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이 지닌 과학적, 철학적 미적가치를 춤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30년간 한글의 매력을 춤으로 전파한 사람이 있다. 바로 1990년‘홀소리 닿소리’에서부터 작년‘훈민정음 보물찾기’까지 102회의 한글공연을 해온 밀물현대무용단 대표 한양대 이숙재 교수(무용.68년졸)다.
 이 교수는 1990년 한글무용을 창작한 공로를 인정받아 외솔회로부터‘제25회 외솔상’을, 1991년과 2005년 한국예술평론협의회로부터‘올해의 최우수 예술인상’, 1995년, 2000년, 2003년‘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상’, 2004년‘백남예술상’등을 수상했다.

 이 교수는 뉴욕대 대학원 무용학과 재학 시절 한글의 가치를 처음 깨달았다.
“자국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찾아오라는 교수님의 과제에 덕수궁 사진을 가지고 갔지만 제게 돌아온 답변은 사진에 한국만의 색깔이 없다는 거였어요.”

 고민 끝에 그는 한국문화원을 찾아 한국만의 고유한 문화유산이 한글과 금속활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의 깨달음은 이 교수에게 한글사랑의 시발점이 됐다.

“한국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을 무용으로 펼쳐서 한글의 우수성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1984년 유학을 마친 이 교수는 밀물무용단을 창단해 1990년 한글을 주제로 공연을 선보였다. 그가‘홀소리 닿소리’라는 제목의 한글공연을 선보인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주변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춤 소재라고 하기에‘한글’은 너무나 생소한 주제였던 것이다. 

“서정적인 것만이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무용가들 중에서는‘홀소리 닿소리’라는 제 작품명을 보고 새마을 운동이냐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한글 학회도 한글 춤 공연이 한글의 가치를 훼손시킬까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죠.”

 그러나 첫 공연의 결과는 주변의 우려를 뒤집었다.‘홀소리 닿소리’공연은 1990년 발표되자마자 한글을 예술화한 공로를 인정받아‘외솔상’을 수상했고 평론가들은‘한글’이라는 주제가 신선하다며 호감을 보였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그의 공연을 보고 감동을 받은 관객들은 온라인 게시판이나 편지로 공연평을 보냈다. 그가 공연 때마다 받았던 공연평은 평진 약 400개 정도였다. 한글학회도 밀물무용단의 후원단체가 됐다.

“작품을 만들 때마다 한글학회에서 줄거리구성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보내줘요.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매번 흡족합니다.”

수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은 그도 유독 한 외국인은 잊지 못한다.
“공연을 끝내고 한 외국인에게‘공연에서 형상화했던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한글을 형상화 했다’고 대답했더니‘공연 내내 느꼈던 묘한 아름다움이 문자인 한글에서 나온 것이었다니 놀랍다’며 감탄사를 연발했죠.”
이 교수는“무용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렸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월26일(금) 한양대에서 정년퇴임한 그의 하루는 여전히 공연 준비로 바쁘다.
“취침시간이나 식사시간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용에 쏟아 붓고 있습니다. 무용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시간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죠.”

 춤과 함께한 인생 60년, 이 교수에게 춤이란 생활의 전부이자 살아온 역사다.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를 알 수 있어요. 살면서 느끼게 되는 단맛, 쓴맛이 춤을 추는 춤꾼의 몸짓에서 배어나오기 때문이죠.”

 오늘도 그는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그의 연습실에서 한글 안무를 연구한다. 춤과 함께하는 그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은진 기자 perfectoe1@
 사진제공: 이숙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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