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정의숙 전임 이사장님, 윤후정 이사장님과 이사님들, 신인령, 이배용 전임 총장님, 김순영 총동창회장님과 국내외 동창 여러분, 사랑하는 학생과 교직원 여러분, 그리고 바쁘신 중에도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저는 이 자리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서 있습니다. 1886년 5월 단 한 명의 학생과 함께 교육을 시작한 이래, 세계 최대, 최고의 여자대학으로 성장한 이화의 124년 역사를 대면하면서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결코 포기한 적이 없었던 이화의 선배님들 그리고 선생님들을 기억합니다. 그 분들이 특별히 존경스러운 이유는 빛나는 성취와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한 통찰력과 공동체 통합의 지혜라는 무형의 자산을 이화의 전통과 품격으로 물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이화의 위대한 유산에 대한 이러한 부담감과 책임감은 제 임기 동안 늘 저의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저는 이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이화 공동체와 더불어 이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고자 합니다.

우리 이화는 지난 124년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성취해 왔습니다. 이화의 지난 역사는 억압받는 여성의 인간화를 위해 노력해 온 헌신과 도전의 역사였습니다. 이화는 당대의 시대적 요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왔고 또 가장 치열하게 그것에 부응하였습니다. 이화는 역사에 쓰여지기를 기다리기보다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 왔습니다.

대학의 존재 의의는 고등교육에 대한 사회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사회가 묻지 않은 질문’ 나아가 ‘사회가 묻기를 원하지 않는 질문’도 적극적으로 제기하면서, 새로운 미래상과 이상을 제시하고 사회로 하여금 이를 향해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과 수단도 함께 제시하는 것이 인류와 사회에 대한 대학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화의 선구적 노력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향상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였고 뚜렷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을 위한 최고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이화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한국 사회의 여러 지표들이 교육 기회와 사회적 활동에서 여성들의 약진을 증명하고 있고 이러한 지표들을 성급하게 성별 불평등 해소의 징후로 읽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회 균등은 여성의 인간화를 향한 토대에 불과합니다. 이화가 이 땅 위에 성취한 이 토대 위에서 이화는 여성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수월성과 탁월성을 유지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할 시점에 서 있습니다. 또한 여성의 인간화를 위한 이화의 길은 이제 한국이라는 경계를 넘어 세계 여러 국가에서 여전히 차별과 억압에 시달리고 있는 전 지구적 여성 현실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124년 전 스크랜튼 선생님의 비전과 가르침을 이어받아 나눔과 섬김의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이화의 가치를 세계 사회에서 구현해야 할 요청 앞에 서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확실한 대안 가치의 출현을 기다리는 채, 사상 유래 없는 무한 경쟁에 돌입하고 있습니다. 여성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이화는 양적 성장과 경쟁의 논리를 넘어 김옥길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던 ‘앞에 있는 푯대’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현실의 급박함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의 전망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 온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의 두 축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고 축적해야 합니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들 사이의 협력을 촉진하는 신뢰와 규범, 네트워크로 형성된 무형의 자산을 말합니다. 사회적 자본이 확고하게 정립되어야 성숙한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완성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화는 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충실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화가 전통적으로 중시하여 온 헌신, 청렴, 배려와 사랑의 가치는 본질적으로 사회적 자본의 핵심적 요소와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아닌 상호 협력의,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 중심의, 기독교적·여성적 가치에 근거한 이화의 이념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될 수 있도록 이화는 열린 학문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직면한 이화 교육의 미래상을 저는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전 지구적 여성 인간화의 전망을 가진 ‘다문화, 다언어 역량’을 갖춘 창조적 인재를 양성해야 합니다. 이제 이화는 세계를 시야에 두고, 세계와 협력하고 경쟁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대학교육은 지금 현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량만이 아니라 향후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세계를 활동 무대로 하는 미래의 이화인들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유연하게 적응하고 활동하는 인재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이화는 세계의 다양한 여성들이 성장할 수 있는 다문화적이고 개방적인 캠퍼스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둘째, 무한 경쟁의 사회적 논리에 맞서 협력과 배려, 화합에 근거한 이화의 여성적 가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이화 안에서 사회적 자본의 형성을 주도하는 인재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이화의 교육은 한 개인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약자, 소수자에 대한 배려 의식,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공감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고 협력을 주도하는 참여자로서의 여성 리더를 배출해야 합니다.

