌니.

  이후는 아무러면 부친이 무슨 개 마냥 낑낑댔을까 싶어 그쯤에서 방문을 닫아버렸다. 도덕적 결벽증이 있는 이후에게는 정말 참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물론 모녀가 마주보고 앉아 내키는 식구 아무나 흉보는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이후는 거북했고 환멸을 느꼈다. 다른 식구들과 선천적으로 기질이 안 맞는 부분이었다.

  백숙에 코웃음 치던 모가 코를 골았다. 길은 평온했다. 고양시라 했던가, 서로 붙어있다시피 한 ㅂ화장터와 ㄱ외국어고등학교를 지났다. 삶의 의지를 북돋아주어야 할 고등학생들에게 화장터는 너무 잔인했다고 이후는 생각했다. 죽는 것도, 죽어서 홀가분히 한 몸 불 태워 버리는 것도 자연스러운 계(系)의 순환이라는 걸 받아들이기엔 여린 십대에게 화장터라니. 

  이제 막 심은 듯 어린 가로수들이 돋친 길 끝에 차가 멈췄다.

  “다 왔다.”

  부친은 거기서부터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란과 이령은 짜증이 역력한 얼굴로 마지못해 차에서 내렸다. 그나마 요양원 면회이니 망정이지, 그냥 편하게 휴가라도 온 거라면 왜? 얼마나 걸어야 돼? 걷기 싫어, 하고 뻗댔을 것이다.

  모와 부친은 초행이 아니었다. 조모를 요양원에 맡긴 후 서너 번 찾아가선지 익숙하다 못해 노련해 보였는데, 모는 특별히 조심하는 것 없이 입만 다물고 있었고 그것만으로 다섯 식구 걷는 길이 편했다. 모보다는 부친이 걱정이었는데, 행여 침울해지거나 돌연 우는 건 아닌가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친은, 이런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화색이 돌고 있었다.  

  곧 휘파람이라도 불 기색이었다. 무엇이 부친을 미소 짓게 했나. 고향에 계신 부모님 뵈러 가는 것도 아니고 치매 걸려 남의 손에 맡긴 노모를 보러 가는 것 치곤 걸맞잖게 들떠보였다. 더군다나 육 개월 전 노모를 맡기면서는 울지 않았나.

  인간이란 정말 적응하기 나름이군, 하고 속말을 하려다 이후는 그마저도 고쳤다. 부친한테만큼은 이죽대고 싶지 않았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이후는 저 나름의 새 판단을 내렸다. 아마도 그는 세 딸들이 쪼로로 자신의 모친을 보러 온 사실이 뿌듯해서 저럴 것이다. 본래 딸이라면 끔찍이 여기니까.

  산 같지도 마을 같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방치된 농가만 띄엄띄엄 눈에 띄는 고적한 길을 오 분 여 걸으니 한눈에도 요양원 같은 시설이 나왔다. 학교 운동장의 반 만 한 대지에 흰색 건물이 나란히 두 동 있었다. 건물이라기보다는 막 지은 임시 창고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대강 짓기야 했겠냐만 컨테이너 재질의 단층 외벽하며 퍼석한 슬레이트 지붕으로 보건대 미관은 당연히 고려하지 않았고 그저 값싸고 튼튼하게 지었다는 것만 한눈에 보였다. 방치된 농가와는 또 다르게 착 가라앉고 메마른 기운이 풍겨 오로지 쇠진한 노인들을 위한 건물로만 보였다.

  영생촌(치매노인전문요양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후의 시선이 요양원 간판석에 닿았다. 영생이라는 말이 조금도 감격스럽지 않고 실로 공포스러웠다. 여기에 머무르는 이들 중에, 혹은 여기를 찾는 이나 이곳 운영자들 중에 이들의 영생을 바라는 이가 있을까. 영원히 살아서 자식에게는 짐이 되고, 영원히 살아서 운영자들에게는 돈줄이 되고, 영원히 살아서……. 

  “이후야 뭐해, 들어가자.”

  부친이 부르는 소리에 이후는 망념을 푸르르 떨쳤다. 어쩌면 저 혼자만이 그런  불순한 생각을 할는지도 모른다.

