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낭독극장’, ‘가을 문화 축제’… 연희동 203-1번지에서 이뤄지는 독자와 작가의 만남

9월30일 목요낭독극장에서 장석남 시인이 시를 낭독하는 동안 허남준 작가가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나리꽃과 다알리아를 어깨에 꽂고 다녀간, 구름도 이제 어느 집 내전의 자개장에서나 보리라, 노예와도 같이 땀을 쏟아가며, 진땀을 닦아가며 타고난 손금을 파내던 일을 이젠 좀 쉬리라…(중략)”

 

‘연희문학창작촌’은 소나무 숲 우거진 연희동 203-1번지에 있다. 목요일 밤,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의자에 걸터앉아 나지막하게 낭송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작년 11월 개관한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에서 작가들을 위해 마련한 도심 속 휴양지다. ‘끌림’, ‘홀림’, ‘울림’, ‘들림’이라는 이름을 지닌 4개의 빨간색 기와집과 운동시설을 갖춘 ‘예술가 놀이터’, 아기자기한 산책로 등으로 이뤄져있어 마치 도심 속 시골펜션과 같은 느낌을 준다.

연희문학창작촌의 ‘목요낭독극장’은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열린다. 목요낭독극장은 독자와 작가들의 소통창구로, 작가들이 직접 기획과 연출을 진행한다. 작가들은 목요낭독극장을 열기 몇 주 전부터 주제에 맞는 시와 소설을 선정하고 밴드·연극·무용 등의 공연에 참여할 사람을 섭외한다.

목요낭독극장이 열린 9월30일 오후 7시33분,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야외음악당의 여덟 칸짜리 스탠드는 목요낭독극장을 보러온 관객들로 북적였다. 사회자가 낭독극장의 시작을 알리자 스탠드는 일순간 적막에 싸였다. ‘소히(Sorri)’라는 인디가수가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디가수의 달콤한 멜로디가 관객들의 외피를 한 겹 벗겨놓았을 즈음, 장석남 시인은 자작시「돌들이 왔다」를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관객들은 지그시 눈을 감거나, 객석을 둘러싼 소나무 숲 너머의 밤하늘에 시선을 두며 시인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장석남 시인의 낭독회가 끝나자 무대의 빈 벽면에 VCR 화면이 켜졌다. VCR 화면에서 흘러나온 영상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김현영 소설가는 자신의 목소리로 영상의 박자에 맞춰 본인의「러브차일드」를 나지막하게 읽어나갔다. 소설 속 화자는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을 학대하는 다수의 잔인함을 비판한다. VCR 화면이 꺼진 뒤에도 관객들은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들은 작가와 함께 호흡하며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갖기도 했다. 이번 낭독극장을 관람한 신정연(서울시 서대문구·26)씨는 “문학작품에 시청각적 요소를 곁들여 보여준 것이 신선했다”며 “시청각적 요소들 덕분에 작품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목요낭독극장의 연출을 맡은 강정 시인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성은 사라졌는가’라는 주제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며 “짧다면 짧은 1시간30분짜리 목요낭독극장이 독자들에게 삶과 이 시대의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길 바란다”고 말했다.

 

목요낭독극장 시작 전 인사말을 하고 있는 박범신 운영위원장
  연희문학창작촌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대학생 문학 동아리(명지대, 동국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대상으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에는 전문작가가 대학생들의 멘토로 참여한다. 현직 소설가와 시인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예창작교실도 매주 화요일 7시에 진행된다.

 

많은 국내외 작가들도 이 곳을 거쳐갔다. 신달자, 윤대녕, 전경린, 은희경, 김경주 등 내로라하는 국내작가 60명이 연희문학창작촌에서 활동했다. 독일작가 크리스티안 크라흐트, 프라우케 핀스터 발더 부부 등 외국인 작가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머물고 있다. 서울시는 매년 정기공모를 통해 이곳에 거주할 작가들을 선발한다. 선발된 작가들의 경우 월 4~8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이곳에서 3개월간 입주할 수 있다.

9일 (토)~10일 (일)에는 연희문학창작촌 가을 문학 축제인 ‘물들다’를 진행한다. 고은 시인의 특별 문학 강연과, 작가와 독자의 1대1 만남을 진행하는 연희 리빙라이브러리 등 14개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다. 축제와 관련된 정보는 서울시창작공간 홈페이지(seoulartspace.or.kr) 혹은 연희문학창작촌 카페(cafe.naver.com/ seoulartspaceyeonhui)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희문학창작촌 박범신 운영위원장은 “문학창작촌이 작가들에게 단순한 휴양지, 작업공간에서 나아가 작가와 작가, 작가와 세계가 만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최은진 기자 perfectoe1@ewhain.net
사진: 안은나 기자 insatiabl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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