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반 한 모토롤라 연구원이 세계최초로 휴대전화를 실용화 할 수 있는 신기술을 개발했을 때 시장에 나온 휴대전화는 1kg이 넘는 무겁고도 비싼 이동통신 단말기였다. 몇 년전 MIT 대학의 미디어 연구소가 휴대 전화가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 삶의 중심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진화할 것이라고 예상했을 때만해도, 이렇게 빨리 스마트 폰이 우리의 일상을 뒤흔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주머니 속의 스마트 폰을 꺼내 신문과 잡지기사, 텔레비전 프로그램, 책을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골라 즐길 수 있고 트위터(twitter)와 같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소식, 생각, 느낌을 나누면서 친교 할 수 있다. 

앞으로 스마트 폰이 얼마나 더 똑똑해질지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문제는 전화가 너무 똑똑해 지다보니 멀쩡한 사람들이“폰맹”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말기 조작은  기본이고  다양한 응용프로그램(application)을 활용하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마트 폰으로 사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구축하는 회사가 많아지면서“폰맹”탈출은 직장인들의 생존 문제가 되고 있다.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도 국민과의 소통을 증진하는 수단으로 스마트 폰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스마트 폰으로 무장한“스마트 당”이 되겠다고 하고 민주당은“트위터”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들어 스마트 폰과 트위터 열풍이 주목 받는 이유는 코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 스마트 폰과“트위터”가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퍼나르기”활동을 규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트위터가 미국 SNS 사이트이고 현행 선거법이  첨단 인터넷 사용자 환경을 단속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게 중론이다.

하여간 2012년 대선에서는 스마트 폰이 중요한 선거운동수단이 될 것이며, 머지않아 스마트 폰을 통해 투표까지 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인들, 언론인들은 물론 공무원, 정치권의 고위층들까지 스마트폰“열공”대열에 합류하여 학습동아리가 구성되고“폰맹”탈출을 돕기 위한“스마트 폰 아카데미”까지 등장한 것은 웃지 못할 현실이다.

영어로 새들의 지저귐을 뜻하는 트위터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140문자 내에서 사용자가 메시지의 생산자, 소비자 역할 관계를 선택적으로 맺을 수 있는  관계형성 사용자환경을 제공한다.

즉 내가 사이버 세계에서 누군가를 독자로서 따를 수 있고(following) 한편으로는 메시지의 생산자로서 내 글을 읽기 원하는 독자, 추종자(follower)를 거느릴 수 있다. 이러한 사용자 환경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은 트위터 활동을 통해 엄청난 정보력과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정치인들, 연예인들, 언론인들, 그리고 홍보와 마케팅 담당자들이 트위터에 열광하는 것이다. 기자들은 취재과정에서 트위터를 통해 사실을 확인하거나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기도 하고 특종을 낚기도 한다. 기존 언론의 취재력이 미치지 못하는 아이티와 칠레의 재난 현장에서 일반인들이 트위터를 활용하여 신속한 취재와 보도를 할 수 있었고 이러한 보도가 실시간으로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트위터의 잠재력을  확인시켜준다.

문제는 트위터에 빠지면 별 생각없이 자기노출을 감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트위터 예찬론자들이 주장하는“집단 지성”이 발현되는 경우는 드물고 시시콜콜한 일상의 이야기가 되풀이 되는게 트위터의 현실이다.

그런데 가볍게 올린 소소한 글과 사진들이 쌓이게 되면 마치 퍼즐 조각들이 형상을 만들어 내듯 글쓴이의 신상이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뉴욕 타임즈가 소개한  이와 관련된 연구결과를 보면 온라인에 공개된 정보만“퍼” 모아도 개인의 신원이 예상보다 훨씬 더 쉽게 밝혀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사관들은 피의자가 온라인에 무심코 올린 소소한 이야기들을 모아 프로파일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여 결정적인 증거를 찾아낸다고 한다. 같은 방법으로 범죄자가 희생자를 찾는다고 하니, 온라인 자기노출은 결코 무심코 할 일이 아니다.

숲속의 적막함을 깨는 새들의 경쾌한 재잘거림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한다. 트위터를 만든 사람들의 원래 생각이 이런 무공해 재잘거림이었는지 모르지만, 트위터에 풀어놓는 진정성 없는 자기 노출성 메시지는 공해성 소음으로 느껴진다.“과유불급”이고 부끄러운“말빚”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는 법정스님의 단호한 말씀을 우리 모두 가슴 깊이 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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