  건물은 뜻밖에도 운영자의 생활 공간이기도 했다. 이후네가 들어선 곳은 운영자들이 지내는 거실 겸 응접실이었다. 알고 보니 요양원은 이 대(代)가 그야말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영세하게 운영하는 시설이었다. 초로의 주인 부부가 사업을 시작했고, 그들의 삼십대 아들 부부가 이제는 거의 도맡다 시피 한다고 했다. 거실은 통째로 그 집 식구들이 쓰고 그 외 방 두 개를 각각 노부부와 아들 부부가 하나씩, 나머지 줄줄 딸린 여남은 개의 방은 입주한 노인 두세 명이 각각 공동으로 쓴다고 했다.

  “엄마, 오늘은 손녀들두 왔네.”

  안주인은 조모를 ‘엄마’라고 불렀다. 머리숱이 성성하고 황톳빛 얼굴에 입이 큰 여자였다. 주인 아들 부부의 부축을 받으며 돌쟁이 걸음 배우듯 엉기엉기 걸어 나오던 조모는 이후네를 보는가 싶었지만, 흐리멍덩한 눈은 이미 정기가 없었다.

  “할머니이.”

  맹맹한 콧소리는 막내 이령이었다.

  사실 요양원에 오기 전 조모의 가내 지위는 가히 딱했다. 모는 시어머니를 끔찍해 했는데, 혼자서만 끔찍해 하질 않고 들입다 딸들한테 세뇌시키고 동조를 구하려고 했다. 그 자신 애초에 그럴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어쨌든 결과가 그랬다. 가풍마저 엄모자부(嚴母慈父)가 되어 놔서 이후 자매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모의 푸닥거리를 꼼짝없이 듣고 있어야 했다.

  푸념은 날마다, 대중없이 계속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후가 초등 1학년 때이던가, 거실에서 학교 숙제로 교통 안전 포스터를 그리고 있었는데 부엌에 있던 부친이 돌연 쨍하니 큰 소리로, 당신도 어머니한테 그만 좀 해, 하더니 대문을 쾅 닫고 나가 야밤까지도 들어오지 않은 기억이 있다. 아마도 그때가 모와 조모의 살벌한 대립의 시발이었던 것 같다.               

  모 앞의 딸들이 고양이 앞의 쥐였다면, 모 앞의 조모는 고양이 앞의 생선이었다.  잡아먹으려고 들었다. 조모로서는 기가 막혔을 것이다. 기가 세고 매사에 독불장군인 모는 ‘하나뿐인 아들을 인문대학에나 겨우 보낸’, 혹은 ‘돈을 쓸 줄만 알고 모을 줄은 모르는 천생 가난뱅이 기질’인 조모에게 시도 때도 없이 악다구니를 부렸다. 패악이란 그런 거였다.

  해가 바뀌자 악다구니의 레퍼토리도 바뀌었다. 꼬투리란 잡게 마련이므로, 시비 거리도 끊이지 않았다. 가게에 외상을 지고 물건을 산 것, 이후 자매에게 사탕을  만날 먹여 이를 다 썩게 한 것, 큰돈 들여 보청기를 해주었는데 끼지 않는 것, 명절마다 드리는 용돈을 그대로 손자들에게 헌납하는 것, 아파트 가정부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 하여간 잡히지 않는 꼬투리가 없었다.

  야, 늬 할머니 아무래도 젊었을 적에 식모 아녔나 몰라. 서른 살에 남편 잃고 넷이나 되는 애들 먹여 살리자니 달리 할 게 뭐 얼마나 됐겠냐. 가정부들이랑 유난히 친한 거 보면 암만해도 식모였지 싶어.

  졸지에 이후 자매는 식모였던 조모를 둔 셈이 됐다. 가뜩이나 시댁 식구들을 낮잡지 못해 기를 쓰는 모였다. 그렇게 하면 자기 집안은 저절로 높아 보이는 듯   명확한 착각을 했을 것이다. 달콤했을 것이다. 자식들이야 뜨악해 하든 말든 남편의 핏줄을 깎아 내려 저 혼자만의 달콤함에 빠진 모가 이후 자매 눈에도 어리석어 보였다.

