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민주주의, 분명 거리는 있어 보이지만 반드시 배타적인 개념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권위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불가능한 교량을 사이에 둔 두 개의 섬과 같다. 그럼에도 그 두 섬 사이에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무수한 교량이 존재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이 두 개념의 명확한 차이점을 인식하고 그 둘을 갈라놓으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혼용의 불가피성을 제시한다.

사실,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소맥화(소주+맥주)는 뿌리가 깊다. 그도 그럴 것이 상반(常班)세상 500년, 일제 식민지시대 근 40년, 군사정권 30년을 거쳐 온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러한 역사를 내면화한 국민들은 마음 깊이 일정한 통제를 원하고 있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오히려 통제가 없을 시에는 무질서에 혼란스러워하거나 고삐 풀린 말들처럼 촛불을 켜들고 광장 앞에서 이리저리 방황한다는 것이다.

방학 중 한 달간 나는 법정 모니터링 봉사를 하게 되었다. 광명이 나야 할 법과 정의는 판사의 눈 부시는 권위로 인해 그 빛을 잃었다. 판사가 들어올 때면 늘 90도의 경례를 한다. 하지만, 그 경례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분명히 재판의 이해당사자를 포함하여 법정에 온 모든 시민들은 판사가 대변하는 법에 존중을 표하는 것일진대, 법의 권위는 온데간데없고 머리 숙여야만 하는 권력자의 권위주의만 위풍당당 서 있을 뿐이다.

법조인들만이 권위의 허울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재판인들(피고, 원고, 증인 등)도 그들의 사회적 지위에 의거해 권위의 혜택을 받기도 하는데, 내가 본 경우는 “특별한” 의사선생님과 “평범한” 아주머니를 향한 검사의 이중적 태도였다. 물론 전자의 경우, 심문은 훨씬 덜 고통스럽게 진행되었다.

그 막강한 권위(주의)의 빛에 나 또한 눈이 쓰라려 고개를 숙이려는 찰나, 나는 매우 신비로운 장면을 한 젊은 판사님이 주재하는 서부지방법원 민사단독법정에서 보게 되었다. 돈과 관련된 민사재판은 그 수가 다른 재판에 비해 방대하다. 그렇다보니 사건 당 5분 이상 소요되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며, 담당판사도 이해당사자의 말에 일일이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만난 ‘신비로운’그 판사님은 30분 이상 한 재판을 위해, 그리고 판결에 대한 재판인들의 충분한 이해를 얻을 때까지 “소통”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놀라웠던 것은 그 ‘젊은’(경륜이 없어 보이는) 판사님이 재판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높은 권위를 얻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전은 권위를 ‘절대적인 것으로서 남을 복종시키는 힘’ 또는 ‘능히 남이 신뢰할 만한 뛰어난 능력’으로 정의한다. 나를 포함한 그 법정의 참관인들이 그 판사님에게서 발견했던 것은 분명 권위였지만, 그것은 남을 ‘복종’시키는 힘이 아니라 남이‘신뢰’할만한 능력이었다. 그리고 그 능력이란 재판인들을 이해하고 이해시키는 소통의 노력에 다름 아니었다.

광장의 시민들이 보여주었던 것은 권위 아래 통솔되지 못했던 방황이 아니라, 불통(不通)의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소통에 기초한 참된 민주주의에의 열망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주의를 거부한 권위주의의 벽 앞에 발길을 돌려야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억압적 권위주의의 역사가 길었기에 참된 권위를 얻는 일은 쉽지 않은 길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전환임을 민주시민은 믿는다. 그리고 소통의 힘이야말로 이러한 전환점에서 가슴 깊이 새겨야 할 소중한 가치이다.

새로 선출되신 총장님의 취임사를 감명 깊게 읽었다. 민주주의를 위한 길도 결국 ‘나’라는 개인이나 ‘우리’라는 집단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소명이며, 이러한 소명에 응답하는 이화가 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에 감동했다. 이 모든 일에는 모두의 협력과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대화와 소통”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말씀 또한 가슴에 와 닿았다. 민주적인 소통을 푯대로 세운 이화의 새로운 거버넌스를 기대하며 또한 이 푯대를 좇아 이화인들도 참된 민주시민으로 배양되기를 희망해본다.

그렇다, 권위와 민주는 소주와 맥주일지라도 권위주의와 민주주의는 기름과 물이다. 섞일 수도, 섞여서도 안 되는 성분인 것이다. 오로지 소통을 통해 얻는 신뢰와 그 신뢰로부터 오는 권위만이 민주사회의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총장님의 말씀처럼, ‘Non nobis solum,’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사회공동체 전체를 위한 일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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