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되돌아보며:꿈꾸는 자의 용기와 열정
역사를 되돌아보며:꿈꾸는 자의 용기와 열정
  • 최선열 교수(언론정보학과)
  • 승인 2010.05.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엊그제 영화 아바타를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아주 평범한 키다리 미국인 아저씨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으나 그가 한 말들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사람의 신념과 열정으로  가득 차있었다.

그의 꿈과 열정은 3-D의 확산에 대한 회의가 강했던 나의 생각을 바꿀 만큼  설득력이 있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인간커뮤니케이션의 새 시대를 열어놓은 스티브 잡스와 더불어 카메론 역시 오락 문화의 신세계를 개척하는 visionary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visionary는 사전적 의미로는 몽상가, 꿈꾸는 사람이지만 요즘 많이 거론되는 개념적 의미로는 남들이 감히 꾸지 못하는 비상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세계를 여는 사람을 말한다.  

최근 내가 속한 언론홍보영상학부의 창립 50주년을 맞아 반세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나는 우리 학교의 역사야 말로 visionary 들의 역사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먼저 읽을 수 있었던 김활란 전 총장은 1960년 당시로서는 꿈꾸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대단한 용기로 신문학과를 창설했다.

소위 “SKY”대학들보다 십 여년이나  앞선 김활란의 도전이 선견지명이었음이 머지않아 판명되었다. 4년 뒤 첫 졸업생들을 배출할 즈음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공채제도를 도입하게 된 것을 어찌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1회 졸업생인 장명수 동문은 당당하게 주요 언론사의 기자가 되고, 시사 컬럼니스트로, 주필로, 신문사 사장으로 여성으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운 일들에 한 단계, 한 단계 도전했다. 그의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한 이화의 후배들이 언론계에 거대한 이화의 인맥을 이뤘고 이들이 우리나라 여성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니, 1960년 우리 학교에 신문학과를 만든 김활란 전 총장과 장명수 동문은 이화를 뛰어 넘어 한국 여성의 역사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 준 대단한 visionary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꿈꾸는 자들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껏 밀어 달리게 한다 해도 진행을 방해하는 세력이 힘을 쓰면 정체를 면하기 어렵다. 우리 학부의 역사에도 역대 정권의 졸속 교육개혁으로 간간히 정체기가 있었다. 

정부는 설립인가를 내준지 1년도 안돼 취소를 했다가 다시 취소를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렸는가 하면, 병 주고 약주는 식의 대학개혁으로 학과모집에서 계열별 모집으로 갔다가 다시 학과모집으로, 입학정원제에서 졸업정원제로 다시 입학정원제로, 대학단위 학부제에서 전공학부제로, 학제가 바뀌고 뒤바뀌는 시행착오가 계속되었다. 한 학과의 성장사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대학들이 얼마나 심하게 정치논리에 휘말리고, 경제논리에 좌지우지 되며, 사회의 모순에 형편없이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며 무엇보다도 90년대 후반부터 정부의 대학 개혁의 기치아래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시행된 학부제의 후유증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부제 실시가 학과사무실 폐쇄로 이어져 그동안 여러 학과들이 축적한 많은 역사적 자료들이 공간 부족 때문에 송두리 채 폐기처분 되었다는 사실은 124년 역사에 오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학부제와 학과 사무실 폐쇄로 거점을 잃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학교, 학과, 그리고 동창회와 소원하다는 사실은 장기적으로 학교와 동창회의 발전 전망을 어둡게 한다.

창립50주년 영상물 제작에 도움을 주기 위해 내가 부임한 1983년부터 학생들과 어울려 찍었던 사진들만 모아놓은 특별한 앨범을 열어보았다. 정말 이런 시절이 있었나할 정도로 믿기 어려운 훈훈한 사진들이 많았다. 80년대의 활기찬 수학여행 사진들, MT, OT에서  찍은 진지한 사진들, 품격 있는 사은회 사진들,  정감 있는 스승의 날 단체 사진들, 행복한 졸업식 사진들. 이 특별한 앨범이 끝나는 시점은 바로 1996년 대학단위 학부제가 실시되던 시점과 일치했다.

시설도 없고 교과과정도 미비하고 교수도 몇 명 되지 않던 초창기 신문학과에서 교수들은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섬마을’선생님과 같은 헌신적인 사랑으로 학생들을 이끌었다. 학생들 역시 순수하게 믿고 따랐다고 한다. 그들의 성공의 역사는 우연히 시작된 게 아니었다. 50여 년 간 이어지는 이들의 아름다운 사제 간 이야기는 오늘 날 우리 교수들과 학생들이 무엇을 잃고 있는지 생생한 교훈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