  그런데 어느 무렵부터, 조모의 행동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아마 이후네가 삼십 평 대 집으로 이사를 한 직후였을 것이다. 다들 넓어진 집에 만족했지만 조모만은 아니었다.

  “그까짓 거 청소하는데 심만 더 들지.”

  그 말은 조모가 식모였을 거란 모의 불손한 추측에 힘을 실어주었으나, 모는 더 이상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것 말고도 책잡을 게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꺼리는 조모가 이십 층 새 집에서 성탑의 늙은 라푼젤처럼 갇혀 지낼 동안 모의 새 푸닥거리는 바로 거기에 맞춰졌다.

  “다른 집 노인네들처럼 노인정이라도 다니세요.”

  아주 못 마땅하다는 투로 훈계하듯 하는 모였지만, 조모 역시 오냐 다니마, 한 적은 없었다. 들은 척 만 척 넘기는 것 같았다. 하기야 다니고 싶었으면 누가 말 안 해도 다녔을 것이다. 고집스럽게 집 안에만 있는 생활이 삼 년 넘게 계속 되었다. 아마 치매도 그 때 왔을 것이다. 치매란 게 남들이랑 어울리지 않고 특히 대화를 안 하는 노인들한테 더 쉬이 찾아온다니 아마 그 무렵이 병의 시초였을 것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물을 틀어 놓은 채로 나오는 건 예사였다. 또 치매란 근력의 저하도 동반하는지 물을 따르다 물병이나 컵을 깨는 일이 잦았고 대인 기피증 비슷한 것마저 생겨 걸려오는 전화도 받질 않고 누가 초인종을 눌러도 못 들은 척 내다보질 않았다.

  일이 터진 건 사십 평 대 집으로, 그러니까 이후네로선 최후의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 후였다. 집에 혼자 있던 조모가 욕실에서 휘끄덩 넘어진 것이다. 넘어진 조모를 발견한 건 퇴근해서 돌아온 모였다. 노인네가 욕실 바닥에 멍하니 누워 있더란다. 가보니 바닥이 미끌미끌해서 정황상 넘어진 걸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 왜 이러고 계세요 넘어졌어요, 하고 일으키려고 하니까 일어나려고 하지도 않고 짝 째려보더라는 것이다. 

  조모는 그 주에 바로 요양원에 보내졌다. 병원에 가서 치매 중기 진단을 받고 요양원 입소 등록을 받는 데 삼 일도 안 걸렸다. 새 집 대출금을 갚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니 제발 돈 좀 아껴 쓰라는 말을 달고 살던 모가 요양원 비용만큼은 아무 소리 안 하고 지불했다. 입소비가 오백만 원에, 다달이 팔십만 원을 보내야 한다며 지나가듯 한숨을 쉬었으나 중요한 건 그걸 군말 없이 지불할 의사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몸만 달랑 입소한 조모를 위해 짐을 챙겨주던 부친은 노모의 옷가지를 움키고 울음을 터뜨렸지만, 다른 식구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다.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한 듯 태연한 모는 그렇다 쳐도 딸들마저 그러려니 무심하게 구는 게 부친은 영 서운한 눈치였다. 그러나 조모의 입소는 잘 된 일이었다. 이십 여 년 간, 특히 부친이 집에 없을 때 집중적으로 퍼 부어졌던 악다구니에서 조모는 놓여날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애들 왔어요. 알아보세요?”

  귀가 어두운 조모에게 부친이 갑절 큰 소리로 물었다. 조모는 간신히 알아 볼 수 있게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끄덕했지만 시선은 다른 데 가 있어 누굴 알아본 것 같지는 않았다.

  “아이구, 엄마아!”

  한순간 식구들과 안주인의 시선이 문간에 쏠렸다. 울음 복받치는 소리가 과격해서 꼭 우지끈 꽝꽝, 하는 난동 소리라도 퍼붓긴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모였다. 자주 보는 상계동이나 면목동 고모가 아니라 삼천포 고모였다. 고모는 그 새 많이 늙어 있었다. 키도 줄었고 덩치도 확 쪼그라들어 바람 빠진 풍선 같았다. 손목에 감고 있는 검정색 가죽 무늬 에나멜 핸드백이 영 겉돌았다.

