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원대역 1번 출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모퉁이 분식’앞은 달콤한 와플 냄새로 가득하다. 와플 냄새를 따라 분식집 안으로 들어가자 독일식 와플과 찹쌀꽈배기를 가득 담은 접시를 든 윤경련(독문·72년졸)씨가 기자를 반겼다. 

윤씨는 손님들 사이에서 독특한 서비스로 입소문이 난 경력 11년차 택시운전사다. 작년 한 해, 각종 언론에 18번이나 소개된 그의 명성은 이제 유명인사 못지않다.

윤씨의 택시를 타는 손님들은‘그의 택시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한다. 승차 시간 동안 그만의 요리 비법이나 싸고 질 좋은 물건을 파는 가게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집에서 구워온 와플, 꽈배기 등을 맛볼 수도 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다가도 와플을 한 입 베어 물곤 기분 좋은 서비스라며 웃더라구요.”

그는 단골손님들이 바쁠 땐 대신 장을 봐주거나, 도매시장에 가서 물건을 떼어다주기도 한다. 그는 요리 강의, 와플 시식, 구매대행 등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지난 11년간 7명의 단골고객을 확보했다.“이젠 단골 손님들과 친자매나 다름없어요.”

택시 운전을 시작하기 전 그에게도 힘든 나날이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15년째 되는 해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재산을 날려버린 것이다. 이후 교직에 머물기 힘들어진 그는 강남의 학원에서 독일어 강사 일을 시작했다. 간신히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윤씨는 강사를 그만두고 동두천 온누리 교회 앞에서 노점상을 운영했다. 평소 음식솜씨가 좋기로 유명했던 그는 노점상에서 와플과 찹쌀꽈배기, 버터링 쿠키를 팔았다.“인기가 많아 하루에 30만원은 벌수 있었어요. 주변 제과점 주인이 가게에 와서 손님을 다 뺏겼다며 푸념했을 정도였죠.”

그러나 희망도 잠시, 그마저도 폭력배들의 행패로 두 달 만에 그만둬야했다.
“폭력배들 때문에 폐점까지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죠.”

보험 판촉에, 정수기 외판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네 아들을 부양하고, 빚까지 갚기에는 벅찼다.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그녀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택시 운전이었다. 그것이‘택시운전사 윤경련’의 첫 발자국이었다.

오전5시부터 오후5시까지 운전대 앞에서 보내야하는 나날들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보낸 나날들이 쌓여 어느덧 11년이 됐다. 온종일 운전대를 잡고 서울 시내를 누볐지만 그의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다.


“오히려 교직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예전엔 제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30명 남짓한 학생들에게만 나눠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가 가진 기술로 봉사할 수 있으니까요.”
윤씨는 얼마 전 환갑잔치를 지냈다. 네 명의 아들은 모두 장성해 반듯한 직장인이 됐지만 그는 택시 운전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

“아들들은 택시 운전 그만두고 편히 지내라고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인 걸요.”
오늘도 윤씨의 택시는 손님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자 서울 시내를 누비고 있다.

 

글·사진: 최은진 기자 perfectoe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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