셋째, 창조적 지성과 인격적 감성을 갖추고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는 참다운 지식인을 양성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차가운 전문가나 기술자 대신 내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헌신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춘 품격 있는 지성인을 양성하여야 합니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지닌 전문가, 자연과 생명의 가치와 소중함을 느끼는 지식인, 배려하고 섬기는 기독교 정신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인재가 우리가 바라는 인재상입니다. 이들이 바로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고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인재가 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는 차별과 억압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이 있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에서나 우리의 경험과 성과를 아낌없이 나누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화의 가치를 한국을 넘어 세계 사회에서 구현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이화는 지난 세기 동안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성실하게 걸어왔습니다. 이화의 또 다른 100년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강건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 저는 임기 중 다음과 같은 점에 주안점을 두려고 합니다.

첫째,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을 통하여 이화공동체 역량을 극대화하고자 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결과 못지않게 절차를 중시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원칙을 지키고 공정한 결정을 위하여 개방·공개·분산을 각 절차에서 구현하겠습니다. 사람과 사람, 일과 일, 관계와 관계에 있어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소통을 통해서만 이화공동체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이화 내에서 새로운 거버넌스 구조를 확립하기 위하여 다양한 포럼과 장(場)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겠습니다. 전 세계 18만 이화동창들의 이화를 향한 애정과 관심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둘째, 여성친화적인 교육환경을 구축하여 교육의 수월성을 확보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화라는 공간 안에서 학생들의 모든 가능성이 최대한 성장할 수 있도록 학생을 중심에 두는 학교 운영에 힘쓰겠습니다. 개방적이고 창조적이며, 공감적인 여성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을 자극하고 지지하는 적극적인 시도들이 필요합니다. 실수나 실패를 귀중한 경험으로 인정하고 고취시켜 줄 수 있는 이 곳 이화에서는 좌절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가능하여야 합니다. 이화는 창조적 도전 정신을 키울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여성 글로벌 네트워크를 선도할 이화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나아가 여성 교육의 산실로서 여성의 생애주기를 고려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겠습니다. 교육을 통한 자아실현이 외부 환경에 의해 좌절되거나 중단되지 않도록 교육제도를 여성친화적으로 보완하겠습니다. 학생만이 아니라 교수, 직원이 교육·연구 및 일과 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유연안정성에 기반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여,‘일-생활 양립’의 새로운 모델을 우리 사회에 제시할 것입니다.

셋째,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연구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연구의 성과가 교육으로 지속적으로 환류될 때만 교육의 수월성 확보라는 목적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고등교육기관의 우수성은 결국 교수진의 자질과 성과가 결정합니다. 성별·나이·학맥 등 기존의 틀에 관계없이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인력을 유치하고, 외부의 우수인력이 합류하고 싶어 하는 환경을 조성하겠습니다. 재직교원에게 충분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통하여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학문의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지원 제도를 마련할 것입니다. 특히 연구 특성화 분야와 학문 분야 간의 새로운 융합 연구에 대한 지원을 장려하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양적 확대가 아닌 질적 향상의 중요성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화가 진정한 연구 공동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학문 후속세대 양성을 위한 지원 체계가 확립되어야 합니다. 학문 후속세대를 위한 장학금 지원은 물론, 보육시설을 정비하여 이화가 연구자들의 역량을 지지하고 강화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넷째,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화의 다양한 성원들에 대한 복지 제도 및 지원 제도를 확충하여 각자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직원 개개인의 인적 역량을 강화하여 내부적인 동력을 높이고, 직위와 직무의 재분류·적정 배치 등을 통한 합리적인 인사 시스템을 도입하여 안정적이고 활력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신명나는 일터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의 구축은 이화의 연구와 교육의 총체적 역량을 강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바로 이화인 모두의 기대와 지지, 협력 없이는 실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대화와 소통을 통해 차근히 이 일들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Non nobis solum.’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이라는 뜻을 가진 이 라틴어 문장의 의미처럼 대학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 전체를 위한 것입니다. 사회 안에 어떠한 개인도 단독자로 존립할 수 없듯이 대학 또한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상아탑으로는 그 기능과 의미를 다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이화, 역사적 소명에 응답하는 이화가 되어야 합니다. 124년 전에는, 그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성취의 자리에 이화가 도달하여 세계적인 여자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평등과 평화, 사랑과 정의로움이라는 기독교 정신에 기초한 아름다운 비전과 ‘푯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화가 그 비전을 아름답게 품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위대한 스승과 선배들의 뜨거운 열정과 이화 공동체 안의 모든 구성원들의 헌신을 기억하며, 새날을 향한 이화의 앞길에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함께 해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과 이화 가족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하나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14대 김선욱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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