  “엄마 나 진순이에요, 진순이.”

  고모는 울상이 된 자기 얼굴을 조모 곁에 바짝 대며 연거푸 자신의 이름을 인식시켰다. 조모는 또 고개를 끄덕끄덕 했지만 역시 못 알아보는 품이었다.

  “아이고 엄마, 딸도 못 알아 봐요?”

  “얘, 딸이 뭐냐. 성근이도 못 알아보신다.”

  삼천포 고모 뒤에 조용히 따라 들어온 상계동 고모가 턱짓으로 부친을 가리키며 한 마디 했다. 그 옆에 나란히 선 면목동 고모는 옷깃에 뭐가 묻었는지, 왔다는 척도 없이 목을 잔뜩 쭈그리고 연신 뭔가를 털어댔다. 

  “앉아요들.”

  안주인이 고모들을 바닥으로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이 고모는 오늘 츰 본 것 같은데.”

  꾸부정하게 앉아 조모 손을 꼭 쥐고 있던 삼천포 고모가 자기 얘기에 엉거주춤 몸을 돌리더니 삼천포서 왔어요, 했다. 그리고는 아이고오 우리 엄마, 아이고오 우리 엄마, 밑도 끝도 없는 넋두리만 계속 했다. 주름진 손은 바짝 말라 푸석한 조모의 얼굴이며 손등을 쓱쓱 하염없이 쓸어내렸다.

  “우리 엄마 좀 어때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상계동 큰 고모가 물었다.

  “접때들 왔다가셨을 때 아드님이랑 다 우셨잖아요. 며칠을 속상해하시는데, 정신은 참 멀쩡하셔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자식 걱정 하시는 분들 몇 분이나 되는 줄 아세요. 걱정이 다 뭐야, 찾아와도 못 알아보는 분들이 태반인데.”

  “근데 오늘은 어째 영 못 알아보시는 것 같은데.”

  “그러씨, 그게 조금 걸리네 나두. 원래 치매가 여름 겨울에 더 심해지는데, 요즘 날이 더워 그런지 우리 엄마 사알짝 오락가락 할 때가 있어. 그래도 심한 건 아니야. 심하면 내가 댁에 미리미리 연락드리지. 이러다가도 쪼오끔 지나면 또 괜찮아지고 그러셔요.”

  “울 엄마 언제부터 이래요?”

  안주인 쪽으로 몸을 틀어 앉으며 삼천포 고모가 따지다시피 물었다. 겉으로 표는 안 내도 살얼음 밟듯 조심스러워보이던 나머지 식구들의 시선이 교차했다. 긍긍하던 뇌관이 터졌음을 이후도 알아차렸다. 삼천포 고모의 성격이 어떠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글쎄, 딱히 언제부터 그런 게 아니고 날이 더워지면서 조금 그러세요.”

  “아니, 뭐 몇 달 전만 해도 자식들 걱정도 할 정도였다면 치매라도 심한 건 아니었다는 거잖아. 아무리 더워서 그런다 해도 갑자기 이렇게 애들 얼굴도 못 알아보는 게 나는 좀 이상한데.”

  “......”

  안주인의 얼굴이 굳었다. 애써 웃으려는 입매가 딱하게 일그러졌다. 

  “그런데 가만있어봐, 여기 엄마 팔뚝이 왜 그래? 이거 멍 아니야?”

  삼천포 고모가 가리킨 조모의 팔뚝에는 시푸르딩딩한 자국 같은 게 있었다. 멍이라고 듣고 보면 정말 멍처럼 보일 만 했다. 그냥 봤다 해도 일상에서 흔히 생길 만한 자국은 아니었다.

  “아 고모, 그거 엄마가 며칠 전에 넘어지시면서…….”

  “넘어져요? 어디서?”

  “밤중에 화장실 가신다고 나오시다가…”

  “아니, 밤에는 봐 주는 사람들이 없나?”

  “있어요. 있는데, 방에는 안 들어가 있죠. 방에서는 우리 엄마랑, 여기 입소한 다른 엄마들만 지내니깐.”

