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9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데 이어,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내정자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접대 연루,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병역 비리 등 약 21 일간 지속됐던 고위 공직자로서의 도덕적 자질에 대한 심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는 오롯이 한 개인의 인격적 문제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사회 전반의 문화와 풍습, 제도 등의 요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당대 사회의 지배적 문화는 개인의 사고와 행동 방식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 활동에 부정의 요소가 개입하는 원인은‘정의에 둔감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를 구성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정치 활동에서조차 정의가 최고 가치로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정의에 둔감한 사회’를 초래하는 첫 번째 요인은, 우리 사회의 가치 중심이 지나치게 경제 분야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서구 사회에 비해 다소 늦게 산업화 과정에 진입하여, 1960, 70년대 국가의 모든 정책 방향을 ‘경제 발전’에 맞추고, 정당한 분배보다는 효율적인 성장에 중점을 두었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성공’에 대한 인식은 눈에 보이는 성공인 ‘부의 획득’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부의 획득이라는 결과를 달성한다면, 그 수단의 정당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해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물질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경제 영역은 정치, 법, 도덕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정치인들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닌, “부자 나라”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다녔으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보다, 경제 활동을 다루는 법이 더 우선시 되었다. 가난할수록 법을 지키기 어렵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표면적으로는 쉽게 도덕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는 개인이 특정 사안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데 있어서, 정의라는 기준보다 경제적 가치를 더 고려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로, ‘내 편’에게는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부정을 허용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다른 국가에 비해 공동체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이 때의 공동체적 가치는 일반적으로 내가 속해있는 좁은 범위에 한정된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주의라고 볼 수 없다. 사회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의 작은 단위로 나눠지고, 개인들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이익만을 극대화시키려 하다 보니, 사회 전체의 공동체적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진정한 사회의 정의를 발견하기 위한 방안으로 롤스는 ‘무지의 베일’을 제안한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 자신의 상황과 분리된, 원초적으로 평등한 조건에서 사안을 평가할 때 도출된 합의 자체가 바로 정의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정의의 개념이라 실제로 적용하기 힘들다. 현실 속에서 개인은 자신과 공통의 이익을 도모하는 집단의 부정의는 눈감아주고, 심지어 자신이 부정의를 행하면서 점차 정의의 가치에 둔감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의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마이클 샌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최근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 1위를 다투고 있는 상황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경제경영 서적이 독식해왔던 서점가에서 정의에 관한 인문학서적이 판매량 1위를 했다는 사실은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가 물질에서 정의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샌델은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려면, 공동체의 미덕을 키우고 소통과 합의를 통해 공동선에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루소가 주장하는 절대적 이성에 의한 일반 의지 추구보다 훨씬 현실성 있는 주장이다. 또한 그는 도덕에 기초하는 정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근대 정치 철학가인 마키아벨리와 상반된 주장을 펼친다. 정치가 공동선을 이루기 위한 사회적 장치라면, 그 과정에서 도덕이 결부되어야 함은 필수적 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20대의 젊은이들은 과연 정의를 실현하고 공동선을 도출해 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을까. 학점과 취업, 등록금 마련 등 현실적 고민 등을 대며 변명하려 하지만, 사실상 정의의 가치는 현실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모두가 원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있으며,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몫을 분배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면,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고민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여긴다면 진정한 정의에 대해 한번도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20대 만의 열린 사고와 열정으로 정의에 대해 한 번쯤 진지한 고민을 해보는 것은 개인적으로 사유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통과 합의를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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