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칼을 부러뜨리며
회칼을 부러뜨리며
  • 최아란 편집국장
  • 승인 201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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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인 A : (깜짝 놀라며 호들갑스럽게) 살 많이 뺐네. 예뻐졌다.
이화인 B : (여유로운 미소) 고마워.
이화인 A : 어떻게 뺐어?

익숙한 시나리오다. 아마도 이화인 A와 B는 친구 내지는 동급생일 것이다. B는 방학 동안 체중을 감량했을 것이고. 다음 장면은 불 보듯 뻔하다. 전개 방향은 B에게 달려있다. 선심 쓰듯 조언해주거나 새침하게 입을 다물거나. 개강 첫 주, 교정에서 쉬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고루한 이야기다. 몸을 가꾼다는 것은 이제 단순한 미적 차원이 아니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차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90년대 이후 비만에 대한 사회적 경고에 편승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던 몸 가꾸기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특히) 여성의 몸을 죄어오고 있다.

물론 지나치게 몸에 대해 억압하던 옛 문화에 비추어보면 몸 가꾸기는 여성의 자유 증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점은 여성 스스로의 욕망이 다른 누군가, 주로 여성 몸의 특정한 형태를 원하는 남성 중심적 욕망의 대상이 되는 데에 있다.

철학자 미셀 푸코(M. Foucault)는 몸매 관리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푸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몸매 관리 또한 사회 곳곳, 일상의 삶 속에서 미시 권력이 육체를 대상으로 힘을 발휘하고자하는 전략이다.

다이어트에 관한 지식도 육체를 감시 및 규율하고자하는 권력의 행사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또한 여성의 자율권을 제한하는 권력의 작동인 것이다. 그 권력의 중심에는 남성이 있다. 이 권력구조는 개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파고들어 개인의 사고와 행동 영역에 다양한 방식으로 제동을 건다. 사랑도 그 범주에 속해있다.

필자가 말하는 사랑이란 이 사회가 시대에 걸쳐 언급해온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외모지상주의가 형성한 권력구조 안에 있는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보다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사랑이다.

여러 기관에서 수시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마다 필자는 이러한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현대의 여성들은 몸매를 관리해야한다는 강박증은 물론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05~2009년 우울증 심사결정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작년 전국의 여성 우울증 진료환자는 35만4천914명으로 15만3천506명인 남성 환자보다 약2.3배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또 연령대별로는 20대 미만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남녀간 우울증 환자 수가 20대를 넘어서면서부터 격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 통계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밑과 같은 방식으로 다가온다.

관계맺음의 여부를 결정짓는 척도는 많은 경우에 다시 ‘몸’으로 돌아온다. 많은 사람들이 누구를, 어떤 방식으로 사랑해야하는지의 기준을 ‘몸’에 둔다. 개인의 사랑마저 특정 권력구조 아래 형성되는 사회에서 우울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필자는 좀 이상한 여자가 되고 싶다. 몸이 큰 여자이므로.

우리 사회에도 보이고자 하는 욕망이 아닌, 스스로를 긍정하는 욕망으로의 시도는 있었다. 한국여성재단이 2004년, 2007년 2회에 걸쳐 개최한 ‘빅우먼패션쇼’를 한 예로 들 수 있겠다. 몸이 큰 여성들이 패션쇼 무대에 올라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낸 자리였다.

몸이 큰 여자는 루저(loser)가 아니다. 필자는 투사가 되려 한다. 남성중심적 응시가 응집된 여성의 성적 대상화된 몸 이미지, 그 내면화된 것을 해체하겠다. 사회의 권력구조를 해체하겠다. 하루하루를 ‘빅우먼패션쇼’무대에 선 듯 긍정하며 살아가겠다.

생일날이었다. 귀애하는 사람들과 한 자리에 모여 축하 파티를 열기로 했다. 캄캄한 방 안에 들어서자 불꽃이 터지며 용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이윽고 모두의 박수가 쏟아졌다. 빈 식탁이 등장했다. 몇 분이 흘렀을까. 식탁 위에 놓인 거대한 선물 꾸러미를 푸는 데에 한 참이 걸렸던 것 같다. 문득, 통증도 밀려온 것 같다. 아플 만 하다. 사람 키 높이만한 회칼에 손을 베었으니….

현실보다 현실 같은 꿈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