  “아니 세상에 어떻게 넘어졌기에 노인네 팔뚝이 이 지경이 된대, 되길!”

  양팔을 허리춤에 얹고 눈을 부라리는 삼천포 고모는 제대로 한 판 붙을 기세였다.

  “듣기로는 한 달에 돈 백 가까이 받는다면서 이거 증말 너무 한 거 아니야?”

  “누나!”

  잔뜩 굳은 얼굴로 가타부타 말이 없던 부친이 고모에게 역정을 냈다.

  “왜 성근아. 내 말이 틀리냐? 제대로 봐 달라는 뜻으로 믿고 맡겼으면 그 맡은 값을 해야 하는 거 아냐. 응? 받은 만치 봐줘야 하는 거 아니냐구, 내말은.”

  “고모, 우리도 봐 드린다고 봐 드리지만 치매 노인 분들은 워낙 넘어지시길 잘해요. 게다가 밤중에 갑자기 그렇게 방에서 나오시면, 물론 우리도 야간 담당이 있지만, 어느 방 하나만 만 딱 보고 있는 게 아니라서. 아이고, 미안해요.”

  “가만 있어봐. 우리 엄마 자는 방이 어디예요? ”

  “네? 방은 왜요?”

  “우리 엄마 자는 방에 내가 한 번 가 봐야겠어. 넘어진 것도 그렇고, 어떤 방에서 어떻게 지내기에 그렇게 오밤중에 넘어지나 내가 한 번 봐야겠어.”

  “…….”

  안주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주머니, 거긴 못 들어가세요.”

  방에 들어갔다가 소란한 기색에 슬그머니 나와 있던 안주인의 아들이 황망히 막고 나섰다. 그러나 고모는 벌써 이 방 저 방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누나, 거긴 들어가는 거 아니야.”

  아무 방이나 들어가려고 하는 고모를 부친이 다급히 말렸다.

  “들어가는 게 아니라니. 돈 주고 맡겼는데 구경도 못 해?”

  “아이 참, 형님 그만하세요.”

  꾸어다 놓은 빗자루처럼 응접실 한 편에 부루퉁히 앉아 있던 모가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한 마디 했다.

  “이후 엄마, 지금 뭐라고 했어?”

  “그만하시라고요.”

  “그만해? 뭘? 아까부터 어머니 좀 어떠시냐는 말 한 마디 없이 입 꾹 다물고 앉아있더니 고작 한다는 말이 그만하라고?”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너 아주 싸가지 없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너 아주 독해. 응? 독하다구.”

  “누나, 애들 들어!”

  “애들이고 뭐고 사실은 사실이잖아, 응? 내가 시골 구석에서 사느라고 십 년 넘게 서울에 못 와봤다만 들을 건 다 들었다. 울 엄마 욕간에서 쓰러지자마자 여기로 보내버린 게 너라며? 니가 주도했다며? ”

  “제가 뭐 보내고 싶어서 보낸 줄 아세요? 저도 돈 드는 거 싫어요. 그렇다고 제가 직장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아 어머니만 돌볼 수 없잖아요? 그럼 애들은 누가 키우는데. 여기 오는 것도 형님들 솔직히 돈 한 푼 안 내시고 제가 비용 다 내는 건데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건 아니죠.”

  “하……. 저 시뉘한테 눈 똑바로 뜨는 것 좀 봐!”

  안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고 이를 어째, 하고 혼잣말을 했다.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할머니들 생활하시는 방에 못 들어가게 하는 건 입소할 때 저희 쪽이랑 약속한 거거든요. 다른 할머니들도 같이 계시는데 가족 분들 오실 때마다 들어와 보시면 다른 분들이 불편해하시고 또 얼마나 외로우시겠어요. 그래서 못 들어가시게 하는 거예요. 딴 게 아니고요.”

  안주인의 아들이 삼천포 고모 앞을 가로막고 정중하게 사과했다. 고모는 이미 요양원 측에 대해서는 화가 적이 풀린 눈치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모에게 화 낼 것을 에둘러 애먼 요양원 쪽에다 화낸 것일지도 몰랐다.   

   정작 불이 붙은 건 모였다.

