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원인문학 교실

요즈음은 좀 덜 하지만 옛날에는 곡예사의 인기가 대단했다. 시장처럼 넓은 공간에다 하얀 천막을 치면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아주 높은 곳에서 줄을 타는 곡예사도 있었고, 몸을 마치 문어처럼 자유자재로 놀리는 곡예사도 있었다. 이 곡예사를 프랑스어로는‘아크로바뜨’라고 부른다.

이 말의 어원은 멀리 그리스어 아크로바토스(akrobatos)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크로바토스(akrobatos)는 ‘극점’이라는 뜻을 가진 명사 아크론(akron)과 ‘걷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바이네인(bainein)을 합성해 만든 말로서, ‘발끝으로 걷는’이라는 형용사다. 그러니까 어원상으로 볼 때 이 말은 보통 사람은 걷기 힘든 아주 위험한 곳을 자유자재로 걷던 사람을 지칭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단어는 ‘곡예사’라는 본래의 의미 이외로 쓰일 때에는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인다. 프랑스어에서는 어느 한 부분에 아주 능수능란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약간 경멸조로 말할 때 ‘아크로바뜨’라는 말을 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암기력이 아주 좋아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을 가리켜 “암기의 아크로바뜨”라고 한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어 아크로바뜨(acrobate)는 19세기에 영어로 들어가 애크러배트(acrobat)가 되었는데, 이 애크러배트 역시 ‘곡예사’ 이외에 ‘자신의 관점을 너무나 쉽게 바꾸어대는 정치적, 사상적 표변자(豹變子)’를 가리킨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한국의 정치인들은 거의 다 ‘정치적 아크로바뜨’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곡예사가 줄을 바꾸어 타듯, 이 당(黨)에서 저 당으로 옮겨 다니며 순간순간의 이익을 쫓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많으니 말이다. 이런 ‘철새 정치인’들이 있는 한 한국 정치의 앞날은 그저 암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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