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YWCA에서 레크레이션, 에어로빅 등 체육봉사

 

“내가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봉사의 시작이죠.”

YWCA에서‘40년 봉사상’을 수상한 김숙자 명예교수(체육과학과)는 웃으며 말했다.
“단기 봉사는 쉬워도 40년 한결같은 봉사활동은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쳤다.

“좋아하는 일을 즐기면서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재능 나눔’을 실천하는 참 봉사자였다. 
그가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대학을 갓 졸업한 새내기 교사 시절이었다. 본교 1회 졸업생인 성정순(체육과학과), 조성환(체육과학과) 명예교수를 따라 시작한 봉사 활동이 40년이나 이어질 줄은 그 역시 꿈에도 몰랐다.

그가 처음 맡게 된 역할은 걸스카우트 담당이었다. 3년 6개월 동안 걸스카우트 36대 대장으로 그의 봉사활동은 시작됐다.

그가 주로 했던 봉사는 YWCA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의 레크리에이션이나 캠프의 진행이었다.
부부캠프, 대학 새내기 캠프,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레크리에이션 등의 체육 행사 진행을 도맡았다.
당시 가르쳤던 포크댄스, 에어로빅의 인기는 단연 최고였다.

“제가 하는 것을 보고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 따라했죠.”
그는 또한 레크리에이션의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를 통해 함께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그는“캠프파이어 불꽃이 타오를 때 모두가 한 마음이 됐다”며 “봉사를 하면서 돈보다 훨씬 값진 것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가 끝나면 늘 사례비 대신 참기름 한 병을 받아왔다.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참기름 한 병, 한 병에도 감사함을 느꼈다.

“매번 행사가 끝나고 나면 관계자 분께서 고맙다며 참기름을 한 병씩 주셨어요.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는 끝없는 수작업을 해야 했던 공장 직공들의 지친 몸을 체조로 달래주는 봉사를 하기도 했다.
힘든 노동으로 지쳐있는 직공들은 점심시간에 그의 체조를 따라하며 일의 고됨을 잠시 잊었다.

당시 인연을 맺은 국제 나일론 주식회사 故김홍기 회장은 약30년이 지난 2008년, 그의 명예 퇴임기념으로 1억 원이 넘는 금송을 기증하기도 했다.
“학관 비탈 잔디에 철쭉으로 둘러싸인 나무 아시죠? 그 나무가 바로 김홍기 회장님이 너무 고맙다며 선물해주신 김숙자 나무에요.”

그는 과거에 촉망받는 기계체조 선수였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그는 매사에 소극적이었으나 수도여중 시절 은사님인 석봉근 선생님의 추천으로 기계체조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기계체조에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는 17살에 한국 체육상 체조부문 여자 개인상을 수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17회 로마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으나 4·19혁명으로 꿈에 그리던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
“어린 나이에 심한 좌절감을 느꼈어요. 하루아침에 꿈이 무너져버렸으니까요.”

절망하고 있던 그가 안정을 되찾았던 건 가족 덕분이었다. 부모님과 하나 뿐인 오빠는 그에게 큰 힘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도 네 운명이니 재능을 나눠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씀해주셨죠.” 이 일을 계기로 그는 체육 지도자가 되기로 결심한다.
가족의 권유로 걷게 된 지도자의 길은 그에게 제2의 삶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1963년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1964년 상명여중·고교 교사로 일하다가 1966년 본교 교양체육과목 강사로 이화와의 두 번째 인연을 맺게 됐다.
“1977년 마침내 교수 발령을 받았죠. 그로부터 30년간 안식년을 단 1년만 가질 정도로 이화와 꼭 붙어살았답니다.”

명예 퇴임한 지금, 그는 이화여대 정책과학대학원 여성지도력개발센터 운영위원으로 이화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매주 때론 상담을 해주고 때론 강의를 듣는 그는 “다시 이화의 학생이 된 것만 같아 설레고 즐겁다”며 “기력이 다할 때까지 계속 이화동산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를 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나누기도 했지만 오히려 배운 점이 많다.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던 열정과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간 사이에 관계 맺는 법을 배웠다. 그는 봉사하기 전엔 느낄 수 없었던 사소한 부분까지도 모두 감사하게 됐다.

“두 팔과 다리가 건강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 덕분에 제가 즐거워하는 봉사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는 대학생들 중에 ‘참 봉사’를 하는 사람보다 취업을 위한 경력으로써의 ‘봉사’를 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그는 “오랜 기간 줄곧 했던 활동이 봉사인지도 몰랐던 나에겐 최근 대학생들의 모습들이 많이 낯설다”고 말했다.
“동기가 어찌됐든 한번 봉사에 발을 담그면 자극을 받아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 면에서는 봉사활동을 한 번 해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는 “앞으로 많은 이화의 후배들이 다양한 봉사활동에 참여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어여쁜 이화의 후배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항상 감사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이 참 봉사를 실천하는 첫 단추니까요.”

 

이지훈 기자 ljh5619@ewhain.net
사진: 배유수 기자 baeyoosu@ewhai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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