  “형님, 말씀 잘 꺼내셨어요. 돈 백 든다 하시고, 돈 주고 맡겼다 맡겼다 하시는데, 그 돈에 형님이 조금이라도 보태 준 거 있으세요? 저하고 이후 애비가 뼈 빠지게 번 돈으로 내는 거 아녜요? 상계동 형님이랑 면목동 형님들도, 입소비 오백만 원은 그렇다 쳐도 다달이 내는 팔십 만 원에는 그래도 단 오만 원씩이라도 보태주겠지 했는데 아무 연락 없으시데요. 속상했지만 그래도 참았어요. 그런데 형님은 시골서 십 년 동안 한 번도 어머니 보러 오시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저만 불효하는 것처럼 얘기하시면 저 억울하죠. 저 이날 이때까지 삼십 년 넘게 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스트레스 많이 받아도 할 거 다 해 드렸고요, 남만큼 못 한 거 하나도 없어요.”        

  말을 마친 모의 얼굴은 시뻘갰다. 역정 때문인지 설움 때문인지 모를 달아오름이었다.

  “그럼 네 말은 우리더러 다달이 오 만원을 부치라는 거냐?”

  세모 눈에 입술을 얇게 오므려 붙이고 삼천포 고모가 앙칼스레 물었다. 모는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다기보다는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팩 돌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야 막내야, 너도 그만해라. 이후 에미가 말은 저래도 솔직히 틀린 건 없다.”

  상계동 고모가 삼천포 고모를 말렸다. 응당 자기 편이어야 할 언니가 그렇게 나오자 더 이상 싸울 맛이 떨어진 듯, 고모는 아이고 참나, 하고 수그러지는 기세였다.

  “오만 원이고 뭐고 돈 얘기 할 거 없어요.”

  어떤 감정을 잘근잘근 씹어 삭이고 있는 것 같은 부친이었다.

  “다들 모인 자리에서 마침 할 얘기가 있었는데.”

  좀처럼 주도적으로 뭔가를 한 적이 없는 부친의 뜸 들이는 품새에 자리는 일순 놀라움과 호기심어린 눈빛들로 빛났다.

  “이후 엄마한테도 내가 얘기했지마는, 나 퇴직할 겁니다. 몇 년 더 일하려면 할 수도 있지만 그때 하나 지금 하나 별 차이는 없고, 엄마 저렇게 되고 나서 내 마음이 내 마음이 아니었는데, 조금 일찌감치 퇴직해서 어디 시골에라도 내려가 엄마 모시고 오순도순 살렵니다.”

  한껏 크게 뜬 눈들은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말들은 입 언저리에 엉켜있는 모양이다.

  나도 첨엔 이후 엄마 더는 고생 안 시키고 싶어서 암말 않고 엄말 여기 보냈는데, 지나고 보니깐 아무래도 할 도리가 아닌 것 같아. 나 일곱 살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어떻게든 아들 대학 보내려고 울 엄마 얼마나 고생했어, 누나들도 알지. 나도 이젠 오십 줄인데 더 벌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생면부지에 부모 갖다 맡기고 이 고생하나 싶고. 애들 둘 대학 보냈으니 키울 만큼 키웠고, 막내야 아직 어리지마는 퇴직 후에 나오는 연금 다달이 모으면 대학 등록금이야 어떻게 안 되겠어. 늬들도 불만 없지. 있어도 할 수 없다. 아빠는 이미 그렇게 하기로 맘먹었으니깐 막을 생각 마라. 당신도 마찬가지고. 원장님, 저 담 주에 우리 어머니 아주 모시러 올 테니까요, 그동안 짐도 좀 싸주시고 정리해주세요. 어머니 저 담 주에 다시 올게요. 저랑 같이 시골에 아예 내려가서 살아요, 네?

  말을 마친 부친이 자리에서 우뚝 일어났다. 새로 태어난 것 같이 당당하다. 뒤돌아서는 옆얼굴이 웃음으로 반지르르 빛나는 것도 같다. 백미러가 없이도 이후는 아버지의 표정을 본다. 눈썹은 표연히 나부낄 것이다. 꿈뻑대던 두 눈은 다만 아글아글 웃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