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 오늘 하루도 잘, / 뒹굴 / 뒹굴 / 하였는가. / 봄날의 곰처럼 / 정오의 공작처럼 / 빈둥 / 빈둥 / 오, 아름다운 그대의 삶.

<백수가>라는 시의 첫머리다. 시인 이외수는 백수의 삶을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지금 이 시기야말로 젊은 날 반드시 거쳐야 할 황금의 터널”이며, “그저 돈이나 벌기 위해 취직부터 하고 보는 젊음이야말로, 비정상적이고 몰가치한 삶”이라 말하고 있다. 얼핏 보면 실속 없는 이야기 같지만, 이 시대의 ‘청년백수’들에게 위안이 되는 시다.

올해 정부가 발표한 20대 실업률은 8.4%다. 그러나 한 주요 경제지는 23.1%가 ‘사실상 20대 실업자’라고 보도했다. 15~29세를 청년실업자로 분류한 정부와 달리 실질적인 고용시장 진입 계층인 20대만 추려서 분석한 결과다. 20대 청년 4명 중 1명은 백수생활을 하고 있다는 후자의 내용이 현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사실 청년 실업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란 용어는 이제 식상하다. ‘십장생(10대도 장래를 계획하지 않으면 장차 백수가 된다)’정도는 돼야 ‘청년 실업 문제가 좀 심각하구나’하고 생각 할게다. 이 지난한 문제를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작년까지만 해도 ‘그들’의 문제였던 청년 실업이 올해는 ‘나’의 문제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실상 20대 실업자, 즉 청년백수다. 수업을 듣는 건 아니지만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졸업예정자’라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을 뿐이다. 우리 학교를 비롯한 몇몇 대학은 정규 학기를 모두 이수한 후에도 재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졸업연기신청제도’를 마련해두고 있다. 세간에서는 ‘NG족’이라는 용어로 우리를 규정하기도 한다. 인생이 ‘No Good’이라는 뜻은 아니고, 졸업을 안 하려고해서‘No Graduation’이란다.

졸업 유예가 하나의 사회 현상이 된 데에는 청년백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작용한 탓도 있다. 이제는 그 개념이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요즘의 청년백수들은 <백수가>의 주인공처럼 뒹굴 뒹굴 허송세월을 하지도,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며 푸념만 일삼지도 않는다. 최소한 내 주변의 청년백수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치열하게 내일을 준비한다.

시사교양 PD를 지망하는 한 친구는 지금 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직업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마포공동체라디오(마포FM)에서 두 달 동안 오전 시사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다. 원래 자원 활동가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이기 때문에 인턴이라고 해서 허드렛일을 시키지 않는다. 그는 일을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콘솔(console)을 다루고, 사흘 만에 리포팅을 했다.

한 달을 훌쩍 넘긴 지금, 그 친구는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걸 새삼 느낀다고 말한다. 정상궤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낙오자처럼 여겨지기 십상인 세상이지만 지금 이 시기가 결코 불행하지 않다는 거다. 또 4년 동안 모 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햇반을 팔다가 무료해져서 이곳에 왔다는 사람을 보며 돈 버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취업준비를 하던 한 선배는 갑자기 회계사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회사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던 중 “이게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취업 후엔 자기계발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고 “지금 당장 취업하면 이대로 안주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단다.

물론 졸업을 해야 하는 시기에 회계사 시험 준비를 시작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동안 남들이 하니까 별 생각 없이 따라했던 게 많았던 것 같다”며 “지금부터라도 내가 재미있는 걸 하고싶다”고 말했다. 그는 마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기분이라며 “인생에 지금과 같은 시기도 필요한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직업체험을 시도한 친구, 뒤늦게 고시준비를 시작한 선배의 공통점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면‘지금’의 소중함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고 있는 20대 청년백수들에게 <백수가>의 마지막 구절을 읊어주고 싶다.

누가 백수를 무직이라 했는가. / 백수야말로 직업선택업이라는 / 귀하고 귀한 젊음의 직업이니 / 보라. / 그대의 이름은 백수, / 백수는 프로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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