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부터 본교 대동제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으나 작년에는 치러지지 않았던 ‘영산줄다리기’가 이번 대동제에서 부활했다. 대동제 마지막 날인 20일(목) 폐막 행사에서 영산줄다리기가 치러졌다.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 전승되는 민속놀이인 영산줄다리기는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됐다. 우리나라 세시풍속을 정리한「동국세시기」는 ‘문헌에 기록되기 전부터 줄다리기가 중부 이남에서 널리 행해졌다’고 전한다.

마을에서 모은 짚으로 3가닥 줄을 꼬아 뒀다가 경기 하루 전날 줄을 길게 펴놓고 한 가닥씩 감고 돌려서 줄이 단단히 꼬이도록 줄을 만드는 것이 놀이의 시작이다. 1983년 이후 27년간 본교에서 22번의 대동제에 참가해 영산 줄다리기를 지도했던 영산줄다리기 명예보유자 김종곤 선생은 “영산줄다리기가 풍년을 비는 의도에서 시작됐지만, 오늘날에는 놀이를 통해 집단의 화합을 이끌어내 사람들을 하나로 잇는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영산줄다리기는 1983년 10월 가을 대동제부터 본교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민주화 운동이 대학가를 뒤덮었던 시기, 1983년 본교를 비롯해 서울대, 고려대 등 서울 시내 3개 대학 축제에 영산줄다리기가 도입됐다. 김 선생은 “교내 집회조차 허가되지 않던 시절, 수만명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영산줄다리기의 응집력은 학생들을 대동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맞물려 활발하게 운영되던 영산줄다리기는 노태우 정권시절 전국 22개 대학에서 실시됐다. 그러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93년 이후 영산줄다리기에 참여하는 대학의 수가 적어지기 시작했다.

김 선생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영산줄다리기의 전통을 유지한 학교는 본교 1곳뿐이다.

본교의 영산줄다리기도 순탄한 길을 걷지만은 않았다. 2003년에는 대동제 고사(줄다리기가 잘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줄다리기 직전 치르는 의식)를 폐지하자는 운동, 영산줄다리기를 거부하는 침묵 시위 등이 일어났다.

제35대 총학생회(총학) 최지선 전 총학생회장은 “기독교 이념을 가진 학교에서 고사를 치를 수는 없다는 의견, 전통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해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갈등이 심화되자 학교 측은 고사 폐지 여부를 주제로 본교 홈페이지(ewha.ac.kr)에서 온라인 투표를 진행하기도 했다. 고사 존속 찬성이 54.7%로 반대 의견보다 약10% 우세했지만 그해 고사는 치러지지 않았다.  영산줄다리기는 문제없이 진행됐다.

크고 작은 논란 속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던 영산줄다리기는 결국 작년 본교 대동제에서 실시되지 않았다. 제41대 총학 임나연 전 총학생회장은 “대동제 직전 2~4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영산줄다리기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학생은 10%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었다”며“진정한 의미의 대동을 위해 영산줄다리기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총학은 영산줄다리기를 부활시켰다. 정윤지 총학생회장은 “총학 당선 직후 실시한 설문조사의 주관식 항목에서 영산줄다리기를 재개하자는 의견이 다수 있었다”며“모두가 단결한다는 대동제의 의미에 부합하는 영산줄다리기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 타대에서는 영산줄다리기가 부활할 조짐이 보이고 있다. 본교와 함께 영산줄다리기의 역사를 시작했던 고려대 축제에 19일(수) 영산줄다리기가 등장했다. 18년 만의 부활이다. 고려대 동아리연합회(동연)에 따르면, 이날 영산줄다리기 행사에 약1천40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고려대 동연 박현석 회장은 “최근의 대학 축제는 연예인 공연, 주점 등 유흥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며“학생들이 하나로 대동할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영산줄다리기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최슬기 기자 redwin2026@ewhain.net
사진: 안은나 기자 insatiable@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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