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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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찬주 교수(물리학과)
  • 승인 20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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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이 요즘 학생들에 대해 흔히 하는 불평이 있다. 경제적 이익에 매우 민감하고, 어렵고 불확실한 일은 피하려고 하며, 능동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아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 떠먹여주듯 해야 마지못해 공부하는 시늉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험과 자격증의 노예가 되어 깊은 사고가 필요 없는 단편지식 외우기에만 몰두하며, 적성과 무관하게 편하고 안정적인 직장만을 찾는다고 한다.

이런 불평이 근거가 없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그것이 학생들의 책임은 아니다. 그것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사고한 결과가 아니라 집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끊임없는 압박과 과보호 속에 어른들이 주입한 가치관이 학생들을 통해 나타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학생들에 대한 비판의 상당부분은 자아비판일 수밖에 없다.

물론 부모세대도 그들대로 힘든 삶을 살았다. 학생 때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인간임을 확인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생사가 갈리거나, 아무리 애써 현실에 눈을 감아도 교정에 수북이 쌓인 최루가스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치열한 삶의 결과는 아직도‘절차적’이라는 수식어를 떼지 못하는 반쪽 민주주의였을 뿐이다. 그 반쪽짜리는 십 년 후 IMF 경제위기를 통해 파산과 실직으로 그들에게 보답했다.

그때 우리나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는지도 모른다. 물리 현상에 비유하자면 물이 얼음으로 바뀌듯이 사회 전체에 상전이가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정의를 외쳐도 가족의 끼니조차 장담하지 못함을 뼈저리게 느낀 사람들은 최고의 선이 경제라고 생각했다.

용기나 도전, 꿈의 실현, 정의, 사랑, 연대가 아니라 나와 내 아이가 편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인생 최고의 가치가 된 것이다.“나는 뭘 잘 몰라서 고생했지만 너만은 고생시키지 않을 테니 내 말을 들어라. 우리나라에서 제2의 기회는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지 마라, 경제적인 안정이 최고다, 일단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 뭘 해도 할 수가 있다.”

내 경제적 이익의 최우선적인 추구는 고질적인 연고주의와 얽히면서 필연적으로 집단 이기주의를 낳고 있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우리 집단, 우리 조직에 이익이 되느냐가 판단기준이 되었다. 죽느냐 사느냐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는 냉혹한 현실에서 도덕교과서는 시험공부에나 필요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패배자들은 그들만의 IMF를 다시 겪는다.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비극을 단기간에 끝낼 방법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때로는 사회 일부에서 약자들을 도와주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미담도 들린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경의를 표할 일이긴 하지만 대세를 바꾸진 못한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부분적인 요동에 불과할 뿐 상전이를 일으키지 못한다.

그럼 현재의 학생세대가 기성세대가 될 20~30년 후에는 어떨까? 이제 막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그들이, 부와 정보를 독점하고 첨단장비로 왜곡과 세뇌를 일삼는 사회에 맞서 새로운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편한 삶을 양보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아마도 현재의 학생들이 교수가 되었을 때 학생들에 대해 어떤 불평을 하는지 보고 알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쿨하지 않은 이야기 하나. 6월 2일은 지방선거일이다. 수학적으로 나의 투표가 결과를 바꿀 확률은 매우 작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꼭 투표할 것이다. 나는 표심을 왜곡할 목적으로 흘리는 거짓 정보가 가득할 지난 6개월간의 사건이나, 공염불에 불과할 공약은 멀리할 것이다.

언론의 일방적인 기사에 속지 않고 그 언론의 과거를 돌이켜볼 것이다. 각 정당이나 후보의 외모와 이미지는 배제하고 지난 수십 년간 그들이 역사의 전환점에서 무엇을 했는지 진실을 찾아 점수를 낼 것이다. 여기에 당선가능성이나 미래잠재력 등을 추산하고 기댓값을 계산하여 현재 조건에서 최선의 답을 구할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찾아 제도와 정책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 투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나’의 삶과는 무관할지 몰라도‘누군가’는 삶이 조금 나아지거나 생명을 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능성이 일억 분의 일이 채 되지 않을 지라도 나는 꼭 투표할 것이다.

이것이 자선과 봉사로는 결코 메우지 못할 빈자리를 채우는 일이고, 미래세대를 위한 최소한의 의무이며, 자아비판에 대해 작은 변명거리라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쁘게 고루한 아저씨라는 손가락질을 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