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효숙 본부장, 편견 이겨내고 여성 과학자 역할 모델로 제시돼

 

<편집자주> 본지는 8일(월)‘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3월 한 달간‘금녀의 벽을 뚫은 여성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한다.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을 만났다.

“어깨가 무겁지만 여성 리더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역할 모델이 된다고 생각하면 기뻐요.”

2일(화) 이효숙 박사(화학·74년졸)가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본부장에 선임됐다. 이 선임연구본부장은 연구원 내 광물자원, 석유해저 등 연구·개발 업무를 총괄하는 임무를 맡았다. 여성이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선임연구본부장이 된 것은 최초다.

1976년 입사 후, 연구에만 집중하던 이 본부장은 2008년 9월 광물자원연구본부장을 시작으로 보직을 맡게 됐다. 당시 원장이 이 본부장에게 보직을 제안했을 때는 고민도 많았다. 아직 자신이 맡기에는 부서의 규모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보직을 맡았다.‘여성에 대한 편견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여자들은 시키면 안 한다’는 생각을 타인에게 심어주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다른 여성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 본부장은 광물자원연구본부장 자리에 올라 최선을 다했고, 1년4개월만에 선임연구본부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34년간의 연구 생활이 쉽지만은 않았다.‘여성’이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에는 연구소에 박사 학위를 소지한 연구원이 많지 않았다. 연구소는 연구원들을 직접 유학 보내줬고 연구원들은 연구소의 지원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다. 그에게도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이 본부장은 유학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난처한 순간이었다. 그에게 유학은 더 큰 학문을 위해 꼭 나아가야만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부장을 찾아갔다.

“부장에게 따졌더니‘애가 있어서 당연히 유학을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다’는 거예요. 결국 훗날 일본으로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지만 여성으로서 현실을 알게 해 준 사건이었죠.”

남성 동료들의 우월주의 또한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이 본부장은 20여년 전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가 여성 최초로 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이 된 것을 축하하는 회식자리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회식에 참석한 연구원들 중 여성은 그 혼자였다.

“한 남자연구원이 나중에 내가 부장이 된다면 내 밑에서 일하느니 연구소를 나가겠다고 했어요.”이 본부장은 가볍게 웃어넘겼지만 그 때 한 번 더 결심했다. 이 본부장은 이때부터 자신의 객관적인 실력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유리천장을 뚫으려면 천천히 부드럽게 해야해요. 오히려 강하게 대응하면 남성들의 반발이 세지기 마련이죠.”

결국 꾹 참고 견디며 34년간의 연구를 이뤄낸 그는 인정받았다.
이 본부장은 지난 세월을 회고하며, 시급히 개선해야할 문제로 여성 인력 활용을 꼽았다. 그는“여성 인력 없이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없다”며“대학과 정부가 우수한 인재에게 과감하게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하며“출산과 양육으로 인해 포기하고 싶기만 한 10여년의 시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개인과 국가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한 연구원이 자신의 딸에게‘이 본부장같은 여성과학도가 돼라’고 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는“개인적으로 기쁘기도 했고 이래서 역할모델이 중요하구나 생각했다”며“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엄마는 좋은 역할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차근차근 올라와서 연구원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연구원이 아닌 연구원을 이끄는 리더로서 활동하고 있는 이 본부장. 조금 늦은 시기에 보직을 맡았지만 그는 지금이 전성기다.

 

김아영 기자 momonay@ewhain.net


사진 제공: 이효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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